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방주 엄홍, 나는 이제 쉬고 싶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술기운이 올랐는지 식솔들이 여강의 자갈밭에 누워있었다.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물소리도 숨을 죽이며 흘러갔다. 어라연 바위에 노송이 늘어져 있다. 언제 날아 왔는지 커다란 올빼미가 죽은 가지에 앉아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엄홍이 일어나자 동생도 따라 일어섰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자 엄홍은 술기운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정말도 우창에 불이라도 난다면 큰일이었다. 어쩌면 모든 화살이 동방 무리들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도주는 손해 본 것만큼 벌기 위해 더욱 날뛸 것이   눈에 선했다. 동방 보부상 중에 미처 정리 못한 상인에게는 엄청난 불똥이 튈 것이 뻔했다.
 “아우야, 이제 때가 온 것 같다. 일단 남은 돈으로 네가 책임지고 장사를 해라.  나는 이제 조용히 쉬고 싶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자 엄홍이 장사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예전에 우창에서 소금을 싣고 오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금배가 휩쓸리자 여러 식솔들은  살리고 자신은 배와 같이 휩쓸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곳 어라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문산 길이었다. 그때부터 엄홍은 이곳 어라연 어딘가에 아버님이 잠들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서 한 번도 이곳을 그냥 스친 적이 없었다. 오늘도 술을 강물에 흘려보냈다. 그것은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과 또 자신을 지켜 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형님, 전 그렇게 못합니다. 우리 형제가 열심히 뛰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아마 내일 쯤 선(先)배가 올라올 테니 그때 같이 올라가도록 하여라. 힘들 텐데 일찍 자거라. 나는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가겠다.”

 엄홍은 너럭바위에 누워 동생이 내려가자 눈을 감았다. 저 멀리 아득히 아버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놋그릇, 철 등이 가득한 쇠 배와 소금 배가 지나가고 나룻배에는 아버님과 나그네를 싣고 물길을 거슬러 오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내일쯤 선단은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물건을 가득 실은 배도 , 빈 배도 있을 것이다.

 동방 방주는 어라연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우창에서 출발한 배가 오늘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같은 날씨이면 굳이 문산 나루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저 아래로 이십여 척의 배가  떼를 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평상시는 서너 척이 고작이지만 우창 도방회의 때문에 여강에 배가 떼를 지어 가는 것이다. 오년마다 보는 장관이었다.

 앞선 끌배에 건장한 청년 몇 명이 연기를 보고 노를 저어왔다. 강가에 다다르면 끌배에서 뛰어내린 청년들이 배들을 끌어 올렸다. 어라연 상류에서부터 한 배씩 닻을 내리고 뭍 모래까지 밀어 올리고는 말 못을 박아 배를 매었다. 능숙한 솜씨였다.
어라연 큰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엄홍이 내려가자 모두들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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