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한지 삼 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 김매기를 시작했습니다. 키가 많이 자라지 않은 모를 심은 까닭에 물을 깊게 대지 못해서 군데군데 등이 난 곳마다 새까맣게 풀이 올라왔습니다. 풀 중에는 단연 피가 많습니다. 싹이 튼 시기를 가늠해보면 나락보다도 한 달이나 늦었으련만 벌써 피는 벼와 똑같이 컸습니다. 다른 풀도 마찬가지지요. 이러니 저 피를 어릴 때부터 잡지 않으면 말 그대로 나중에는 논이 피바다가 될 게 뻔합니다.

첫날 한나절은 논둑 베고 논둑에서 논으로 뻗어나가는 풀들을 걷어내고 끝났습니다. 이렇게  먼저 해놔야 조금 개운한 맛이 나면서 일할 맘이 생기지 그렇잖으면 김매는 내내 꺼림칙한 마음입니다. 둘째 날부터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논에 들어갑니다. 우선 풀이 가장 많이 난 곳부터 김을 맵니다. 물을 충분히 대놓은 탓에 땅이 물러져서 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집니다. 피를 뽑아서 한 움큼씩 타래지어 다시 논에 쑤셔 넣고 땅에 달라붙어있는 풀들은 손으로 득득 긁고 휘저어서 뽑아냅니다. 피는 포기 피가 아니라 낱 피이므로 벼와 구분해서 뽑아내기가 수월한 까닭에 많이 난 곳은 양손 질로 휘적휘적 뽑아나가면 재미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흙탕물을 깊게 일으켜 벼의 뿌리에도 숨이 트이게 하지요. 그런데 키 작은 풀들은 워낙 자잘하게 많아서 그걸 빼지 않고 벼 포기사이마다 긁어댈라치면 힘 드는 것보다도 짜증이 먼저 납니다.

한 앞을 매나가는 데는 네 골씩 잡고 갑니다. 욕심내서 여섯 골을 잡고 나가면 손도 잘 닿지 않을뿐더러 풀을 놓치기 일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느려서 더 힘이 듭니다. 그렇게 일고여덟 번 오가면 두 시간 쯤 지나가고 허리가 아파서 잠시 쉬어야 합니다. 논둑에 나앉았을 즈음 때 맞춰 집에서 새참광주리라도 내온다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먼 논을 부리는 까닭에 이런 호사를 누리기는 힘이 드는군요. 오로지 제 손으로 챙겨온 안주 없는 막걸리 한 병이 유일할 뿐, 어차피 한 나절씩만의 일이기에 새참시간도 줄이며 꽉 채워서 일을 해야겠지요. 그래도 논둑에 나앉은 잠깐의 시간과 막걸리 한 잔이 일을 쉽게 합니다. 막걸리 한 잔이 기계로 말하면 윤활유인 셈이어서 몸의 근육이 풀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다시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김을 매노라면 이제 이마며 등에서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하지요.

구부렸던 허리는 더 자주 펴주어서 서있어야 하고, 양손 질이던 것은 느려져서 한 손질이 됩니다. 천이백 평 넓은 논의 아직 한 귀퉁이도 매지 못해서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힘이 드니까 ‘이것 또한 언젠가 지나가리라’ 맘먹고 그야말로 앞만 보고 나아갑니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배꼽시계는 점심때가 가까웠음을 알립니다. 막걸리는 이제 마지막 한 잔이 남았으므로 힘을 내서 한 두골 더 왔다 갔다 합니다. 이렇게 한 나절을 논에서 보내고 논둑으로 올라오는 순간이, 그 순간이 참 좋은 시간입니다.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꾀부리지 않았다는 자긍심. 하긴 남의 일이 아니니 꾀부리고 자시고 할게 뭐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 이면에는 내가 내 자신에게 칭찬받고 싶어 하는 무의식이 숨어있기 마련이지요.

사흘째 되는 날은 아들 녀석과 함께 갔습니다. 열흘 동안의 농번기 방학 중이어서 집에 와 있는데 김매기 좀 도와라 했더니 순순히 따라 나옵니다. 그새 조금은 컸다는 것인지 아니면 올 여름방학에 자전거 여행 다닌다며 학교 다니는 짬짬이 알바를 해서 자전거를 샀는데 거기 애비가 돈을 좀 보태어주어서인지 아무튼 아들 녀석과 함께 논에 일하러 가니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저에게 일을 시키던 옛날에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어 시킨 것이지만 저는 지금 일부러, 나중 농사꾼 되기를 바라서 시키려는 것이니 아비와 아들이 땅에 발을 딛고 서서 일하면서 서로 연대감과 친연성을 확인한다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이것은 저의 오랜 로망이었습니다. 저는 아들 녀석에게 예전에 알려 줬음직한 일 방법을 한 번 더 찬찬히 가르칩니다. 아니 그러기 전에 두골만 잡아 나가는 애는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는군요. 역시 누구 아들답게 참 잘합니다요 그려. 이러는 저 또한 불출이겠고요.

아들과는 그렇게 이틀 같이 김을 맸습니다. 허리 아프다고 쉬자는 투정, 그만 집에 가자는 졸림을 받아내고 녀석을 달래 일을 하려니 저 혼자 하는 양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옆에 말상대가 있다는 것과 녀석의 꼴이 잡히기 시작하는 어깨며 옆에 섰을 때 풍기는 갓 사내의 냄새 따위가 참 든든해서 일이 덜 힘들었습니다. 닷새째부터 다시 저 혼자입니다. 유난히 힘이 드는 날입니다. 허리보다도 엉덩이뼈에 참으로 묵직한 통증이 내리눌러서 그만 빠개지는 것 같군요. 일이 힘이 들면 서글픈 감정이 생깁니다. 아직 저 까마득한 것들을 혼자 해야 된다는 막막함, 저는 이때 노래나 시가 나오더군요. 그러므로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은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를 먼저 달래서 일으켜 세운 그 진정이 남에게까지 이를 때 시의 보편성이 확보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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