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십이월도 중순에 접어들어 날씨가 나빠지는 날이 많기에 서둘러 메주를 쑤었습니다. 이번 메주는 삼년 만에 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년 전에 콩 백이십 킬로그램 남짓의 메주를 쑤어서 장을 담갔는데 그게 올해는 거의 바닥이 나서지요. 콩은 농사를 지어봐야 어디 팔 데가 마땅찮습니다. 시장에 얼른 내다 팔아버리는 관행농사 콩이라면 모르겠는데 유기농 콩은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보통은 메주나 장으로 만들어 팔아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수월치만은 않습니다. 저도 삼년 전에 그렇게 했다가 팔기보다는 나눠먹은 것이 거의 다였으니까요. 메주나 장의 주문이 어디서 밀려들어와서 한꺼번에 다 팔아버릴 수 있으면 좋은데 우선 맛 좋다는 소문이 나야 되고, 알음알이로 파는 것이라 띄엄띄엄 오는 주문이 귀찮기만 할뿐 당최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 옛날부터 맛있게 담가진 장은 서로 나누어먹던 풍습이 있는 탓에 막상 돈을 받고 파는 행위가 저는 참 낯이 설고 불편하기조차 하더군요.

올해는 육십 킬로그램의 콩을 메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 번 끓이기가 싫어서 한 번에 해볼 생각으로 아주 커다란 무쇠 솥을 하나 빌려 왔습니다. 이걸 화단이 있는 바깥마당에 걸고 아침 아홉 시 무렵부터 불을 땝니다. 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불린 콩이 남아서 부엌 아궁이에 걸린 작은 가마솥에도 한 솥 끓였습니다. 큰솥은 제 안식구가 불을 맡고 부엌 솥은 아들 녀석에게 맡겼습니다. 저는 양쪽을 오가며 집 안팎에 흩어져 있는 나무들을 보아다 주고 콩물이 넘치지 않도록 가끔씩 콩을 뒤적이고 뚜껑을 조절합니다. 콩은 센 불로 때서 처음 끓어오를 때를 조심하면 그 뒤로는 점차 끓어 넘치는 것이 덜합니다. 물론 불도 약하게 때야지요. 그렇게 약 세 시간 정도 불을 때서 콩이 무르고 붉은색으로 변하면 메주를 만듭니다.

저는 이렇게 만듭니다. 깨끗이 씻어놓은 커다란 대야에 익힌 콩을 퍼다 붓습니다. 이때 솥 속에는 콩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장이 더 맛있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자칫 콩을 태우거나 물이 너무 많아서 진득하게 우러난 콩물을 버리기 예사인데, 쉬운 방법은 불린 콩을 솥에 넣고 콩 표면의 5~10센티미터 아래까지만 물을 붓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콩물이 넘치지 않게 하고 불조절만 잘하면 원하는 대로 되지요. 이렇게 잘 삶아진 콩은 잠깐 바구니에 퍼 담았다가 큰 대야에 쏟아 붓고 뜨거울 때 장화신고 들어가 밟으면 으깨지는 데는 채 삼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이걸 비닐 깐 네모진 대야에 적당량 옮겨 담고 다독거려서 안반에 거꾸로 엎습니다. 십 등분이나 팔 등분으로 나누어서 두부모 자르듯 칼로 쓱쓱 썰고 두서너 차례 바닥에 가볍게 굴리며 모양을 잡아 짚을 깐 따뜻한 방안에 줄 맞춰 들여 놓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좀 신경 써야 할 게 대야와 고무장화입니다. 아무래도 이것들에서 좋은 물질이 나올 턱이 없으므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해치우기는 해도 마음에 걸립니다. 절구통에 넣고 찧어서 하면 되겠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을 후딱 해치워 버리려는 꾀 아닌 꾀가 이런 것들을 쓰게 만듭니다.

메주 방에는 하루에 한번 불을 때줘서 온도가 이십 도쯤 되게 합니다. 이삼일 간격으로 메주를 뒤집어주면 꾸덕꾸덕 마르면서 뜨기 시작하는데 저는 메주 뜨는 이 꿈꿈한 냄새가 좋아서 메주 방에서 자버릇합니다. 겨울철 날씨는 건조해지기 쉬워서 자고나면 목이 아프고 콧속이 마르기 예사지만 메주 방은 습도가 높아서 그럴 일이 없습니다. 메주가 뜨기 시작하면 방안에서뿐 아니라 집안 전체에서 냄새가 납니다. 마당에 있어도 뒤란에 있어도 메주 냄새가 물큰하게 떠다닙니다. 그 방에서 자는 저는 옷에 냄새가 베여서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의 근원을 찾느라 눈을 굴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 냄새가 어머니 냄새 다음으로 좋은걸요.

올해는 아랫동네에 사시는 큰형님 댁의 메주까지 저의 방에서 띄웁니다. 요 근년에 번번이 메주가 뜨지 않아서 장을 망쳤는데 작년에는 사십 킬로그램이나 쑨 메주가 뜨지 않아서 간장도 맛이 없고, 된장은 지금도 익지 않은 채 그대로랍니다. 그러기는 옆에 사시는 둘째 형님네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해마다 메주를 쑤고 장을 담가도 맛이 없고 된장은 잘 익지 않거나 나쁜 곰팡이가 피어서 버린다고 자주 저희 것을 가져다 드십니다. 예전에 없던 이런 현상이 요즈음 농촌에 자주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하기는 왜 안 그러겠습니까. 농촌도 도시 못지않게 아스팔트 시멘트로 덮이고, 자동차 많이 다니고, 환경호르몬 많이 나오는 가재도구들로 집 안팎을 꾸미고, 보일러 전기 난방하고, 인스턴트음식 먹고, 새 옷 사 입고, 농약 퍼붓다시피 한 땅에서 콩 농사를 지으니 메주가 뜨고 싶어도 못 뜰 것입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장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흙으로 지은 집에서 불 때며 사는 이런 방식이 소중하기도 합니다. 대설 지나고 동지가 코앞인 지금 찌푸리던 하늘이 오후 들어 기어이 송이 눈을 퍼붓는데 제집 메주는 지금 맛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한창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