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의 위상과 기능을 다시, 제대로 짚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농촌진흥청은 한국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산증인이자 식량자급국가 달성과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녹색혁명의 산실, 백색혁명과 첨단미래생명산업의 선도자 등 그 수식은 한껏 자랑차다. 산업 비중이나 인구 면에서 ‘농업국가’라고 할 1950년대를 지나고 1960년대부터 농촌진흥청의 활약은 그만큼 눈부셨다. 농림공직자들에겐 군 농촌지도소장과 군수가 맞먹던 그 시절이 달콤한 추억일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하는 지방자치제도와 민선 자치단체장 시대가 열리기 이전까지 농촌진흥청은 방대한 조직과 인력을 거느렸다. 그러다 첫 ‘격변’이 일었다. 지방농촌진흥기관의 농림공직자, 농촌지도직 공무원의 지방직 전환이 지방자치제도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중앙정부부처인 농촌진흥청과 지방정부기관인 시군 농업기술센터 사이에 있던 튼튼한 동아줄은 그만 실오라기 같은 끈이 돼버렸다. 그 태풍 직후 몰아진 쓰나미의 공포가 바로 농촌진흥청의 민영화 논란이다.

그 파란을 넘어 농촌진흥청은 존속했고 스스로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십 년 후, 이명박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농촌진흥청의 민영화, 즉 출연연구기관 전환을 발표했다. 농촌진흥청 2천여 직원과 지방농촌진흥기관 공직자들은 크게 반발하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불도저’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고 굴종의 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거세게 반발한 것은 농업인들이다. 그 자랑찬, 눈부신 농촌진흥청은 농업과 농촌, 농업인을 위해 존치해야 하노라, 아우성과 현수막으로 전국 방방곡곡 뒤덮었다. 그렇게 농촌진흥청의 건재는 확인됐다.

그러나 역설인지 학습효과인지 농촌진흥청의 행보는 십년 전과 달랐다. 직원을 내보내고 조직을 떼어내는 자구책은 존치의 조건부가 됐고, 직원들은 부평초인양 ‘바람’ 부는 대로 가고 사기는 떨어졌다. 한국농업의 미래와 350만 농업인에 대한 열의보다는 개개인의 앞날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당연한 것인가, 사명감과 공직의 ‘무게’는 이제 무의미한가, 농촌진흥청 위상과 기능이 무엇인가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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