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종 수
여성농업인신문 편집국장


두 갑자 전인 서기 1894년 갑오년은 우리 역사의 큰 전환점일 것이다. 갑오개혁이라는 뜻의 ‘갑오경장’이란 낱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해를 기점으로 헌것과 새물이 갈리는 시기였다. 봉건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이었으며, 내적갈등과 외세의 틈새에서 조선의 명운이 갈지자 행보를 보인 때였다. 무엇보다 그 갑오년은 위로부터의 ‘경장’을 무색케 한 아래서부터의 혁명, 동학혁명의 해이다. 친일사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재야 역사학자들은 ‘동학’이란 머리말보다 ‘갑오’가 붙어야 역사적 의의에 부합하고 ‘농민’을 주체로 삼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그래서 학자마다 동학혁명, 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 등 조금씩 달리 규정하고 있다.

조정과 농민군이 전주에서 화친을 약속한 전주화약 당시 농민군이 불렀다는 노래가 바로 ‘가보세’였다고 한다. ‘갑오세(甲午歲) 갑오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 병신(丙申) 되면 못 가리.’ 이 노래는 비문(非文)에 가깝지만 대개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다. 갑오년에 혁명에 성공할 수 있으나 을미년에 왜적에게 공격당해 병신년에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예언적 의미로 읽혔을 것이며, 그러니 이왕지사 혁명을 일으켰으니 미적대다가 병신 되지 말고 이참에 한양까지 가보자는 선동적 함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갑오년에 일어난 농민혁명군이 외세와 결탁한 조정에 의해 병신년이 되기 전에 진압됐으니 예언이 적중한 셈이 됐다. 이처럼 집단적 불안감이나 염원을 오리무중인 현실과 접목해 그 개연성을 맞추고 글자나 숫자, 노래에 빗대 그럴싸하게 꾸민 것을 참언이라고 한다. 이 참언이 현실이 되면 예언이요 그렇지 않으면 헛소문이 되는 것이다.

당시 갑오농민군의 기치는 척양척왜, 보국안민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발단은 고부군수 조병갑 같은 탐관오리들이 못살게 구는 것에 격분한 것이지만 그 정신은 대중의 평화와 안녕을 해치는 왜적과 서양을 물리침으로써 나라를 지키고 백성이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갑오농민혁명이후 두 갑자, 백이십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일제의 강제점령과 수탈을 이겨내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보다 더 큰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 한 갑자가 또 지났다. 역사의 굴곡과 국민의 곡절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럼에도 두 갑자 전에 외쳤던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되새김질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글로벌이니 지구촌이니 하는 열린(?) 세상에서 말이다.

갑오년 벽두에 삼백오십만 농업인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과장은 말자. 헌 것을 버리고 새물을 받아들이자는 정부로부터의 ‘경장’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소를 키우고 그 고기를 세계 곳곳에 팔아먹는 미국의 쇠고기 업자들에게 빗장을 풀어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이 개혁이요, 휴대전화 팔아먹기 위해 쌀 농사짓는 수많은 농업인들의 안위는 개의치 않는 것이 정부의 창조경제이니, 척양척왜 보국안민은 두 갑자 내내 농업인의 기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지. 이참에 참언이라도 하나 만들어볼 일이다.

그러나 참언을 넘어, 절망을 딛고 부르는 연대의 서사시를 권하고 싶다. 공감, 소통의 문화공동체는 사람과 사람, 절망과 절망, 공포와 공포가 연대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갑오년에 부르는 연대의 서사시는 무엇이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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