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이 농정의지 척도… 허울뿐인 ‘희망농업’ 전락”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벌였었다.
이때 농민들은 농촌 현실과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진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힘써 일해도 ‘돈 되지 않는다’는게 많은 이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생산비는 늘고 소득은 줄어드는’ 농산업에 대한 망막한 현실을 불안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 농업·농촌은 삶의 기로에 선 채, ‘구원병’이 될만한 농업정책을 애타게 찾고 있다.
올해는 이미 예고된 태풍이 즐비한 상황이다. 한중FTA협상이 농민들의 생존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고, 쌀개방문제도 관세화 쪽으로 정부의 심중이 쏠린 상태여서 생산기반을 어떻게 사수할 것인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들의 쇠고기 추가개방 요구, 내부적으로 유통구조를 어떻게 고쳐나갈지의 청사진 등 무엇하나 여유로울 수 없는 과제들을 정부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5년이 농업분야에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시말해 예산배정부터 줄여나가고 이미 수혜범위로 정해 논 사업예산들까지 ‘공약가계부’를 이유로 삭제하고 있기 때문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여론이다.

 
■ “농업예산 줄이지 말라”

정부의 관심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는 예산배정에 있다. 2014년 박근혜정부는 사상 최초로 농림분야 예산을 삭감했다. 국가전체 예산중 농업예산 비중은 2008년 4.8%에서 올해 3.8%로 폭삭 주저앉았다. 공약가계부란 명목으로 향후 5년간 5조2천억원의 예산이 더 줄어들 예정이다.

예산배정이 줄어들다보니, 새로운 투·융자계획은 인색하게 짤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 5개년 농업발전계획을 살펴보면 MB정부의 농정계획과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발전 계획은 그동안 개별경영체 중심의 생산성·경쟁력 향상 정책이 농업·농촌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어왔기 때문에 효율성과 형평성·국민행복을 동시에 고려한 농정목적을 세운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획일적이고 분산적이었던 접근을 지양하고, 지역공동체·생산과 융합한 6차산업·주민참여 등 통합적 접근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소통과 배려의 통합적 농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실천 계획이 없다는 게 주위 여론이다. 선언적 낱말 구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올해 농업예산을 배정하면서 눈에 띄는 항목은 찾기 힘들 지경이다.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농가소득 및 경영안정 지원자금’중 한우산업 피해보전직불금 1천500억원과 폐업지원금 627억원 정도. 또 복지분야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정작 새롭게 지원되는 것은 ‘농촌고령자 공동이용시설 지원사업’ 35억원을 신규로 배정한 것 이외에 달라진 게 없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양곡관리사업, 식량자급을 위한 농업생산기반조성사업 등의 예산이 줄었고, 총체적으로 보조사업이 이차보전방식 등 융자사업으로 바뀌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소득안정…믿음부터 줘라”

박근혜정부는 농정발전계획에서 유형별 맞춤형 농정을 통해 소득과 경영안정을 추구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농외소득 증가율을 2012년 4.6%에서 2017년에 7.5%까지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영안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발전을 영위하고, 이는 소통과 배려의 주제로 나가자는 것”이라고 이동필 장관은 항상 강조해왔다.

헌데 그토록 각 정권마다 농업정책을 홍보하고 특별한 보호대책처럼 내세웠지만, 농업소득은 해마다 줄었다. 생산비 증가로 파산위기를 맞고 있는 현 정부의 농민들도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농업소득은 2007년 1천40만원, 2009년 969만원, 2010년 1천9만원, 2011년 875만원 등이다. 해마다 물가상승률이 더해지고, 농산물생산단가가 치솟는 것 등을 감안하면 소득이 ‘사라지고 있다’란 표현이 어울린다.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단면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농가들의 소득안정에 관한 정책을 펴겠다고 나선다면, 이를 인정하고 따르는 농민이 얼마나 존재할지 미지수다.
농산물 출하가격이 끝없이 추락하고, 생산단가는 오르고, 농업정책자금 금리는 시중금리와 별반 달라지지 않는 구조. 이런 환경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소득안정대책을 펴겠다는 정부의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여론이다.

일단 현정부가 농업·농촌·농민에게 관심이 있고, 농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농업계 지적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6차산업을 표방한 기업 지원 시스템, 예산축소, 보호장치 없는 개방정책 등을 몸으로 느끼는 농민들에게, 정부를 믿고 따라오라는 말은 허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유통개선…농협을 버려라”

정권초기에 농업분야를 고치겠다던 박근혜정부는 ‘농산물 유통 및 수급, 물가안정분야’에 올해 예산을 1조6천122억원으로 전년보다 8.0% 줄였다. 외형확장보다 내실화를 기한다는 명분이지만, 보조지원을 융자로 전환하고 산지유통 유사사업을 통폐합하면서 자금을 줄인다는 내용이다.
일부 증액한 내용도 있다. 농산물 비축과 계약재배를 늘리고, 국내산 양파, 무 등 김장채소 신규비축 규모도 확대하는 등 지난해보다 194억원 증가한 9천205억원을 책정했다.

헌데 이같은 모든 정책은 농협을 통해서 이뤄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농산물 직거래, 신유통경로 개척, 유통시스템 혁신 등은 농협중앙회 경제사업과 연계된 사업들이다. 결국 농협의 사업확장이 농민들의 소득향상과 얼마나 비례할 수 있느냐는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형마트들이 농산물을 필두로 끊임없이 가격인하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런 치열한 경쟁에 수입농산물이 가세하고 있는 점도 항상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게 유통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품목별 작목반들의 경쟁, 단위 조합간, 또 중앙회와의 경쟁 등도 항상 따라다니는 문제점들이다.

한 유통 전문가는 “정부의 역할은 농협에 일감 ‘몰아주기식’ 유통정책이 아니라, 농민들이 품목별로 조직화되어 거래교섭력을 높이고,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면서 “농협의 물리력을 동원한 시장 장악력은 확실하게 농민의 이득으로 돌아간다고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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