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

얼마 전까지 쓸쓸하던 거리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양 읍내에는 많아봐야 일반 관리와 노약자들 빼고 나면 기껏 오십여 채가 전부였다. 그들이 공역과 노역을 모두 해결해야 할 판이었다. 군이라기보다는 그저 조금 큰 촌이라고 볼 수 있다.

가촌도 육십여 호로 나와 있지만 사실은 한 집도 없는 빈 문서일 뿐이었다. 놋재 넘어 장림이나 대흥사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구석구석 몇 집만 남아있는데도 문서에는 백호도 넘게 나와 있었다. 그러니 세금도 백호를 분담해야 할 터였다. 백성들의 고통이 오죽할까 싶었다. 게다가 하진 너머 풍달촌까지 우창의 식솔들이 전부 차지하였다. 관청보다 무리가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은 수였다. 

오히려 단양에서는 우창 도주가 군수보다 더 힘 있는 세도가였다. 매포는 얼마 전 돌아보았지만 차라리 화전민이 몇 집 산다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옛날 개국공신 정도전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라는 매포도 화전민 몇 명이 살고 있을 뿐, 삼봉 정도전 선생이 지었다는 정자만이 쓸쓸히 도담 삼봉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변치 못한 고을이었다. 문서에는 오백호가 살고 있고 전답이 이천결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세종대왕 때는 삼백호에 천오백이십삼결이고 했는데 해마다 조금씩 늘어 지금은 오백호에서 이천결이라 한다.   하지만 현재는 백호에 전답 오백결도 안되면 안됐지 넘을 리가 없었다.

 고려시대에는 역동 우탁 선생이 나오시고 조선 시대에는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 선생이 이름을 떨쳤던 이 고을이 어찌 이리 되었는지 한숨만 나올 뿐 이었다. 이름 있고 뜻 있는 선비는 백성들이 곤궁하고 피폐한 것을 보고 한숨지으며 떠나고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리는 탐관오리는 백성에게 고혈을 빨아먹고 떠나고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이름뿐인 문서에 잡초로 뒤덮인 들 뿐이었다.

조정에서는 여강의 길목이요 중방의 관문이라며 임금이 직접 관리를 내려 보냈는데 누구 하나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참으로 슬프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준량의 스승인 퇴계 선생이 얼마나 곤궁하고 기가 막혔으면 관직을 헌 짚신 버리듯 물리치고 안동에서 후학만을 가르치시는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날 며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준량은 잠이 오지 않았다. 벌써 깊은 밤이 되었다. 백성들을 생각하는 준량의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 날 준량이 입청하자 동헌의 뜰에는 포박당한 죄인이 있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피투성이가 되어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형방이 의기양양 아뢰었다.
 “사또께 아뢰옵니다. 이 두 놈이 지난 밤 우창에 불을 지른 범인입니다.”
 “죄인을 반듯하게 세워라.”
우창의 서리가 나서며 말했다.

 “사또 저놈은 안동 사람으로서 보부상인데 외상을 다 갚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상법상 물건을 받아가지 못하자 앙심을 품고 포창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죄인은 듣거라. 우창 서리 말이 사실이렸다.”
 “그렇소.”

 준량은 기가 막혔다. 잘못을 알면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인데 어떻게 된 것이 독기 어린 눈으로 가시 돋친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었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느냐?”

 “사또, 안동포라 하면 세상이 알아주는 좋은 물건입니다.”
 느닷없는 안동포 얘기에 준량은 의아했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늘 최곳값만 받아오던 것이 올해는 타 포의 절반 값도 못 받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백주에 도적질과 무엇이 다릅니까?”

 내친 김에 치닫는다고 죄인이 큰소리로 외쳤다. 아마 죽기를 각오한 모양이었다.
 “창고에는 이포 삼포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준량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지방 수령들이 한양의 조정에 상납한 물건들이 여러 관리에게 녹으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빼돌린 물건도 셀 수가 없고요. 이런 물건들 모두가 대상에게 헐값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지방 상인들이 사들여 되파는 것을 이포라 하고 지금은 삼포도 흔하다 합니다.”
 “허허 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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