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 황준량 목숨 지키기 위해 살기 띤 칼에 다가서

“이놈들 아무리 산중 무리라지만 사람 목숨 귀한걸 알아야지. 이놈들.”
노루가 함정 쪽으로 오는 것을 본 영주가 노루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너는 뭐 하러 내려왔어? 이놈들은 죽여 버려야 돼. 상관하지 마.”

그때 구덩이 속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고함 소리에 노루는 멈칫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또 뭔 참견을 하려고? 필요 없으니까 너는 꺼져, 이미 촌장께서 결정한 거야. 군수면 어떻고 정승이면 어때? 그래도 살려줄 수 없어. 너희들 저쪽으로 가서 저 아래 있는 놈들 화살로 쏴 어서!”

위쪽의 낌새를 느꼈는지 무관이 다시 힘을 모아 소리친다.
“이분은 단양 군수, 황준량이라는 소리가 안 들려요?”
노루는 영주를 말려야 했다. 군수님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은 차마 볼 수 없었다. 노루는 영주를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형님,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요 예?”
“저리 비켜 저 놈들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누님과 동생들이 다 노비로 끌려갔어, 절대 용서 못 해. 아니 용서 안 해! 또 살려주면 관군을 보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거야. 그럼 우리는 떠나야 된단 말이야. 그러니 너나 비켜.”

영주는 칼을 뽑아 들었다. 노루를 노려보는 핏발선 눈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 노루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영주의 살기 띤 칼이 조금씩 다가왔다. 노루는 얼른 함정 위로 삐죽 솟은 나무를 뽑아들었다.
“너 어서 꺼지지 못해? 너 때문에 두어 달 다리 펴고 잠을 못 잤어. 왜 이놈들이 온지 알아? 네가 살려 보낸 놈 때문에 이놈들이 기어 들어온 거야.”
“형님, 이분은 내가 아는 분이예요. 단양 군수는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아시잖아요.”
“필요 없어. 정 네가 나선다면 너 먼저 없애 주마.”

영주가 빼어든 칼이 아침 햇살에 번쩍이자 소름이 돋았다. 노루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매일 몇 시간씩 훈련한 다음부터는 제법 무사 티가 나는 영주였다. 노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기편은 없었다. 그렇다고 군수님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노루가 비켜서지 않자 몇 명이 활시위를 당겼다. 여차하면 노를 쏠 기세였다.

“내 너를 죽여야지 안 그랬다간 생기동이 남아있지 않겠어. 네가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 모두 죽게 된단 말이다 이놈아.”
영주가 휘두른 검에 오동나무 한 뼘이 잘라져 나갔다. 노루는 영주의 칼은 피할 수 있었지만 활시위를 재는 무리는 피할 수 없었다. 활시위를 당긴 저들도 십여 년 전 도락산에서 누군가를 잃고 지금 영주처럼 복수심에 눈이 이글거렸다. 영주의 칼이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키자 노루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지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이제 영주의 칼에 죽거나 고슴도치가 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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