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량, 입청(立廳) 지났지만 거동조차 못해 답답

준량은 이틀이 지나자 붓기가 다소 가라앉고 조금씩 말을 할 수 있었다. 옻이 크게 올랐지만 생기동에서 나는 느릅나무 진액을 바르고 달여서 뿌리자 붓기가 빠진 것이었다. 구덩이 속에서 있던 무관과 장사는 독기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튼튼한 몸이었기에 망정이지 약골 같았으면 목숨을 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었다. 밖을 내다보며 주변을 살펴보던 토정이 촌장을 보며 말을 건넸다.

“촌장 어른, 참으로 좋은 곳을 잡았소이다.”
“토정 선생께서 보시기에도 그렇습니까?”
“예.”

“이곳이 생기동이 맞소? 옛날 도참설에 의하면 소백과 태백사이에 십승지가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정감록』내에 의풍과 봉화가 있는데 화점 선생께서는 소백과 태백사이에 용두산이 있는 곳이라고 점쳤습니다.”
밖에서 촌장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봄에 왔던 자들이 여자를 데려 왔습니다. 영주형님의 여자랍니다.”
토정과 준량이 일어나려 하자 촌장이 만류했다.
“아니오. 며칠 묵으려면 어차피 알게 될 일 아니오. 그냥 계시지요.”
초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건장한 체격에 검은 수염과 칼을 찬 모습이 전설 속의   무사 같았다. 덩그러니 기둥만 네 개 있는 초막이 꽉 찬 느낌이었다.
“오래간만입니다 촌장어른.”
“그래, 여자를 데려왔다고?”

사냥꾼이 준량과 토정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준량과 토정이 나가자 사냥꾼은 무릎을 바짝 당기어 앉았다.
“촌장 어른 웅담 열세 냥하고 사향 세 냥, 지황 다섯 근입니다.”
“다른 것은 있는데 사향은 없소.”

“꼭 갖고 가야 합니다.”
“며칠 말미를 주면 다른 산중에서 구해보겠소. 산삼으로는 안 되겠소?”
“꼭 사향을 구해줘야 합니다. 아주 급한 거라서…….”
“알았소. 그럼 며칠만 묵으시오.”

촌장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사냥꾼을 쉬게 하고는 토정이 말한 곳을 둘러보았다. 아침이슬이 걷히자 때를 만난 듯 고추잠자리가 돌담모서리에 떼 지어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토정, 용케도 찾아 왔구려. 고맙소.”
토정이 먼 산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번 소나기 때문인지 산 아래 계곡에는  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발아래 계곡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토정이 말을 꺼냈다.

“가정백호(苛政白虎)란 말이 있지 않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이지요.”
“바로 그거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산골짜기에 모여 살 생각을 했겠지.”
준량은 정신을 차렸지만 기동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었다.
입청(立廳)을 해야 하는 준량은 몸이 달았다. 산비탈 돌무더기 사이로 무관이 걸어왔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움직이지 못하더니 오늘은 조금 기력을 되찾은 것   같았다. 준량을 본 무관은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준량은 가슴이 답답했다. 입청할 날짜가 이틀이나 지났다.
더 이상 주체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보내서 연락을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입청할 날이 지났으니 충주 관찰사에 보고 하게 되면 난처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영감님, 오늘은 우창 도방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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