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감성편지
고추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꽤 많이 심은 것 같습니다만 겨우 삼백 포기입니다. 무슨 농사든 하려면 좀 규모 있게 해야 하는데 이거는 원 애들 소꿉장난 같은 것이라 고추 심었네 하고 말할 거리도 못되는 것이지요. 그래도 때 되어서 무엇인가 심지 않으면 마음이 이상합니다. 작물이 자라야 할 밭이 텅 비어 있는 것도 참 못 견딜 일이고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돌려짓고 여러 가지 품목을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한 가지는 땅도 좀 쉬게 해야 되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좁은 땅에서 가난하게만 살아봐서인지 땅을 놀리면 죄 받는 것으로 압니다.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해를 더해 갈수록 딱히 어떤 것을 심어야 할지 망설임만 늘어가지요. 심어서 잘 된다는 보장도, 사주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작물을 심어놓고도 희망이란 게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는 것은 남에게 땅을 빌려주든지 힘닿는 만큼만 취미 삼아 가꾸는 그 재미 하나이겠습니다. 거기에 보태서 나이 많이 자신 분들이라면 자식손자 바리바리 싸주는 것이겠고요.
이러저런 것 생각해볼 때 ‘농사꾼의 나이’로 저는 참 어중간한 것 같습니다. 젊은 것도 아니요, 늙은 것도 아닌 이제 쉰일곱인데 갈수록 힘이 들어서 농사일이 겁이 납니다. 그러니 자꾸 올해 고추처럼 규모가 작아집니다. 원하지 않아도 가끔 노는 땅도 생기고요. 작년에는 심을 게 마땅찮아서 어영부영하다가 한마지기 정도나 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철 사이에 풀이 얼마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겨울이 지났어도 풀이 땅에 가라앉지 않아서 갈아엎는데 더 애를 먹었습니다. 이래서 힘이 들더라도 지어놓기는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설마 버리거나 썩히기야 할까마는, 저는 비위치레를 하지 못해서인지 내 농산물 사달라는 말은 하기가 더 어렵더군요. 이날 이때껏 짓는 것은 어찌어찌 해왔는데 파는 것은 정말이지 완전 꽝입니다. 물건을 남보다 월등하게 잘 만들어낸다면 파는 것 걱정 없다는데 잘 만들 재주조차 저에게는 없습니다. 유기농이 그래도 경쟁력 있다지만 그도 허울 좋은 것일 뿐 규모화 되지 못한 외진 곳에서 넙떡지만한 것을 호미 괭이로만 하고 있는 꼴이니 농기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어쭙잖은 철학만이 저 홀로 고매하다고 할까요?
사실 일이라는 건 막상 해보면 조금 더하나 덜하나 힘든 것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가령 올해 제가 고추를 천 포기 심으려고 마음먹었다면 삼백 포기의 세 곱절 더 힘이 드는 것이겠지만 천 포기를 심으려는 마음의 준비가 있는 것이기에 어렵잖게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백 포기일 땐 그만큼의 준비밖에 없으므로 더 이상 힘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그것을 여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삼백 포기 고추를 어떻게 심었는지 좀 들어보실 랍니까?
이른 봄에 갈아놓은 밭에 겨우내 모아두었던 거름을 내서 미리 깔아놓긴 했습니다만 거름이 모자란 듯했습니다. 그래서 경운기로 한 번 가면서 반골을 만든 다음 그곳만 쭉 따라가며 거름을 다시 넣습니다. 그리고는 오면서 반골을 더해서 온전한 한 두둑을 만들었습니다. 한골의 길이가 어림잡아 백 포기정도는 심을 듯해서 그렇게 세 두둑을 만든 것이지요. 거름이 많다면 전면에 뿌리고 두둑을 만들면 조금 수월하겠지요. 거기에 관리기로 두둑을 만들면 더 수월하고요. 그렇게 만든 세 골을 이번엔 매끔하게 다듬으려고 괭이질을 합니다. 한골 두골 세골. 한 두둑에 두 번 갔다 와야 하므로 여섯 번, 여기서 그만 힘이 바닥난 것입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마음먹은 만큼만 힘이 나온다는 것 말이지요.
이러니 돌려놓고 생각해보면 힘들어서 농사 못 짓겠다는 것은 제 나이에는 조금 엄살이 섞여있는, 일 조금만 하려는 핑계인 듯도 합니다. 물론 제가 일하는 방식이 힘들 수밖에 없기는 합니다. 흙을 다루는 일이지만 단정하지 않거나 가지런하지 못한 꼴은 참아내지 못하는 성벽도 거기에 한몫을 하고요. 처음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에도 지나치게 완벽하려고 해서 그 또한 피곤합니다. 농사짓는 방식이나 작물 선택의 대변화가 없는 한 제 딴으로 농사지어서 살림꾸리기란 점점 더 어려울 듯합니다. 비닐 씌우고 심고 물주고 흙 끌어 덮는 사이 한나절이 후딱 지나가서 씻고 마루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데 이런저런 말말끝에 제 아내 왈, 자기는 이런 식으로는 농사짓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럼 어찌하겠느냐고 제가 빙긋이 웃으며 묻자 망하든 흥하든 한 작물만 몽땅 심는다나요? 아무리 몇 십 년 같이 일을 해왔어도 내색하지 않은 생각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잘 짓지도 못하는 농사에 파는 것은 뒷전이요. 일거리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걸려 있으니 어깃장 내는 소리란 걸 저는 압니다. 제가 너무 저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 것인가요? 이야기를 조금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안식구 하는 말은 금방 ‘아이올시다’ 라는 것이 드러나서 고개를 끄덕이는데요.
이럴 때는 애들이 얼른 커서 이 농사를 이어받아 새롭게 뭔가를 하겠다고 덤벼들고 저희 내외는 옆에서 잔소리 하지 않고 그저 도와주기만하면 될 터인데, 앞으로 몇 년이 더 가야 그럴 날이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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