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마늘밭 고자리를 손으로 잡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게는 쉬에서 갓 깨어난 것에서부터 큰 것은 구더기만한 그 징그러운 것을 손으로 툭툭 눌러 죽인 겁니다. 마늘이 난 비닐구멍 두서너 개에 하나 꼴로 그놈의 고자리가 구물거리면서 마늘에 들러붙어 갉아대고, 결국 쓰러뜨리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은 하여간에 종자도 건지기 어려울 듯했습니다.

안식구에게 같이 하자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몸서리나는 그 짓을 마늘 못 먹을 지경이 된다하더라도 차마 시키지 못할 일이었거든요. 저도 코팅장갑위에 부엌에서 쓰는 비닐장갑을 덧끼고 해도 손으로 전해지는 그것이 너무 싫어서 나중에는 흙을 끼얹어 이기고 짓뭉개었습니다. 아마도 그저께 하루, 어제 하루해서 죽인 고자리수가 수만 마리였을 겁니다. 고자리였기 망정이지 다른 무엇이었다면 그리 못했겠지요. 그러나 고자리라도 나중엔 못할 짓입디다. 생명가진 것이랍시고 같잖게 무슨 동정이 있어서겠습니까. 이렇게 하면서까지 농사를 해야 하나 하는 자기 모멸감 같은 것이 작동했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있는데 손님 두 분이 찾아왔습니다. 집에 들렀다가 저를 보고는 이내 밭으로 왔는데 고자리 죽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리고 밭둑으로 물러나더군요. 그분들에게서 차라리 농약을 치는 게 인간적이라고 여기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저도 잠시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 마늘이 결국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농약을 친 마늘고 비교해서 어떤 게 인간적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고자리를 잡고 난 첫날밤은 꿈에까지 고자리가 보였습니다.

고자리에 둘러싸여 발 딛는 곳마다 노란 물이 터져서는 제 옷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원수 놈의 고자리! 잡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퇴비에서 사단이 난 것 같습니다. 유기농자재로 등록 고시된 포대거름인데 그 거름을 뿌린 데마다 고자리가 생겨나고, 많이 뿌린 데는 더 많이 있으니 의심할 수밖에 없지요. 옆집에 사시는 형님도 이 거름을 쓴 작년엔 고자리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올해는 쓰지 않았더니 없더라는 걸로 보아 저도 내년엔 쓰지 않아야 할 듯합니다. 이렇게만 생각해도 조금 위안이 되는 듯하군요.

오늘은 뒤늦게 고구마 종자를 묻었습니다. 고구마 두어 두둑 심으면 가을에 캐서 몇 집 보내주고 겨울과 이듬해 봄까지 우리식구 실컷 먹는데, 필요한 종자 순이라야 기껏 네 다발 정도. 시장에서 사다 써도 무방합니다. 아니면 형님네가 항상 많이 심으니 훗물 순을 조금 얻어도 되고요. 여태껏도 가끔 그랬으니까요. 그 믿는 구석이 있기에 할까 말까 망설이느라 조금 늦었는데 겨우내 고구마 담아서 저장했던 콘티박스를 정리하면서 남은 고구마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안방 아궁이에 불을 때는 거실의 온도가 알맞았는지 썩지도 않고 생생하게 보관된 고구마들이 당연하지만 사람보다 먼저 때를 알아서 붉은 싹을 밀어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중 스무 개정도를 골라 흙을 채운 네모난 그릇에 묻고 물을 주고는 따뜻한 방 아랫목 구석에 들여 놓았습니다. 저것이 시간이 지나서 흙 밖으로 싹을 내밀면 비닐하우스 속이나 어디 적당한 땅에 구덩이 파고 거름 넣고 옮겨 심습니다. 그러면 순이 길게 자라나서 끊어 종순으로 쓰게 될 겁니다.
고구마는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물입니다. 지금이니까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서리피해 없이 종순 기르기가 수월하지만 비닐 나오기 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남없이 대보름 지나고 봄이 되면 방 윗목에 만들어두었던 고구마 통가리를 들어내고 바닥에 조금 남은 고구마를 정리하여 가마니에 담아두는데, 고구마 종순은 이때 잘 선별된 고구마로 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밖엔 아직 추워서 고구마가 얼고 썩으므로 방안에다 기르지요. 방 윗목 한구석에 적당한 넓이로 나무틀을 짠 다음 거기에 방바닥 장판 상하지 말라고 헌 가마니나 거적을 폅니다. 그리고는 두엄자리의 몽근 거름흙을 가져다 적당한 두께로 깔고 뾰족뾰족 싹이 비치기 시작하는 고구마를 촘촘하게 놓습니다. 다시 그 위에 거름흙을 덥고 물을 주면 고구마 묘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마르지 말라고 물 주어야 하고요. 그렇게 방안에서 한 스무날이나 한 달 가까이 지나면 봉긋봉긋 흙 거죽을 트면서 고구마 새순이 올라옵니다. 흙 속에서 올라오되 흙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아주 깨끗하게 자주색이거나 붉은 이파리입니다.

저에게는 두 살 더 먹은 막내누님이 늘 함께 있어 날마다 엎디려 방 윗목구석의 고구마 묘상을 들여다보며 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어느 날 그 싹이 방긋 고개를 내밀면 그만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어둠침침한 속에서도 밝고 싱싱하게 올라오는 그것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밖에 나가면 마루 밑의 누렁이가 반가운 동무이듯이 방안엔 고구마 싹이 생명의 신비와 경이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느끼곤 하던 그 가슴 벅참의 힘이 저를 농사꾼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저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고구마를 심어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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