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관행 탈피한 소규모도계기 시연회 개최

토종닭을 직접 잡아 판매하는 산닭시장이 새로운 변화를 꽤하고 나섰다. 자비를 들여 소규모 도계기를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위생설비를 대폭 강화해 더 이상 ‘혐오스럽다’, ‘비위생적이다’라는 지탄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산닭 시장은 지난 2008년부터 제도권 진입을 위해 분주한 행보를 이어왔지만 ‘법대로’를 반복하는 정부로 인해 답보상태에 놓여있다. 현행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는 대형도계장에서 도계하지 않는 닭고기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 4천여 산닭 종사자들은 매년 수백만원의 벌금을 내야하는 신세로 전락했으며, 범법자 취급을 받고 있는 등 고충이 가중되고 있다.
참다못한 산닭 종사자들은 자비를 들여 자가도계 설비를 대폭 개선해 더 이상 ‘법대로’를 외치는 정부에 일침을 놨다.


■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바꿨다

지난 25일 충북 청주 육거리전통시장내 산닭판매점에서 개최된 ‘소규모도계기 시연회’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국 각지 산닭 종사자 등 6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소규모도계기 시연회는 지난 5월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경기도 안양 소재 경기벤처 연성대학교센터에서 개최한 ‘축산물위생규제개선 관련 토론회’에서 산닭 판매점 현대화사업에 식약처가 참관하겠다는 답변을 하면서 추진됐다.
산닭 판매점의 현대화사업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두달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날 현대화사업의 주인공인 소규모도계기는 기존 도계기기를 대폭 개선해 참관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선 가금류가 도계되기 직전 피를 제거하기 위해 방혈기가 필수적으로 필요했으나, 기존 산닭 판매점에서는 미설치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시연회에서는 동시에 6마리의 토종닭을 규격별로 피를 제거하는 방혈기가 설치돼 눈길을 끌었다.
또 탈모를 하기 위해 끓는 물을 보관하는 탕정기는 자동식으로 개선됐다. 희망하는 온도를 설정하면 24시간 동안 온도가 자동적으로 유지돼 신속하게 탈모작업이 가능토록 개선된 것이다.

기존 탈모기는 가금류의 규격에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탈모작업이 진행됐으며, 탈모과정에서 상처가 나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물을 보충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대폭 보완한 탈모기는 가금류의 규격에 따라 회전수를 조절할 수 있으며 자동으로 물이 분사될 수 있도록 개선했다. 특히 탈모기 안에 패킹을 세라믹 재질로 바꿔 환경친화적으로 개선했다.
이와 함께 판매되는 닭들의 위생과 방역문제를 해결키 위해 천장에서 분무식 소독기를 설치해 30분 간격으로 천장에서 소독기가 작동, 기존 방역 애로점을 크게 개선했다.

■ 산닭 판매점 현대화사업 전국으로 확산

산닭 판매점의 이미지 변신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정부가 요구하는 위생과 방역 수준을 무시하면서 생업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갈수록 거세지는 위생과 방역 문제를 충족하지 못하고서는 산닭 판매장의 미래를 장담키 힘든 것도 현실이다.

산닭분과위원회도 이번 진영닭집 현대화사업을 시발점으로 전국 1천여 산닭 판매장에 대해 ‘산닭 판매장 개선운동’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각기 다른 평수의 산닭 판매장을 고려한 표준 모델을 마련하고, 집기와 설비를 공동 구매 형태로 추진해 최소 비용으로 현대화사업을 완료한다는 복안이다.
무엇보다 산닭분과위원회의 움직임은 종사자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면서 정부에 요구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언제까지 논란의 대상으로 찍혀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은표 충북도지회장은 “무엇보다 산닭 판매점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자세부터 갖추고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것”이라며 “현대화사업이 완료됐더라도 소비자나 정부가 개선안을 내놓으면 적극 수용하면서 산닭 판매점의 롤모델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 산닭 종사자 ‘곡소리’ 귀 기울여야

산닭 판매시장은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수십년간 달면서 감내할 수 없는 고충을 겪어왔다. 매년 반복되는 단속에 적게는 수 십 만원, 많게는 수 백 만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질 정도로 산닭 종사자들은 응고의 세월을 보내왔다.

이는 정부가 양계산업 선진화를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대형도계장을 중심으로 양계산업을 재편하면서 산닭 판매시장을 ‘불법’으로 낙인 찍혔고, 이로 인한 고통이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산닭 시장에서 판매한 토종닭을 먹고 배앓이를 하거나 탈이 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실제로 대형 도계장을 통한 토종닭과 직접 도계한 토종닭의 품질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산닭 품질이 월등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토종닭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산닭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불법’으로 낙인찍힌 산닭시장을 주저하지 않고 찾아 산닭을 지속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토종닭을 직접 도계하는 것은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이다. 현행법이 미처 배려하지 못하고 산닭 시장을 일방적으로 불법으로 간주하고 도계장 중심으로 양계산업을 재편한 정부 탓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산닭 종사자들은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소리쳐 왔지만 정부는 늘 외면해 왔다. 제도권내로 진입할 수만 있다면 정부가 내세운 어떠한 원칙도 지켜나가겠다는 산닭 종사자들의 절박한 호소도 무시돼 왔다.

■산닭 판매장 합법화 논의 적극 전개돼야

전국 4천여 토종산닭 종사자들의 염원은 ‘임의도계’라는 불법 행위를 일삼는 대상에서 벗어나 합법적인 울타리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위생수준을 충분히 만족시킨다면 AI 전파 주범의 오명을 씻는 것은 물론 방역 취약 대상에서도 제외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산닭 판매점의 제도권 진입은 녹록치 않은 실정이다. 여전히 정부는 ‘법대로’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모든 가금류는 대형도계장에서 도계해야 하며, 수의사의 검사를 통과한 가금류만이 소비자에게 판매될 수 있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산닭 종사자들은 소비자들이 직접 눈으로 도계 전과정을 지켜보고 구매하는 산닭이야 말로 안심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최승호 산닭분과위원장은 “산닭이 도계닭과 견줘 품질이 떨어지고 비위생적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추측에 불과하며, 만약 산닭이 비위생적이라면 소비자들부터 외면을 받고 산닭은 자연스럽게 퇴출됐을 것”이라며 “지난 60여년간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산닭시장을 찾는 것은 도계닭과 차별화된 맛과 품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산닭 종사자들은 이번 시연회를 계기로 합법화 운동에 불이 지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3천여만원의 자금이 소요된 산닭 판매점 현대화사업이 조명을 받고 있는 만큼 현대화사업이 전국으로 확산돼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승호 위원장은 “산닭 판매장의 변화 없이는 산닭 종사자들의 미래도 없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설비와 위생을 대폭 강화한 판매점으로 반드시 탈바꿈 시킬 것”이라며 “아무 걱정없이 생업을 영위하는 것이 토종닭 유통인들의 소망이라면, 이 꿈이 실현되는 시작은 산닭 판매장의 개선부터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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