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처럼 채찍 맞는 목상 대감 ‘애잔하네’

풍기 용바위골 주막에는 도방회의 전날부터 상인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모여 죽령고개를 넘어야 안전하다면서 사람들이 더 오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 와중에도 우창의 회유와 압력에 넘어간 무리와 해동의 무리와는 자연히 거리감이 생겼고 따로 죽령을 넘어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다고 해동 무리가 도방회의에 불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기재된 모든 것을 계산하고 새로운 신표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도방회의에 불참이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한번 신용이 떨어지면 보부상 조직에서 영원히 소외되어 그나마 입에 풀칠하던 것도 손을 떼어야할지도 모를 형편이었다.
삼십여 명의 해동 무리가 모이자 새벽같이 용바위를 떠났다. 빨리 고개를 지나 밝은 낮에 우창에 도착할 심산이었다.

단양 장은 전엔 볼 수 없었던 활기로 넘쳐 났다. 멀리서 온 장사치와 우창의 보부상, 예전 같으면 관리 아전만이 오고갈 뿐 사람 구경하기 힘들어서 피폐한 고을 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양장 이었다.
하지만 이번 장만큼은 각지에서 모여든 보부상이 수백 명이고 짐꾼까지 합하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객주 집은 사람들로 넘쳐 났고 하방리와 하진 포구를 중심으로 여강 뱃사장에 천막이 즐비하게 이어졌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도방회의는 오년마다 칠월 초닷새하고 정해졌지만 먼 길을 오는 사람이 많은지라 미리미리 와서 진을 치고 여강의 여흥을 즐기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이른 바 오년마다 찾아오는 단양 최대의 행사였다.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던 단양 저자거리에 젊은 상전이 말을 타고 늙은 하인이 고삐를 잡고 나타났다. 하인은 웃옷을 벗고 있었으며 등줄기에는 시뻘건 채찍자국이 선명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헝클어진 머리와 땀과 피로 얼룩진 몰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상전의 채찍이 바람 소리를 낼 때마다 하인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경하던 주모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면서 한 마디 했다.

“참 모질기도 하지.”
소식을 듣고 달려온 형방과 나졸들이 젊은 상전에게 말을 건넨다.
“뉘신 지는 모르오나 저자거리에서 너무한 것 아니요?”
“참견하지 마시오. 내 이놈을 죽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니, 아주 흠뻑 혼을 낼 것이요.”

“그렇다면 담 안에서 혼을 내셔야지 어찌 이리 많은 사람이 있는 저자거리로 나온단 말이요?”
“보아하니 관아의 아전 같은데 내 아버님이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계시오, 헌데 향리에 와보니 이놈이 몹쓸 짓을 혼자 다 하고 있지 않겠소. 그래서 한양으로 끌고 가던 중에 분을 참지 못해서 잠시 채찍을 들었으니 더 이상 참견할 생각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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