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고는 해도 비가 많이 내리지 않으니 마른장마입니다. 일기예보는 늘 비가 온다고 해도 예보 양만큼 오지 않거나 아예 한두 방울에 그칩니다. 대신 습하고 무더운 마파람만 날마다 탱탱 불고, 구름사이로 한두 시간 햇빛이라도 날라치면 이건 완전 몸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땀으로 범벅이기 일쑤입니다. 일할 때 이렇다는 거지요. 그렇지 않고 놀기로 한다면야 제아무리 뜨겁고 무더워도 그게 웬 문제일까요. 놀 때는 오히려 뜨거워야 제격입니다.

저는 그새 논 두벌김을 맸습니다. 두벌째에도 초벌처럼 일주일 남짓 시간이 걸렸습니다. 초벌매고 바로 돌아서서였는데 그새 벼가 으쓱하니 자라서 두벌째는 눈을 찔렀습니다. 이제 풀이 더 난다해도 논에서 김매는 일은 끝입니다. 풀이 또 나든 말든 물도 좀 빼서 논을 말려야만하고요. 옛날처럼 만두레 끝나는 7월 백중이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여름이 워낙 빨리 시작된 탓에 모든 작물이 만두레입니다. 그렇지만 밭의 김도 저희 것은 아직 두벌째입니다. 뜨거운 날씨에 비가 조금씩이라도 내리니 풀이 얼마나 커버리는지 정신 못 차리겠군요. 초벌 맬 때는 참 깨끗해서 저기에 무슨 풀이 또 나랴 싶었지만 돌아서서 보지 않은 두주일 새에 나 잡아 보란 듯 풀이 생긋거리며 잔치라도 벌이는 듯합니다.

논에서 일주일을 산 탓에 밭에 거친 일이 많아서 저는 한나절, 이것저것 바쁘게 움직거리는데 제 안식구는 콩밭에서 앉았다 섰다 열심입니다. 그러나 남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제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고 뭔가 터질 듯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게 왜 그런지를, 일손 놓고 집에 들어가야 할 점심 무렵에 호미하나 찾아들고 콩밭 매는 안식구 옆에 가서 앉았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누라님의 원성이 그야말로 성난 물결처럼 저에게 밀려오더군요. 말인즉슨 이렇습니다. 왜 남들처럼 좀 일찍일찍 심어서 장마 전에, 이놈의 바랭이 풀 나기 전에 곡식으로 땅을 덮어서 김매지 않게 하지 뭔 덕을 보려고 늦게 심어서 이 고생 하냐는 겁니다. 사실 그 말이 옳지요? 그랬다면 이 더위에 밭 매지 않아도 되고 제가 사는 유명한 피서지에 놀러 오느라 시끌벅적한 피서객들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도 있겠지요. 사람은 늘 상대적 비교를 하는 존재이니까요. 꼭 피서객이 아니라도 지금 거의 많은 농사꾼들은 그야말로 이 고 열에 손에 호미 쥐고 고지식하게 밭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저만 벽창우처럼, 남들에 비해서 나중 심은 게 좋은 것일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된다고, 틀림없이 아내 생각에 그렇게 말하는 제가 벽창우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러나 이내 저는 돌아앉아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이정도 땀도 흘리지 않고 어찌 여름을 날수 있겠느냐고, 알바수준의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을 딸들 생각하면 우리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되려 마음 편한, 호사 아니겠냐고, 꾹 참고 하다보면 끝나는 날도 있을 테니 조금만 더하고 들어가서 쉬자고 말했습니다. 결혼하고 삼십년 넘게 살아오면서 안식구에게 늘 고마운 것은 이럴 경우 참 말없이 저를 따라준다는 것이지요. 성질 사나운 여자 같으면 비록 남편의 말이 옳다하더라도 되지 않은 소리로 대거리라도 하며 몇 번은 목소리를 높였을 터입니다.

하여간에, 농사도 지금은 때가 없어진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름 과일을 겨울에도 먹고 봄에도 먹는 것이야 이제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그러려니 하고 생각들 하는데 일반적인 작물들은 사람들의 관심 밖인 속에서 때를 잃어가는 듯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직 백중이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이미 모든 곡식들은 일손이 다 끝나서 밭에 그득하니 자랐습니다. 올해의 백중은 양력 팔월 십일이니 이 무렵까지 일손을 놓지 못했던 옛날과는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농사에 비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다가 날씨가 더 더워지고 농기계와 비료농약이 발달하니 당연한 모습이겠는데 저는 왜 이런 것을 생각지 않고 꼭 옛날의 그것만 고집하는지, 남들 눈엔 제가 연구 대상이지 않을까 싶군요.

저의 디엔에이(DNA)에는 도저히 바뀔 수 없는 그 무엇이 박혔나 봅니다. 몸은 이십일 세기에 살되 정신은 저 십구 세기쯤에 멈춰있어 서로 충돌합니다. 겉으로 보기야 전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세세한 부분의 근원을 찾아들어가 보면 지금의 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오직 열 살 이전에 보고 느꼈던 것들이 큰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줄거리는 지금껏도 저를 저의 어머니 아버지와 이웃처럼이게 합니다. 한 그릇의 밥을 통째로 버리게 되더라도 우선 한 알의 밥풀이 수챗구멍에 버려지는 꼴을 보지 못하고, 옷장에 그득한 옷들은 생각지 않고 삭아서 여기저기 헤진 옷 한 가지를 버리지 못합니다.

땅 놔두고 게으름 부리느라 심지 않았달까봐 없는 오이하나를 마트에 가서 사지 못하고 냉장고에 든 김치보다는 우물에 넣어뒀던 그 열무김치 생각 때문에 괜히 입맛을 잃어버리고선 밥상에서 눈을 돌려 먼 산을 봅니다. 어쩔 수 없어 이앙기로 모를 내고 콤바인으로 나락을 베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 큰 것을 도둑 맞은듯해서 마음이 허공에 떠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쩌자는 것인지 뚜렷한 방책도 없으면서 몸과 마음, 과거와 현재가 따로 노는, 그래서 오늘은 점심때 씻지도 않고 나무 밑에 앉아 제 자신은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