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거래, 소비자 이익의 합리적 가격 가능”

“일본에서 상대매매(정가·수의매매)가 활성화된 가장 큰 이유는 소매유통에서 대형양판점(우리나라의 대형마트)이 주류가 됐기 때문이다. 대형양판점은 정시정량과 대량구매에 따른 가격할인, 경매 개시 전 상품 선점, 공급가격의 안정성 등을 요구했고, 기존 경매제로는 이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에 상대매매(정가·수의매매)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1971년 도매시장법이 개정됐다.”

지난 21일 가락시장에서 만난 일본 낙농학원대학 호소카와 마사후미(細川允史) 교수의 설명이다. 호소카와 교수는 “한국에서 상장경매가 주류인 이유는 출하자가 소규모단체 이거나 개인이기 때문으로 이해된다”면서 “그러나 유통환경의 변화는 대량구매로 매입가격을 낮춰 매장 판매가격을 저렴하게 하려는 소매시장의 경쟁을 통해 소비자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소카와 교수에 따르면 과거 일본에서는 도매상 제도를 ‘토이야세이’(問屋制)라고 불렀고, 도매상이 소매상과 상대매매하는 것을 ‘토이야’(といや. 問屋)라고 했다. 토이야는 ‘도매상과 소매상의 소맷자락 속에서 은밀히 결정되는 가격’을 뜻하기 때문에 생산자에게 가격을 속이고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에 따라 1923년 중앙도매시장에 상장경매가 도입된 이후 원칙적으로 일본에서는 상대매매가 금지되어 왔다.

이후 1970년 도매시장법이 개정되면서 경매를 원칙으로 하되, 예외규정으로 상대매매(정가·수의매매)가 허용됐다. 이는 슈퍼마켓과 대형유통 중심으로 변해가는 유통환경에 경매제만으로는 합리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한 소매유통의 영업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전에 시작하는 경매 시작 이전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선취거래’를 도입했고, ‘선취=상대거래(정가·수의거래)’라는 등식은 이렇게 성립됐다.

이 같은 일본의 거래제도는 대형유통업체를 통한 농산물 거래가 60% 이상에 달하기 때문이다. 2004년 농림수산성의 ‘식료품소비모니터링조사’에 따르면 가정에서 구입하는 △야채 61.7% △과일 66.8% △어류 67.7 △정육 66.8% △냉동식품 73.1%로 조사된 바 있다. 

호소카와 교수는 “경매제는 소매기업간의 경쟁 유발을 저해할 수 있지만, 영세한 생산자·출하자에게는 유리하다”면서 “반면, 상대거래(정가·수의매매)는 대량구매로 가격을 낮추는 소매기업간 경쟁으로 소비자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대매매(정가·수의매매)는 도매시장법인의 인건비 증가로 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대형유통에 대응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연적”이라며 “대형유통업체와의 거래에서 경매제는 물량 확보를 위해 더 높은 가격을 내야 하지만, 상대매매(정가·수의매매)라면 합법적인 가격 할인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호소카와 교수는 “동경도매시장은 이전부터 상대거래(정가·수의매매) 비율이 높고, 오사카도매시장은 경매비율이 높다. 두 시장을 비교하면 그 때 그 때 시장 가격의 차이는 있지만, 출하자가 시세에 감안해 출하하기 때문에 1년을 비교하면 거의 같은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시적인 등락폭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1년 단위로 봤을 때는 그 차이가 비슷하다는 말이다. 1990년 일본은 양배추 흉작을 겪었다. 이 때 양배추 10kg 한 상자가 동경도매시장의 상대거래(정가·수의매매)에서는 8,000엔. 오사카도매시장의 경매에서는 1만5,000엔에 거래된 바 있다.

다른 사례도 있다. 호소카와 교수는 “경매제에서는 출하량이 너무 많을 때 ‘0엔’(가져가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 쓰레기 처리비용 필요)으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매매(정가·수의매매)에서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주문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가격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정가·수의매매를 할 때 거래규모에 따른 중도매인의 협상력 차이에 대한 우려를 물었다. 일례로 당일 반입된 사과가 100박스인데, 300박스 물량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호소카와 교수는 “소규모 중도매인의 경우 경영이 어렵게 때문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특정 업자에게 배분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도매시장법인과 개설자의 협의(사후승인)에 따라 경매제로 전환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판단은 도매시장법인이 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도매시장법에는 ‘차별적취급금지원칙’이 있기 때문에 상대거래(정가·수의매매)와 선점을 금지하고 있다.

호사카와 교수는 “일본의 경우 상대거래(정가·수의매매)가 경매 시작 전에 이뤄지기 때문에 경매가격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으며, 경매를 통해 상대거래(정가·수의매매)의 잔품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일본의 ‘기준가격’(たてね. 建値)은 동경청과의 모든 시세를 기준으로 활용되는데, 동경청과의 경매시간은 채 5분이 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호소카와 교수는 “일본의 경우 소규모 중도매인의 경영은 어렵지만, 도매시장법인의 힘을 넘어 직접 산지와 교섭하는 대형 중도매인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도매시장법인이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쿠마모토 도매시장의 경우 도매시장법인이 경매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농협을 거치지 않는 개인 출하자의 경우 경매제를 선호하고 있지만, 결국 도매시장법인이 출하자의 보장가격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 지가 관건으로 거래방법은 출하자의 판단이 우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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