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높아만 보이는 우창 도주

  매포 포구에 몰려있던 동방 무리에게 무거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해동 무리가 단양 하진 포구에 모여 있다는 소식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매포 포구로 와야 할 터였다. 하진 포구로 갔다는 것은 동방과의 손을 끊겠다는 무언의 의미였다. 또한 우창과 손을 잡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죽령에서 산적의 습격을 받아 우두머리들이 죽고 나머지는 혼비백산 목숨을 건졌다고 하지만 몇 년 동안 자신들이 공을 들인 것을 생각하면 자신들과 같이 있어야 할 것이 도리였다. 그런데 우창의 하진에 있다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우창에 붙은 것이라고 봐야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영월과 영춘 보부상이다. 오늘부터 몇 명씩 매포에 모이기 시작했고 동방방주는 이들을 잡기 위해 포구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강원도 영월 무리는 동방방주가 이끄는 대로 매포 도담지 역에 머물렀다. 그러나 영춘과 주천의 무리들은 육로로 하진포를 빠져나갔다. 동방 방주는 입안이 타들어 갔다. 해동과 영춘, 주천까지 우창에 합류하자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그러자 동방 보부상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못했다가는 장사는 커녕 목숨도   위태롭게 됐다는 소문이 해질 무렵부터 돌기 시작했다. 내일 모래로 다가온 도방회의까지 이탈자를 막는다 해도 고작 백여 명으로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동방 방주 엄홍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보부상을 열심히 한 탓인지 정선지역에서 돈깨나 만지는 부자 대열에 들어섰다. 보부상들이 외상을 대납하거나 이자를 싸게 주어 그들의 신임을 샀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동해를 거쳐 해동까지 동방 방주에게 손을 내밀자 동방 방주는 세력이 부쩍 커졌다. 우창에 대적할 만한 떠오르는  무리가 된 것이었다.

마침 오년마다 열리는 보부상 우두머리를 뽑는 도방회의에 여러 무리에게 추천받아 우창 도주 자리를 노리게 되었다. 도방회의에서 해동과 경북 동방만 손을 합치면 문제없이 우창 도주는 따 놓은 당상이라며 엄홍은 기대를 품었었다. 하지만 막상  지금은 한낮 허상에 지나지 않는 헛된 꿈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주 자리를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정선에 모아둔 많은 재물은  어제 약속한 대로 우창에 대납했다. 지금까지 쓴 것을 계산하면 도방회의가 끝날 즈음에는 빈털터리가 될 터였다.
다행히 도주가 된다면 지난날의 영화는 물론이요 평생 재물은 걱정을 안 해도 되겠지만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꼴이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과 고향 정선에서 기다리는 식솔들 생각이 떠오르자 자신에 비해   우창의 힘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내일 날이 밝으면 몇 명의 추종 무리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 정선으로 가느냐 아니면 도방회의에서 끝까지 도주에게 도전하느냐 오늘 결정해야 했다. 내일 아침 보부상의 이탈이 없으면 우창에 가서 도방회의에 참석을 하는 것이고 간밤에 이탈자가 늘어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엄홍은 일찍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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