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 넘어 인류 건강보건 책임질 신물질 개발

농업의 틀을 바꾸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농산물 생산이라는 제1차 산업부터 제2, 제3차 산업을 융합하고 어울러 우리 농업을 제6차 산업이라는 새로운 틀로 바꾸자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그 밑그림은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 관행과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물’을 창조하자는 정부의 캠페인이 자칫 내리먹이식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반발을 사기도 한다. 억지로 농업에 ‘6차’를 입히고 ‘창조’를 신기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농업의 새 틀을 짜려는 정책은 어쨌든 시장개방의 현실을 이겨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창조농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는 창조농업시대를 어떻게 열어나갈 것인가, 그 서막은 무엇이 이끌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융·복합 농업연구를 통한 창조’가 그 시발점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첨단이 아닌 적이 없던 농업에 각 분야의 첨단과학을 접목하고 아우르는 연구가 결국 창조농업시대의 시작과 끝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농업인신문은 농촌진흥청의 대표적인 융·복합 연구 성과와 향후 개발 전망을 짚어보는 것으로 창조농업의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편집자의 글]

글 싣는 순서
① 농업생산 자동화와 로봇 개발
② 생명공학과 접목한 바이오농업
③ 동식물자원과 신기능·신소재 연구
④ 기후변화, 새로운 농업창조 기회
⑤ 창조농업, 6차 산업화 시작과 끝




◇ 융·복합 연구로 농업영역 확장과 창조

농촌진흥청(청장 이양호)의 융·복합 농업연구는 먹을거리와 직결된 것뿐만 아니라 인류의 건강과 보건의료를 책임질 신기능, 신물질 개발에까지 닿아있다. 현 정부의 ‘창조농업’ 주창 이전에도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기술, 로봇 등 기계공학기술은 물론 바이오 신약과 에너지, 건강기능식품과 같은 의학, 약학, 식품, 에너지 분야 등과도 협력연구를 진행해왔다. 융·복합 연구의 괄목할 만한 진전에 따라 그 결실은 동식물 자원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던 양잠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되돌린 것은 농촌진흥청 융·복합 연구의 시발점이자 미래성장 동력을 발굴한, 어찌 보면 ‘창조농업’의 첫 롤 모델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실크를 뽑아내는 단순한 ‘입는 산업’에서 ‘먹을거리 산업’으로, 다시 고부가가치의 의료용, 기능성소재산업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온 일은 다름 아닌 ‘영역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융·복합 연구의 시너지는 분야를 불문하고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봉독(벌침)을 이용한 화장품 원료 개발은 국내 기업의 유럽 수출까지 이끌어냈다. 형질전환 복제미니돼지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인간의 급성혈관성 면역거부반응을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든지 바이오장기용 복제돼지의 육성과 그 후대 생산을 통해 의료분야의 미래를 밝게 했다는 내용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함께 바이오에너지 원료인 거대 억새 재배와 이용체계를 구축한 일과 제주 특산물인 감귤을 이용해 바이오겔 제품을 개발하고 수출까지 이뤄낸 일은 동식물 자원을 활용한 신기능, 신소재 개발 차원에서 융·복합 연구의 특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미생물에서 결핵치료용 신물질 뽑아내

결핵은 인간의 생명을 수없이 앗아간 질병 중 하나로, 세계인구의 3분의1 이상이 잠재적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학 발달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900만 명의 새로운 결핵환자가 발생하고 약 200만 명이 결핵에 걸려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결핵 치료에 사용하는 대개 항생제는 1960년대 전후에 개발한 것으로 긴 투여기간, 부작용과 약제내성 등의 문제가 있어 새 개념의 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결핵치료용 신물질이 농촌진흥청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에 의해 개발됐다. 농생명바이오식의약소재개발사업단(단장 서주원 명지대 교수)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미생물에서 유래한 결핵치료용 신물질에 대해 국제특허출원을 완료하고, 국내 신약개발 벤처사와 실용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1차로 국내 토양에서 분리한 6만6천여 희귀방선균 추출물에 대해 초고속 스크리닝시스템을 이용해 결핵균에 강한 활성을 보이는 균주를 선발했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방선균이 신물질임을 확인하고 ‘에쿠미신’이라 명명했다. 약효평가에서는 결핵치료제 중 활성이 우수한 리팜피신과 동등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물론 치료제에 내성을 지닌 결핵균들에 대해서도 효과를 보였다. 반면 대장균, 포도상 구균과 효모에 대해서는 활성을 나타내지 않아 결핵균에 대해 매우 높은 선택성을 띠었다.

허건양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은 “전 세계 결핵치료제 시장은 약 칠천억 원 수준인데 이 신물질을 활용해 모든 결핵환자 집단을 치료할 수 있는 약제를 개발할 경우 약 사천억 원 이상의 신규시장 형성이 가능하다”며 “인류 공공보건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적 수준의 바이오장기용 동물 연구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의 동물생명공학분야 최근 연구성과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축산과학원은 초급성 면역거부반응 유전자가 제어된 형질전환 복제미니돼지 생산을 시작으로 급성혈관성 면역거부반응 유전자가 도입된 복제미니돼지 생산 등 바이오장기용 동물 생산과 이종이식 연구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09년 초급성 면역거부반응 유전자(GalT)가 제어된 복제돼지 ‘지노’ 생산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초급성과 급성 면역거부반응을 제어할 수 있는 2개의 유전자(GalT+CD46)가 조절된 ‘믿음이’를 생산했다. 후속 연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급성혈관성 면역거부반응 억제기능을 지닌 유전자가 도입된 형질전환 복제돼지 ‘소망이’ 생산에 성공했다.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할 경우 초급성, 급성, 세포성, 만성의 순서로 인체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인체에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하면 보체가 활성화돼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고 곧이어 혈액응고에 의한 혈전 형성, 허혈 증상 등 혈관이상증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 ‘소망이’는 혈액응고현상을 감소케 하는 데 중요역할을 하는 유전자(CD73)가 돼지에서 발현되도록 개발됐다. 이런 면에서 급성 혈관성 면역거부반응을 제어,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가 도입된 복제돼지 생산은 향후 이종장기 이식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획기적인 성과라는 평이다.

장원경 축산과학원장은 “인체면역거부반응 유전자 제어 벡터 제작, 체세포 개발, 복제란 생산, 형질전환 복제돼지 생산 등 전체과정을 축산과학원 독자적으로 수행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며 “교육과학부, 보건복지부 등 바이오장기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다른 부처와도 긴밀히 협조해 이종이식 연구 발전에 진력함으로써 축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일신하게끔 일익을 담당할 것”이라고 했다.

◇ 억새 재배해 바이오에탄올 대량 생산

거대 억새에서 바이오에너지 원료를 대량 확보하고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시험공장이 완공됐다. 농촌진흥청은 바이오에너지용 억새 ‘거대1호’ 시범단지 148헥타르를 완성해 2014년 말부터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수확물을 해마다 3천〜4천 톤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지난 10월에 밝혔다.

농촌진흥청은 바이오에너지원료 확보 차원에서 2009년에 기존 억새보다 훨씬 큰 ‘거대1호’ 품종을 개발했으며, 2011년부터는 올해까지 3년에 걸쳐 금강 유역에 대규모 억새 생산단지를 조성했다. 농촌진흥청은 향후 강변둔치 등 국내 유휴지에 억새를 재배함으로써 재배면적을  5천 헥타르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단지에서 생산한 억새를 수거해 분쇄, 전처리, 당화, 증류·탈수 과정을 거쳐 최종 바이오에탄올 생산까지의 공정을 개발하고 파일럿플랜트 규모의 시험공장도 구축했다. 이 공장은 하루 100킬로그램의 억새 원료를 처리해 무수에탄올 15리터를 생산할 수 있는 소규모이나 국내에 처음 적용된 설비. 억새 1톤당 200리너 이상의 에탄올 추출을 목표로 뒀다. 농촌진흥청 식량과학원은 바이오에탄올 생산의 핵심기술인 ‘전처리 기술’을 개발해 특허 등록하는 한편 당화를 위한 ‘바이오에탄올 생산 균주’를 순수 우리기술로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감귤주스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이용해 바이오겔을 생산하는 기술 개발도 농업자원 활용사례로 꼽을 만하다. 이 기술의 산업체 이전을 통해 바이오겔을 원료로 해서 만든 화장품의 수출길이 열리고, 런던협약에 따라 슬러지의 공해상 투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감귤가공 때 생기는 매년 5만 톤의 슬러지 처리기술이 개발됐다는 점이 호평을 받았다.

농촌진흥청 감귤시험장 측은 “버려지는 부산물에서 감귤 바이오겔이라는 귀한 친환경 신소재로서의 가치를 재인식시킨 이번 연구야말로 농가소득 증대뿐 아니라 시장개방에 대응한 세계시장 진입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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