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제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음식에 대한 것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두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콩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아피오스라고 하는 인도감자로 만든 두부였습니다. 묵이니 두부니 하는 것이 꼭 콩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다지 신선한 느낌으로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걸 보니 왠지 저도 한번 두부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음식 프로그램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배부른 때에 봐도 그것은 항상 허기를 불러일으킵니다. 까닭은 카메라 기술과 고화질 방송이 주는 ‘극사실성’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가 느끼는 감정은 우선 거기에 나오는 재료나 음식들이 저로서는 쉽게 구할 수도, 평소에 먹어보지도 못한 것들이기에 그러려니 생각됩니다. 하지만 콩은 제가 농사지은 게 있고 두부는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 아무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그럼 맘먹은 대로 해보자고 아내더러 콩을 좀 씻어 불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냉장고에 넣어둔 작년 콩을 꺼내어 보이면서 치워버리게 돼서 잘됐다는 표정이네요. 종자로 쓸려고 갈무리해뒀던 것인데, 해를 묵혀서 밖에 놔두면 좀 벌레가 스는 통에 이때껏 몰래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콩을 불려 놨다 생각하니 그제는 좀 허기가 덜하던 것을 보면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하다는 것 또 느끼게 됩니다. 이튿날 아침입니다. 여섯 시에 시작하는 뉴스 두세 꼭지와 일기예보를 보고 한 시간  가량 운동을 한 다음에 부엌아궁이에 저는 물부터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즈음 다시 날이 꽤 추워져서 물을 데워놓지 않으면 안식구가 찬물에 손 넣기를 걱정스러워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그 보담도 얼른 두부를 하고 싶어서이지요. 생각 같아선 이 새벽에 차로 얼른 싣고 방앗간에 가서 콩을 갈아다가 아예 솥에 쏟아 붓고 불을 때고 싶지만 콩 불리던 대야가 조금 깨졌는지 밤새 물이 부엌바닥에 스민 자국이 있고 콩은 덜 불었습니다. 콩 대야를 바꿔놓고 우선 물부터 데워야겠더라고요.

결국 아침 먹고 콩을 갈아 왔습니다. 펄펄 끓어오르는 솥에 갈아온 것을 붓고 저는 또 무척 바빴습니다. 콩이 끓어오를 때 쓸 온도계 준비하랴(여기서 콩물의 온도는 섭씨97도가 적당합니다) 콩물 짤 때 대야에 걸칠 나무 발 만들랴, 타지 않게 저어줄 나무주걱 만들랴, 콩물 짤 자루 한번 삶아서 빨아놓으랴….

그동안에 당신 아내는 뭐 했냐고요? 일단 콩물 솥에 불을 넣으면 누구 한사람은 옆에 꼭 붙어 앉아서 그 콩물을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저어줘야 합니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콩물은 솥바닥에 금세 눌어붙고, 눌어붙으면 두부는 그을음 냄새가 나서 맛이 떨어진답니다. 저는 불을 보랴, 불타고 있는 짬짬이 이것들을 준비하랴 그래서 바빴지요.

사실 제가 두부를 만들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두부도 두부지만 만들고 남은 비지를 떠서 만든 비지찌개를 먹고 싶어서였답니다. 두부야 겨울 되면 어느 술집에 가든 늘 먹는 것인데 제 유기농 콩으로 만든 두부라고 얼마나 특별한 맛이 나겠습니까. 지금은 두부 부드럽고 고소하게 만드는 기술을 누구나 알고 있어서 어느 집 것이나 거의 차별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띄운 비지찌개만은 제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을 살려보고 싶었지요. 몇 년 전에도 두부를 한번 해서 비지를 띄워봤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근데 왜 비지를 띄우냐고요? 비지찌개 하면 지금은 거의 대부분 생콩을 갈아서 그대로 끓여내는가 본데 제가 맛본 ‘어머니표’ 비지찌개는 단지에 넣고 꿈꿈하게 띄우시더라고요. 거기에 외대파 숭숭 많이 썰어놓고 돼지비계 몇 점 썰어 넣으면 아, 그 맛! 밥에 끼얹어서 썩썩 비벼먹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좋고, 예전에 실패했던 것은 뜨는 조건을 덜 맞춰줬던 듯합니다. 제 아내가 덜 뜬 비지를 제 요리법대로 끓여놓고는 한번 맛을 보더니 지금 입맛은 옛날하고는 다르다고 일갈을 하더군요. 그 실패를 만회하고도 싶고 그 맛을 재현해서 옛날 그 맛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솥의 콩물이 섭씨97도에 다다르면서 거품이 끓어오릅니다. 저는 불을 조절하고 찬물 반 바가지 정도를 솥에 부어 끓어오르는 콩물과 다급해하는 아내를 가라앉힙니다. 그런 다음 짠 콩물이 식지 말라고 아궁이 앞에 대야와 발을 놓고 자루에 퍼 담아 콩물을 짭니다. 그런데 잘 짜지지 않습니다. 자루를 비틀어서 더 힘을 줍니다. 김은 피어오르지 손은 뜨겁고 미끄럽지, 그만 발이 삐끗해서 대야 밖으로 밀려나가며 제가 콩물 속으로 처박힐 뻔한 통에 아까운 콩물을 조금 쏟았습니다. 땅에 떨어진 발을 씻어서 다시 걸쳐놓고 이번에는 아들 녀석에게 붙들고 있게 한 다음 다시 힘을 줍니다. 그래도 생각만큼 짜지지 않습니다. 더 오래 붙잡고 눌러대면 좋겠지만 그러면 콩물이 식지요. 서둘러 간수를 조금 붓고 슬쩍 저으니 신기하게 두부가 엉깁니다. 두부 만들기는 이때가 가장 신나지요. 두부를 누르기 전에 순두부 한 그릇씩 퍼먹는 이 짭조롬하고 고소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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