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내어주나”… 농업개방 요구 수순 밟기 우려

미국내에서 유기가공식품이라고 인증하면, 이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제품으로 인증해야 한단다. 유기농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 유기가공식품인증제도를 만들었는데,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상호동등성 협상’이란 이름으로 수출길을 막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 미대통령의 방한과 더불어 몰고 올 농업개방 요구는 말그대로 농업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헌데 우리 정부는 ‘해주겠다’고 이미 손들어 선언했다. 이에 대한 첫단계로 지난 3일 쌀개방 관련 토론회와 유기가공식품 동등성 협약 설명회를 열었다. 공청회 성격의 이들 행사는 동등성 협약도 해야 하고, 쌀도 관세화해야 한다는 ‘통보’식 요식행사라는 비난이다. 양쪽 행사의 쟁점들을 살펴본다.

□ 유기농 탈을 쓴 ‘GMO’

지난 2008년 만들어진 유기가공식품인증제도는 그동안 표시제를 요구해온 수출국들과의 관계, 국내 관련업종의 단계적 발전 등을 고려해 올 1월1일이 돼서야 시행에 들어갔다. 헌데 별안간 법적 근거도 없이 6개월 계도기간을 설정했다. 혹자는 유기식품 수출국인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부는 인증제 적용시 위법사항이 대량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유기간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찌됐던 미국은 ‘유기가공식품 동등성협상’을 맺을 때까지 시간을 번 셈이다. 또한 얼마전부터 한미FTA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면서 유기가공식품의 유통시스템을 바꿔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상호 동등성 협약이다. 한국이 TPP 가입을 위해선 협약부터 시행하라고 조건을 내걸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유기농식품 기준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미농무부 유기농식품 기준은 GMO 혼입율을 5%까지 허용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 절대 불검출(0%)을 기준하고 있다. 유기가공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GMO식품을 피해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다가 유기농을 선택하는 것인데, 이조차 의심된다면 유기가공식품인증제를 시행하는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란 지적이다. 또 유기가공식품에 사용가능한 식품첨가물이 미국은 98개, 한국은 78개이다. 국내에서 허용하지 않는 식품첨가물이 미국산 유기가공식품에서는 가능하단 얘기다.

미국은 자국산 유기가공식품을 수출할 경우 한국에서도 똑같이 유기농임을 인증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가장 안전할 것으로 믿고 있는 유기농식품에 GMO나 화학물질이 섞였다면, 굳이 유기농식품으로 분류할 필요도 없게 된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를 인정해주기 위해 설명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현재 진행중인 GMO표시제의 부실화도 염려된다. 유기농에 GMO를 허용하면 일반식품 GMO 기준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다. 시장교란은 자명해진다.
이에 국내 농업계는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단 법적 근거없는 수입 유기가공식품에 대한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빨리 철회하고, 인증제를 전면 실시하라고 촉구중이다. 또한 미국과 EU 등의 협상에서도 동등성 협상이 아닌 국내 기준에 충실한 협상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쌀관세화 논쟁

쌀 관세화를 할 것인지, 계속 유예할 것인지의 논쟁은 ‘미래를 모른다’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논쟁이 더욱 커지는 이유는, 농업계를 비롯한 국민들의 불안과 궁금증을 정부가 못풀어준다는데 있다.
정부의 원론적인 ‘관세화 여론몰이’ 또한 농업계의 반발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농식품부는 “농업계의 주장대로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면 최선이겠지만, 법률적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란 이유를 들어 관세화로 방침을 굳힌 상태다. 6월까지 관세화여부를 결정해 9월까지 WTO에 통보할 것이라고 이미 계획을 짰다.

농식품부 박수진 식량정책과장에 따르면 관세화는 1994년에 이미 타결된 UR협상에서 발생하는 의무이고, 일시적 의무면제를 뜻하는 웨이버(Waiver)는 웨이버 기간동안 의무수입물량에 대해서만 수입하면 된다. 그러나 웨이버를 얻기 위해서는 의무수입물량 중량 등 패널티가 요구되고, 일시적인 의무면제가 지나면 결국 관세화를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필리핀의 경우도 현상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무수입물량의 2.3배(35만톤→80만5천톤)를 늘리면서 유예연장을 시도 중이란 설명이다.

또한 정부는 WTO에 부합되게 관세를 매길 경우 가격경쟁력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현 의무수입량을 인정하는 선에서 관세화를 적용하면 추가적인 관세화유예 조치보다 한결 부담을 덜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농민단체측은 협정문에 관세화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쌀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민단체들에 따르면 식량위기에 대처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기본권이고, WTO는 공평한 진행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상의 어떤 무역이나 경제도 생존과 생명의 가치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미국이 올해 TPP의 선결조건으로 쌀 관세화와 관세감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정부의 고율관세 정책은 관세화이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구조란 지적이다. 한미FTA, 한중FTA, TPP 등을 통해 관세율 협상이 당연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란 것. 지난 한미FTA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게 쌀의 관세화 뒤에 관세율 협상을 벌이자는 약속을 한 것으로 드러난 것(2011년 위키리크스)도 관세를 낮추자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수입쌀이 혼합미로 대량 유통되고 있는 현재 쌀시장이 더욱 혼탁해질 것이란 주장도 내놨다. 밥쌀용 수입쌀이 2010년 2만톤을 팔기가 어려웠는데, 2012년에는 14만톤을 넘겼다. 이는 수입쌀과 국산쌀을 혼합해 국산포장지로 팔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쌀 관세화 개방시 정부와 농협이 관리했던 수입쌀을 누구나(외국자본 포함) 수입해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예상을 벗어난 완전개방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일단 정부가 결론을 정해놓고 압박하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기존 관세화 이행 국가인 일본이나 대만의 경우 극복 가능한 대안을 만들고 사회적 협의가 있었는데, 일본은 논의 효율적 이용 등에 대해 소득관련 종합대책을 세웠었다. 진정성을 갖고 정부는 농민을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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