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단체의 회원들이 저희 집에 오겠다는 연락이 며칠 전에 왔습니다. 이분들이 일 년에 한번, 자기들이 쓴 글을 묶어서 동인지 같은걸 만들어내는데 그 책 앞머리에 실을 내용 즉, 권두대담과 초대 시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서랍니다. 몇 번 거절을, 참 정중하게 했는데도 여러 가지 안면과 인연을 들어 기어이 막무가내로 오겠다는군요.

이런 경우가 정말 딱합니다. 제 생각에 저라는 사람은 그런 곳에 얼굴 내밀 처지도 못되려니와 워낙 그런 것을 싫어하는데 지역사회의 그 안면이라는 것으로 사람을 조여오니 이건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요. 문학을 향한 순수한 열정하나로 술잔 기울이며 밤을 새워 토론을 하겠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저도 그것에 목말라 하지만 이런 격식 차리는 일, 누군가 무엇인가의 앞에 서야 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체질은 아닌 듯합니다.

잘 모르지만 지역문단에도 문단정치라는 게 있어서 이런저런 정부보조나 사업을 놓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문학과는 거리가 먼 눈살 찌푸려지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함량미달의 문학잡지라는 것들이 순수하게 봐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찾아오겠다는 사람 앞에서 속내를 들어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인데, 한편으론 거절도 지나치면 그 또한 욕을 먹겠지요. 이런 것들이 소위 안면이 가진 부정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온다는 날자가 내일로 다가와서 저희 집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워낙 남 눈치 보지 않고 저희끼리만 살아버릇한 공화국이어서 치우고 정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옛날식 집이라 손님을 맞을 거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부득불 안방에 맞아들이곤 하는데 밖에서 접대하지 못할 겨울 같은 때면 안식구의 스트레스가 참 많이 쌓입니다. 여름 한철을 빼곤 방안에 늘 꾀죄죄한 이불이 깔려 있지요, 좁장한 방에 제 책상의 어질더분한 것부터 여기저기 널려있는 책 신문 옷가지, 우리끼리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던 것들이 손님을 방안에 들일라치면 하나같이 치워내야 할 것들이니까요.

집의 구조를 두고 이때는 아내의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사랑채를 하나 지었습니다만 그것 역시 난방이 온돌이라 날밤새워갈 술꾼 글쟁이 아니면 불을 넣지 않는 까닭에 이 사람에게는 그도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오늘 제 안식구는 또 한나절 집안청소에 매달려 있습니다. 저는 저대로 할일이 있습니다. 많으나 적으나 손님이 온다하면 먼저 하는 일은 저 한길 입구에서부터 저희 집 문 앞까지 길 양옆의 풀을 깎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집둘레와 울안의 잔디를 깎고 길과 잇닿은 마당 앞의 화단, 화단 앞의 밭둑 풀을 깎습니다. 그게 꼬박 하루나 하루 한나절 일입니다.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예초기질이라는 게 일중에서도 그렇게 상일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날마다 하면 어쩔지 모르겠는데 어쩌다 한 번씩 할라치면, 그러니까 이걸 한나절만 등에 지고 풀을 깎으면 점심 밥 숟갈이 입에 떠올려지지 않도록 팔뚝에 힘이 빠지는 일이지요. 하지만 손님 덕분에 저희 집이 마치 이발소를 나서는 사람의 뒤통수처럼 산뜻해지면 저는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은 꼭 손님만 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 년이면 네댓 번씩은 다녀가시는, 객지에 사시는 형님과 누님이 올 때도 그렇고 나가 사는 딸애들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이 사시는 장모님과 처가식구들이 온대도 이렇습니다. 풀만 깎는 게 아니라 다른 곳까지도 정리하게 됩니다. 집안을 빙 둘러 놓여있는 처마 밑의 여러 물건들과 뒤란 청소, 그리고 토방마당을 쓸고 물을 뿌려 두는 일까지, 안식구는 방 대청 부엌 그리고 빨래까지. 청소가 얼추 마무리 되면 아내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듯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이렇게 가끔가다 한번씩, 어항에 새물을 갈 듯이 무엇인가를 비워내고 바로 세우고 닦는  것은 그것이 남 때문에 이루어지는 집안일 일지라도 그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 마음가짐으로 이어집니다. 더불어 깨끗해진 마음은 어떤 각오나 다짐, 더 나아가 새로운 생각과 계획에까지 미치게 되니까요. 그것이 비록 일주일정도, 아니 삼사일 정도만 지나도 색이 바래 다시 예전처럼 때가 켜켜 쌓인다 해도 그 동안은 참 많이 신선해진 자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만들어진 이 좋은 기운이 결과적으로는 찾아온 손님과 좋은 이야기, 좋은 관계로 발전하더군요. 어떤 의도가 개입되기가 어려울 정도로 순도가 높아진다고 할까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은 이렇게 보면 준비라는 게 우선돼야 되는 것 같은데 가끔은 정말 준비할 기회도 주지 않고 찾아와서 불쾌해진 경우가 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면 들어보고 이해가 가는데 그렇지 않으면 대게 목적이 좀 불순한 경우가 있습니다. 온다고 미리 연락하면 거절하고 피할까봐 그랬다는 사람일수록 친절한 사이임을 앞세워 자기이야기만 늘어놓거나 엉뚱한 부탁을 하지요. 이럴 경우 저는 제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수양이 덜 돼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인데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제가 어찌해야 되는지를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내일은 또 어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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