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청을 미룬 황준량, 웬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다

생기동에는 새벽이 되어도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산중에 숨어살기 때문일 것이다. 준량은 따사로운 햇살에 일어났다. 높은 곳이라서 새벽을 알리는 햇살이 유난히 빠른 것 같았다.

 토정이 끙끙 앓는 신음소리를 냈다. 준량은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과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었다. 엊저녁까지의   반듯하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준량은 급히 촌장을 찾았다.

 “모두 내 잘못이요. 내가 주저하는 바람에 토정이 먼저 약을 먹었소.”
 “제가 독약이라도 탔단 말입니까?”
 “촌장이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서 보낸 약을 잠시 의심했으니 무례를 용서하시구료.”

 “이건 삼단수요. 거기다 산중에 나는 비약을 조금씩 썼습니다.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남은 약 한잔씩 하시고 일찍 떠나시지요. 다른 무리가 알면 곤란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짐 속에 간단한 요기를 넣었으니 부지런히 가면 해지기전에 단양에 도착하실 것입니다. 삼단수를 드셨으니 해독하는 일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나도 촌장의 말은 들었네. 내 걱정 말고 어서 가게. 이 뒷산을 돌아 내려가면   장회가 나오는데 내일 거기에 가 있을 것이야. 어서 떠나게. 오래 지체할수록 자네만 힘들어지네. 도방회의 때문에 어수선한데다 자네가 입청을 하지 않아 야단일걸세. 충주 관찰사에서도 사람이 온 모양이던데 관청에서 자네 찾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을 걸세. 어서 가보게.”

 고을 수령이 아무 기별 없이 입청이 여러 날 늦는 것은 중벌에 해당하였다. 특히 관찰사까지 기별이 닿았으니 심히 걱정스러웠다.
 “오기 전에 단양 관청에 들렀더니 마침 한양 가는 역무가 있길래 몇 자 적어 보냈네. 문제가 생기면 형님에게 힘 좀 써 달라고 했네.”

 “고맙구려. 형님께 해(害)가 가지 말아야 할 텐데……. 혹 이번 일을 꼬투리 삼아 예전 일을 들추어 뭐라 그러면 어떡하나?”
 “걱정 말게. 내 조카 산해는 훗날 정승감일세. 그리고 자네도 단양 군수를 지내고 나면 목사는 될 운이니 어서 가보게. 자네 운은 내년에 필 상이야. 아무쪼록 조심하게.”

 준량은 더 지체할 수 없었다. 도방회의는 단양 고을의 가장 큰 행사였다. 수백 명이 단양을 찾아 북적댈 것이다. 그런데 고을의 장이 아무런 기별없이 관청을 비운 지 여러 날이 지나 벌써 충주 관찰사의 관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니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준량이 방을 나서자 안개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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