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값 안정으로 재기를 꿈꾸는 ‘우창 도주’

젊은 선비의 당당함에 웅성거리던 소리가 줄어들었다. 선비는 한술 더 떠 아전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소?”
젊은 선비의 당당함과 뒤따르는 무리를 보니 어느 대감의 자제가 분명한 듯 했다.  형방이 기가 죽어 말했다.
“예, 며칠 있으면 우창에서 도방회의가 열립니다.”

또 한번 채찍이 허공을 가른다. 어깨부터 가슴을 감아 허리까지 휘감자 목상은 풀썩 주저앉는다. 목상의 눈에 핏발이 선다. 뼈 속까지 저리는 고통과 모멸감에 치를 떨지만 옆에 있는 도적 무리들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입만 벙긋하면 무 토막 절단 나듯 목을 칠 기세였다. 기세에 눌린 형방은 예까지 붙이면서 읊조렸다.

채찍이 부드럽게 허공을 맴돌더니 목상이 두어 바퀴 말 아래로 뒹군다. 바우의 목소리는 마치 저승사자처럼 공포와 살기가 감돌았다. 목상은 풀린 다리에 힘을 주고는 수없이 되뇌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없는 날이다. 그것이 살길이야. 보부상들도 나인 줄은 모를 것이야. 아무튼 한양까지만 가자. 내 오늘은 잊지 않으리.’

여강의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불어온다. 도방회의에 온 무리들이 강 여기저기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목상의 배가 지날 때마다 힐끗힐끗 쳐다보며 미덥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저녁이 되자 우창 도주에게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죽령에서 해동 무리가 도둑을 만났는데 대여섯 명은 죽고 수명은 부상을 당해서 지금 장림주막에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우창에서 급히 의원이 달려갔고 뒤이어 식솔 몇 명이 쫓아갔다.

도방회의가 있을 때면 우창은 의례 의원들 몇 명을 고용해 수백 명의 보부상들을 진찰해서 이것저것 약을 지어주었다. 보부상들은 우창의 그러한 행동을 매우 좋은 일이라 칭찬하였다. 그리고 더러는 아픈 사람은 보부상에서 제외시키고 춘향 땅 산골에 모여 살도록 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전국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때로는 수십 명에서 어떤 때는 백 명정도까지 모여 살았다. 누구든 보부상만 들어올 수 있으며 과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도주가 걱정스런 말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정말로 잘해. 안될 것 같으면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덕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도주가 다시 도주를 하면 앞으로 오년은 탄탄대로이고 다음에 자기가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었다. 덕배는 객주로 나섰다.

도주 자리를 노리는 동방 방주 엄홍은 일찍이 객주 여러 채를 통째로 얻어 놓았고 수십년 장사로 모은 많은 재물을 풀고 있었다. 도담삼봉이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자 자갈이 깔린 넓은 강변에 많은 천막이 쳐지고 있었다. 여강을 중심으로 영춘, 영월, 평창, 태백 너머 신봉까지 많은 지역 보부상들이 모여 있었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큰 세력으로 성장해 이번 도방회의 판도를 뒤집어엎을 기세였다.

한번의 역임으로 물러난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다시 나서는 우창 도주에 대한 불만은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우창 도주는 연말의 소금 운반의 부실 책임과 더 나아가 지나친 소금 값 상승으로 보부상들의 원성과 신뢰를 잃고 있었다.
결정적인 실책은 목재였다. 태백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많은 목재가 이제 판로가 막혀 헐값에 팔리고 그나마 소량 생산되는 특수목도 거래가 거의 끊긴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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