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날이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오월이 채 가기도 전에 섭씨 삼십 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니, 여름이 길어질까 걱정도 생깁니다. 가문 날이 계속되면 날이야 의례 덥기 마련인 것이라, 단비 한두 번에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할 테지만 지금은 당장 밭의 곡식들이 목이 타들어 가는 중입니다. 마늘 양파나 밀 보리야 다 된 농사라 걱정은 없는데, 고추는 물을 주어야 할 것 같고 콩이니 참깨 녹두 따위는 심어도 싹이 날 것 같지 않아 아예 비 오기를 기다려야지 싶습니다. 근년에는 비둘기 꿩 따위의 유해조수가 많아진 탓에 콩은 포트 묘를 내서 옮기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때 바로 직파를 한다면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그 하나씩 올라오는 싹은 모조리 이 녀석들의 차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여 어젠 마늘을 뽑았습니다. 마늘대가 다 쇠어버렸을 때에도 그놈의 검정고자리가 이제는 딱정벌레처럼 성충이 되어 이파리를 갉아먹더니 이파리 없이 대궁만 서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뿌리썩음병도 좀 있어서 뿌리 부실한 마늘이 뽑아지기는 잘하는데, 된 품세는 작년만 훨씬 못합니다. 멀리 사시는 형님과 누님에게 오랜만에 마늘 여남 접씩 드리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마늘이 이 모양 이 꼴입니다. 그래도 여기서 좋은 것을 골라내어 드린다면 체면치레는 되겠는데 남은 것들은 거의 찌꺼기이지 싶습니다. 작년엔 마늘을 많이 심었다가 팔지 못해서 탈이었고, 올해는 적게 심은 마늘이 병충해에 시달려 탈이 됩니다.

두 시간 가량 마늘을 뽑는데 땀으로 등짝이 흥건히 젖었습니다. 마늘대가 푸석거리고 땅에서 흙먼지가 올라와 안식구의 코 밑이 어느새 새까매졌습니다. 점심 먹고 잠깐 누워 쉬다가 잠이 든 것을 보고 저 혼자만 살짝 몸을 일으켜 나와 마늘을 뽑기 시작했는데 반 두둑도 뽑기 전에 안식구도 나오더군요. 오후 두 시가 지났어도 날이 너무 더운 탓에 안식구를 밭에 끌어들이기 미안해서 관두라 하려다가 그래도 조금 거들면 다음에 해야 할 내 일이 조금은 수월하겠다 싶어 암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몸피가 뚱뚱하지 않은 사람이라 추위보다는 더위를 잘 견디는데, 저보다는 조금 더위를 못 견디는 안식구 핑계로 산그늘 밑에 나와 한참씩 땀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햇빛이 서쪽으로 기우는 산그늘 밑은 짙디짙은 녹음 때문에 햇빛이나 바람이 모두 남빛을 띱니다. 그 남빛 속에 산그늘 길을 따라 핀 노란 붓꽃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언젠가 그 말을 했더니 몇 년을 두고 붓꽃을 심고 가꾸어서 이제 저희 집으로 오는 길은 붓꽃길이 되었습니다. 오월 이 무렵 논밭일로 정신없이 바쁠 때면 또 어김없이 뻐꾸기가 산그늘 속에서 울어대지요. 뻐꾸기 소리는 여느 새보다도 높고 맑아서 멀리 울려 퍼지는데 이 녀석들은 주로 아침나절과 저녁나절에 웁니다. 뻐꾸기 한 마리가 삼일 전부터 울어댑니다. 이놈은 한곳에서 오래 울지 않고 한 번에 서너 마디씩 울고는 자리를 옮깁니다. 부산스러워 보이는 게 아마도 짝짓기 철이 아닌가 여겨지네요. 생김생김도 날렵하고 목청마저 남다른 것이 어찌 새끼는 제 품에서 키우지 못하고 오목눈이 같이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작은 새에게 맡겨 기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짐작 못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도 하겠는데 그런 놈이 어느 때는 대낮에 울기도 하는지라 새끼를 남에게 맡기고 참 할일 없는 놈이다 싶어 저는 시를 한편 쓰기도 했습니다.

양파밭 매다가
감자밭 매다가
돌아서 양파밭 매고
또 돌아서 감자밭 매고

논에 갔다가
집에 갔다가
또 논에 갔다가
밭에 가는데

니미럴!

낮잠 자다 하품 하냐
뻐꾸기 우는소리 너무 한가해
내 발걸음도 느려진다.                          
-오월-

마늘밭 옆이 감자밭인데 날이 가문 탓에 시든 대가 한두 포기 눈에 띄어 저녁엔 그걸 캐다 된장국이나 지져먹자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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