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인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축산자원의 심장부인 축산과학원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한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다. 천안에 있는 축산자원개발부는 특히 토종닭, 우리맛닭, 우리맛오리 등 주요 가금자원이 집중된 곳이다. 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오리가 폐사하고 산란율이 현저히 떨어짐에 따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고병원성(H5N8형) 인플루엔자로 확진됐다고 밝혔다. 축산과학원은 축산자원개발부 축사에 있는 닭 1만1천여 마리, 오리 5천여 마리 전체 가금을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했다고 덧붙였다.

축산과학원 소속 직원들은 조류인플루엔자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반경 3킬로미터 이내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자 지난 1월 27일부터 자체 위기경보 4단계 중 최고수준인 ‘심각’ 단계를 발령, 아예 기관출입을 막고 직원 100여 명이 한 달 넘게 관내에 기거하며 방역에 전념했다. 정부의 고강도 방역 매뉴얼대로, 오히려 그보다 더 철통의 방역활동을 벌였음에도 조류인플루엔자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야 감염경로나 발병원인이 밝혀지겠지만, 정부는 긴급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시비비야 가리면 될 일이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후약방문 식의 처방은 곤란하다.

물론 정부도 허탈할 만하다.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했고, 사료도 원료부터 자체 제조까지 오염원을 제로로 만들고, 철새의 접근을 막기 위해 화약총을 터뜨리는 등 온갖 방책을 강구했지만 결국 이중삼중의 철통방역을 뚫고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씨닭과 씨오리 등 국내 가금산업의 탯줄이랄 수 있는 우수 유전자원을 손써보지도 못하고 땅에 파묻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농림축산식품부장관과 대통령은 더 곤혹스러울 것이다. 연두 업무보고에서 장관은 농업인의 방역의식을 탓하며 걸린 이력의 농가가 또 걸리면 보상을 줄이는, 이른바 ‘삼진아웃’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농가의 반발에도 밀어붙인 결과가 이것인가. 정부기관을 삼진아웃 시킬 것인가, 가축질병은 불가항력 요인이 있으니 ‘농가 탓’은 오류임을 인정하며 공식사과하고 어불성설의 삼진아웃제를 살처분할 것인가. 대통령과 장관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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