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새벽 네 시에 자명종 소리를 맞춰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앙기를 가진 후배가 “형님 것은 한 필지뿐이니 다섯 시부터 심어버립시다”해서 입니다. 다섯 시부터 심으려면 모판 떼어서 차에 싣는데 30분, 논까지 가는데 20분, 늦어도 네 시에는 일어나지 않으면 약속시간을 맞출 수가 없지요. 하지만 자명종보다도 제가 더 정확히 잠이 깨어서 옷 주워 입고 밖에 나왔습니다. 네 시인데도 밖이 그리 어둡지 않고 먼동이 트는지 동편 산마루가 희붐해집니다. 안식구도 따라 나와서 모판 싣는 것을 거듭니다. 모판을 싣고 논에 도착하니 네 시 오십 분. 이앙기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물꼬를 한번 확인하고 논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멀리서 후배가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정확히 다섯 시. 이 친구도 저만치나 초저녁잠이 많고 새벽잠이 없기로 소문났는데 남의 땅을 얻어서 100여 마지기나 나락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 새벽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를 다 심고 나니 여섯 시 사십 분입니다. 꼭 한 시간 반이 걸렸군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앙기가 한번 갔다 올 동안에 저는 모판을 정리해서 열 개씩 묶어놓기까지 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논의 네 귀퉁이에 모 몇 개씩 때우는 것뿐입니다. 딴 때에는 이앙기 보내놓고 저는 모까지 때워버리고 집에 가서 아침을 먹는데 오늘은 어쩐지 아침 먹고 다시 와서 하고 싶습니다. 배도 고프려니와 모는 덜 자라고 논은 덜 고른 데가 있어서 물대기가 신경 쓰일 듯해서입니다.

이제 집에 가서 아침 먹고 나올 거냐고 후배에게 물으니 자기는 아침을 논으로 내오라고 해서 먹는다는군요. 그것 참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저는 그래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논이 한 필지뿐이니 논에서 한나절을 넘겨서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풀을 맬 때야 며칠씩, 하지만 그도 힘이 들어서 겨우 한나절씩만 하고는 집에 갑니다. 만일 차가 없다면 집에 쉽게 오갈 수 없을 테니 점심을 싸오기라도 할 텐데, 차가 있으니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아련하게 들밥을 먹던 옛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저 사는 동네가 관광지로 완전히 변해서 남아있는 논이 단 한마지기도 없지만, 예전에는 약 100여 마지기의 논이 마을 옆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엔 해안사구를 따라 아름드리 노송이 빼곡히 들어차서 그늘을 만들고 있었지요. 그 그늘에 둘러앉아 먹던 들밥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소싯적에 저는 소 쟁기질로 마을의 논을 거의 다 갈았는데, 보리 베고 모내기하는 농번기철에는 저 같은 소애비가 한껏 대접받는 때입니다. 농번기 아니라도 대접받긴 하지만 특히 모내기철에 그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밥을 줘도 먼저 주고, 맛있는 반찬도 소애비에게 더 앞당겨 놓아주지요. 일 잘해달라는 것이기도 하고, 무논에서의 쟁기질은 다른 일보다 더 힘이 들기도 해서입니다.

소나무 숲 그늘에 둘러앉아 먹던 점심은 논농사 많이 짓고 인심 후한 집의 그것일 때는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 멀리 있는 사람, 오가는 사람 다 불러들여서 함께 술과 밥을 나누기 때문에 한마디로 잔치이지요. 일하면서 하는 이 잔치야말로 가장 좋은 잔치 아닐까요? 어느 지면에서도 이야기를 조금 썼습니다만 모내기철에 저희 지방에서 해먹던 음식 몇 가지 더 이야기하렵니다.

밥은 형편 따라서 흰쌀밥이나 반식기이지만 여기에는 꼭 퍼런 풋완두콩을 넣어서 하고요. 이 지역 칠산 어장에서 잡히는 조기에 고사리를 넣은 조기탕, 들깨 갈아 붓고 깐 바지락 따위를 넣고 슴슴하게 만든 머위 즙나물, 입안이 다 얼얼하게 담은 독게 무젓, 새로 담은 얼갈이 무김치, 그리고 닭이나 돼지고기 끓인 국,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이것 대신 풋감자 뻐개 넣고 끓인 된장국! 이 이상 더 훌륭한 들밥 반찬 있거든 나와 보라고 하십시오.

배는 고픈데 예전에 먹던 이런 음식들을 떠올리니 배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고, 이와는 다를 제 아침밥상에 자칫 밥맛을 놓치지 않을까 싶군요. 그러나 시장이 반찬인 것이라 이건 다 배부른 타령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집에 와서 아침 잘 먹고 커피까지 한잔 여유롭게 아내와 같이 마시고 다시 논으로 갈 채비를 합니다. 모판이 있던 마당에 모판이 보이지 않으니 마당이 조금은 쓸쓸해 보입니다.

사실 올해는 모내기를 손으로 해보려고 했습니다. 제 논 옆엔 유기농으로 짓는 어느 공동체의 논이 여럿 있는데 그이들은 해마다 꼭 손모내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때로 풍악을 잡히기도 하는데 올해도 그랬답니다.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지만 제바람이기도 해서 저는 그 논의 모내기는 가서 못줄 잡아주며 흥을 보탰지요. 그 공동체식구가 삼십 명이 넘으니 한 필지를 손으로 낸다면 쉬엄쉬엄해도 두 시간이면 끝이 날겁니다.

이앙기 혼자 두 시간과 삼십 명의 두 시간, 꼭 삼십 배의 차이이니 먹매니 품삯을 따진다면 그 또한 삼십 배는 아니라도 몇 배에 이르겠지요. 그렇지만 논둑에 그늘막이라도 쳐놓고 농자천하지대본 농기라도 높지막이 꽂아놓고 풍물 굿을 잡힌다면 이런 것 저런 것으로 계산하지 못할 무형의 품위와 격이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올해도 그리하지는 못하고 모내기를 끝내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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