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서 많은 토지를 가진 곳 관청 아닌 ‘우창’


모내기의 효과는 수입 면에서 탁월했다. 한 마지기 한 섬의 쌀이 나왔다. 이것은  엄청난 양이었다. 농민들은 이제 굶주림의 고통에서 한시름 덜까 했더니만 소득이 늘은 만큼 세금도 같이 늘기 시작했다. 종전에는 다섯 마지기 당 백미 반섬이었는데 올해부터는 백미 한 섬으로 늘린다는 소문이 바람에 실려 들려왔다. 세금을 내자니 눈앞이 캄캄한 게 수확도 하기 전에 벌써 걱정이 앞섰다.

쌀농사는 손이 많이 가는 농사로 일년 내내 매달려야 한다. 예로부터 씨를 뿌려  거둘 때까지 여든 여덟 번 손이 간다고 했기에 쌀농사와 다른 농사까지 같이 겸하기에는 손이 너무나 딸렸다. 유일한 생산품인 쌀을 세금으로 모두 내면 쌀을 팔아 생필품을 사는 농민으로서 모내기를 해도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모내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이익을 본 사람들은 권력 있는 양반이나 지주들이었다. 김매기가 줄자 일손이 남아 더 많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러자 돈 많은 양반들이 소농의 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죽어나는 것은 소작인들이었고 손바닥만한 땅도 가지기 어려웠다.

우창이 농민들의 땅을 뺏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쉬웠다. 빈농들이 보릿고개를  넘지 못해 우창에 돈이나 곡식을 빌렸다가 가을에 갚지 못하면 그 대가로 땅을 뺏었다. 해가 갈수록 땅을 빼앗기는 사람은 늘어났고 단양 고을에서 제일 많은 토지를 가진 곳은 관청도 아닌 우창이었다.

땅이 많다 보니 우창의 일손도 많이 필요하게 되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창의 노비로 들어가게 되었다. 입에 풀칠도 못하는 사람들은 자청해서 노비로 들어가는 사람도 늘어났다. 사람의 수가 많으니 우창의 세력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우창이 지역 관청을 능가하고 지역의 맹주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런 우창 같은 곳이 규모는 다르지만 여강을 중심으로 무리 지어 나타났고 그 중 한곳이 정선 아우라지 들판을 휘어잡은 동방이었다. 많은 부를 축적한 동방이었지만 도방회의에서 우창의 도주를 이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 점을 노려 덕배가 밀정을 보내 몇 명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도주를 밀어주면 도방회의 때 채무를 면제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민 것이었다. 이 일은 은밀히 남몰래 진행됐고 급기야는 하나, 둘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죽령은 완전히 잔치집이었다. 목상에게 빼앗은 물건을 우창에서 후하게 쳐주어 각자 나눌 몫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삼십여 명의 무리는 모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두목은 이제 언제 만날지 모르는 부하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억수는 몇 명 데리고 의림지로 가서 눌러 앉아. 땅 몇 마지기 사서 농사꾼이 되란 소리다. 소금무지 너는 영춘 의풍으로 들어가. 외진 곳이지만 <정감록>에 이름 있는 명당 터이니 살기엔 좋은 곳이다. 곰치 너는 백운으로 들어가서 자리 잡아라.  너희들이 살기에는 적합한 곳이야.”
“예”
“억수는 내일 아침 이곳을 불사르고 저녁에 떠나라.”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