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쌀시장이 기로에 섰다. 무역 관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쌀시장을 전면 개방할 것인가, 아니면 관세화를 미루고 현행처럼 의무수입물량을 조금씩 늘려갈 것인가 양자택일의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불에 기름을 붓듯 이동필 농식품부장관이 올 6월까지 쌀 관세화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사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자 이 장관이 부임 전 원장을 맡았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먼저 설레발을 쳤다. 관세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우리가 부담을 떠안은 의무수입물량의 비중이 만만찮다는 점을 근거로 관세화를 더 미루기보다는 고율관세를 매기는 방식의 쌀 관세화가 우리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그리하여 이른바 ‘관세화 대세론’에 불을 지핀 것이다. 반면 개도국 지위 확보와 쌀 고율관세에 따른 반대급부의 농산물시장 개방 등 예측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부른 관세화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관세화유예기간을 더 두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지난 20년의 관세화유예기간을 허송한 채 튼튼한 보호막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쌀의 경우 경제재로만 볼 수 없다는, 정치논리나 국민정서까지 가미된 ‘민족 식량’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탓에 정부나 의회도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20년 전 세계무역기구 체제 출범과 거의 동시에 이뤄진 쌀시장 개방은 전체 농산물시장 개방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 대한 농업인의 불신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을 지키겠다고 공약했지만 이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쳤으니 신뢰관계는 일찌감치 무너진 것이다.

실제로 쌀시장 개방 이후 농업강국들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국내 농산물시장은 외인들의 각축장이 됐다. 예컨대 쇠고기시장이 그렇다. 미국과 호주에 이어 캐나다까지 치열한 점유율 경쟁에 들어섰다. 조만간 뉴질랜드까지 가세할 것이란 예상이다. 과일시장도 다르지 않다. 시장개방이 능사가 아니듯 쌀 관세화유예 역시 만능열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농업인 의견과 정서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음 한뜻으로 택한 방책은 실패해도 함께 쓴맛을 보고 함께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방이 밀어붙여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쌀시장을 한국농업 배수의 진은 대통령이 아니라 농업인임을 정부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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