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낯선 전령이 와 있었다. 이방이 문서를 건네었다. 문서를 펼쳐든 준량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적의 침몰이 늘어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대장장이 두 명을 수원으로 보내라는 서찰이었다. 준량은 기가 찼다.   저 멀리 석탄 캔다고 택백으로 도성의 병사, 목공, 장외의 초병, 중령방에 관병,   거기다 대장장이까지 고을 백성 한 가구에 장정 한 명은 착출되어 나가있는 꼴인데 다시 두 명을 더 보내라니 아무래도 작은 고을을 폐촌시킬 모양이었다.

 이방의 자식도 한양에 볼모로 가 있었다. 조정에서는 고을마다 아전 자녀를 한두명 한양에 볼모로 붙들어 두고 있었다. 만약에 이방이 잘못을 저질러도 도망을 못 가도록 못을 박는 셈이었다.
 준량은 붓을 들어 몇 자를 쓰다가 거칠게 탁상 위에 올려 놓고 밖으로 나왔다.  무관이 따라 나섰다. 우화교를 지나는데 장사가 큰 덩치를 굽혀 절을 하였다. 외중방 밑으로 내려가니 공납전이 강변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벌써 우창 식솔들이 가을 걷이에 나섰는지 아직 덜 여문 피곡을 훑고 있었다. 무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우창이 먼저 해쳐먹는군요.”

 준량은 우창 식솔들이 피곡을 왜 훑는지 이제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가을에 벼와 섞어 구호미로 나눠 줄 속셈인 것이었다. 저것을 백성이 먹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고을 백성은 공납책을 만드느라 저 흔한 피곡을 챙길 여력도 없는  지경이었다. 준량은 빠른 걸음으로 닥전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생기동 노루는 촌장의 허락을 얻어 장회탄으로 내려왔다. 지난 번 소금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배 두 척을 털었으니 제법 많은 양이었다. 생기동으로 향하는 노루의 토끼 주머니가 가득가득 차 있었다. 가죽 주머니라 녹지 않고 보관이 잘 되었다.  장정 다섯이 하루에 한번씩 벌써 며칠 째 나르고 있는 중이었다.

 노루는 두향 뒤쪽에서 양당 뒤쪽까지 이어지는 직선길을 택했다. 어쩌다 오성암에서 밥짓는 연기가 보이곤 하였다. 오성암에는 노승이 암자를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노루는 소금을 나누어 줄 요량으로 오성암으로 들어섰다. 오성암은 아름답기로 소문난 단양 땅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었다. 집채만한 바위틈으로 깨끗한   물이 흐르고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바위를 타고 오르니 암자가 보였다.

 수십 년 째 노승이 불공을 드리고 있다는 말만 들었지 처음 가는 길이었다. 인기척을 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법당문을 열고 보니 공양식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소금 자루를 주춧돌에다 기대 놓고 돌아서다 노루는 기겁을 하였다. 형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놀랍고 반가웠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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