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한 열흘쯤의 간격으로 천금과도 같은 봄비가 두 번 왔습니다. 처음에 온 비는 대지의 오랜 목마름을 해결하고 때에 전 산천을 씻어냈다면, 두 번째 온 것은 온갖 풀과 나무들에게 꽃단장을 하게 하는 비였습니다. 사람이나 짐승들은 비를 맞으며 단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풀과 나무들은 빗속에서도 피어납니다. 꽃 대궁을 밀어 올려서는 수줍은 듯 수선이 피고 개나리 진달래가 한데 어울려 노랑치마 붉은 저고리를 만듭니다. 매화는 이제 가지 끝까지 꽃을 피워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나무 전체가 꽃등입니다. 비오기 전의 낮게 가라앉은 푸근한 기온 탓에 온 집안이 매화 향으로 어지러울 지경인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향기가 비에 묻어 땅에 스미려는 듯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꽃잎이 떨어져 날립니다.

어떤 것은 향기로, 어떤 것은 자태로 각자 모습을 드러내며 시드는데, 그러나 이것들에게는 사람이나 짐승에게서처럼 우열이 없어 좋습니다. 비를 빨아들이는 것이 뿌리라면 가지들은 비를 머금는 것입니다. 아직 잎이 피지 않은 나무의 가지들이 붉거나 희고 푸르게 빛나는 것은 비를 머금어 단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뭇가지 끝에서 피어나는 그 연둣빛 수만 수천의 어린 이파리들을 누구라서 꽃 아니라 하리요. 봄비는 단순히 ‘봄에 오는 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봄비 자체가 그대로 꽃과 어울려 꽃입니다.

새벽녘, 잠자리에서 듣는 봄비 오는 소리가 가장 좋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 작고 가벼운 것들이 지붕에 내려와 큰 방울을 이루고 땅에 떨어져 추녀소리를 내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소리와도 견줄 수 없습니다. 잠이 깨어 빗소리를 들었는지, 빗소리가 꿈을 타고 흐르다가 제 잠을 깨웠는지 분간하려는 것은 참으로 미욱한 짓입니다. 멀리서인지 가까이서인지 꿈에서인지 깨어서인지 분간 못할, 오직 아련하고 몽환적이고 맑고 따뜻한 그 소리가 좋습니다. 모든 것이 영원할 듯 편안합니다. 아무런 바람도 생기지 않습니다. 너와 나의 구분도 사라집니다. 빗소리가 저를 끌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한없이 땅속에 스며 냇물로 흐르기도 하고, 이제 막 꽃 봉우리가 터지려하는 살구나무 속에도 들어가 봅니다. 그러다가 싸한 그 향기에 묻혀버린 젊은 날 이별의 아픔 같은 것을 생각해내고는 이제 빙긋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정말로 이 비에도 자각된 의식이 있어 저는 그 비와 함께 땅과 강, 바다와 하늘, 그리고 나무와 풀, 꽃, 새들의 속에 머물며 생을 마치고 다시 태어나는, 그 순환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없기에 상상하는 것이지만요. 그러고 보면 봄비는 어쩌면 인간이나 짐승들에게도 단장을 하게 하는 듯합니다. 생각의 단장 말이지요.

오늘도 새벽부터 봄비가 왔습니다. 날이 희부윰할 때까지 빗속에서 호랑지빠귀가 울었습니다. 유달리 이 새는 따뜻한 봄날 하루를 예견케 하는 새벽 희뿌윰한 안개 속에서 울기를 즐겨 하는 것 같습니다. 한 서너 마리 정도가 멀리서 와 가까이서 우는데 따라 과거 같기도 하고 현재 같기도 한 쓸쓸한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눈으로 쉽게 볼 수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비를 맞고 나무에 앉아있는 새가 있습니다. 덩치가 조금 큰 검은 회색의 새가 혼자 앉아있습니다. 깃을 다듬거나 울지 않는 걸로 보아 틀림없이 무슨 생각에 잠긴 것입니다. 새들에게도 인간에게서처럼 사랑의 격정과 기쁨, 이별의 쓸쓸함과 서글픔이 있어 짝을 이루기도 하고 저렇게 혼자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쩌면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봄비>

네 발자국 소리같이 고운 게
또 있을까

봄비 -
하고 너를 부르면

잠결에도
금방 풀내음이 묻어난다

차마 수줍어
창문 아래서

달래처럼
머리를 빗는 너

가만히
두 팔을 벌리면

지난겨울의 이별도
문득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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