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여러분 고생 많았소. 술잔을 준비했으니 오늘 저녁은 여기서 묵기로 합시다.”
 백사장에는 돗자리 몇 개와 방주 동생이 문산 나루에서 실어온 옥수수 술 몇 통이 전부였지만 모두들 기뻐하는 눈치였다. 문산 나루 주막집의 주모가 날렵하게 술을 따랐다. 시커먼 가마솥 속에는 구수한 매운탕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여러분, 오늘 나는 방주 자리를 내어놓겠소.”
 “나이도 들었고, 도방회의에서 겨루어 보지도 못하고 쫓겨 온 나는 오늘부로 모든 것을 동생에게 넘겨주기로 했소. 여러분들이 적극 도와줘야 합니다.”

 아침이 되자 어라연은 분주해졌다. 각자 자기 배에 타고 가서 조금 위에 위치한 문산 나루에서 아침밥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새로운 방주는 많은 사람들 사이로 형님을 찾았다.  방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라연 바위 뒤쪽에서 젊은 끌배 사공이 소리쳤다.
 “얼른 여기로 와 보시오.”

 그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우르르 몰려갔다. 이 무슨 일인가? 바위 옆 조그만 모래 언덕에 엄홍의 신발만이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양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날랜 끌배 사공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제법 깊은 곳이었는데도 사공은 땅인 것처럼 돌아다니며 찾고 있었다. 새로운 방주는 어제 저녁, 형의 말이 생각났다.

 ‘내 딸 둘을 너의 자식이라 생각하고 키우게.’
 며칠 후 어라연을 떠나려는 동방 무리들 사이로 구슬프게 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구에서 엄홍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었다. 방주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오열하였다. 어라연에 모인 수십 명의 보부상들도 말을 잇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킬 뿐이었다. 우창의 보복을 목숨으로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했다는 것을 그들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하늘같은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지 몰랐다.  전 방주 엄홍이 가끔씩 자신들에게 해 주던 말이 떠올랐다.
 ‘모두가 여러분 덕분에 이토록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때가 되면 좋은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좋은 때가 이런 때인가? 전국 곳곳에서 도적들이 날뛰고, 관에는 악덕 관리들이 설쳐대고, 보부상들 사이에서는 우창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지금이 좋은 때인가? 빚이 쌓여 이자에 또 이자가 붙어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때가 좋은 때인가? 방주의 전 재산을 털어 쏟아 부었어도 구멍 뚫린 항아리마냥 메워지지 않은 때가  좋은 때인가?  어라연에 모인 수많은 상인들과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문산 나루 주모까지 모두   흐느껴 울었다. 엄홍의 시신을 배에 태우고 앞장서 노 젖는 사공의 구슬픈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구슬픈 아리랑 소리가 물결 따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새로운 방주는 형님이   죽음으로 이끌어준 자리를 언젠가는 우창보다 더 크게 성장시킬 것을 다짐하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으로 지난해 돌아가신 형수님과 형님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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