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의 보물섬 ‘금산’

남해 금산은 지리산 산자락이 남쪽 바닷가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으로 원래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산 이름이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으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자를 써 금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금산은 기암절벽이 분포하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남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낙엽수림 군락을 이루어 봄의 신록과 가을철 단풍이 일품이다.

■ 금산으로 가는 길
육로로 경남 남해군 상주면에 위치한 금산으로 가는 길은 ‘남해대교’와 ‘창선-삼천포대교’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창선-삼천포대교’를 이용해 남해를 진입할 경우에는 색다른 바다 풍경이 눈길을 끈다. 바다 한가운데 가지런히 V자 모양의 ‘죽방렴’이 거친 해류에도 굳건하게 버티면서 묵묵히 서있다. 말뚝은 가끔식 날아가던 갈매기의 휴식처로 이용되는가 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죽방렴에 갇힌 멸치며, 온갖 생선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 창선면으로 접어들어 우측길로 접어들면 대벽리 ‘왕후박나무’를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99호인 대벽리 왕후박나무는 수령이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9.5m, 밑동의 둘레가 11m로 가지는 밑에서 11개로 분리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500여년 전 이 마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 부부가 어느날 큰 고기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이상한 씨앗이 나와 그 씨앗을 뜰 앞에 뿌린 것이 자라 이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시 여겨 매년 나무 앞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대벽리를 지나 잠시만 지나다 보면 왼쪽으로는 농촌 풍경이, 오른쪽으로는 어촌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또다시 지족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물살의 세기가 조금 전과는 달리 예사롭지 않다. 지족해협을 건너면 남해 본섬에 도착한다. 이후 삼거리에서 금산으로 가는 방법은 좌우측 모든 방향에서 가능하다. 우측으로 남해읍 방면을 경유해서 가면 차량으로 금산 정상 부근까지 이어지게 되고, 좌측 길을 선택하면 물건리 방조어부림, 송정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을 거쳐 등산로 초입에 도착할 수 있다. 남해의 비경을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서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앞으로는 기암괴석, 뒤로는 다도해의 비경

금산은 높이 681m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금산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예부터 금강산에 견줄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금산의 남쪽 여행자안내센터를 통해 금산으로 오르는 길은 정상까지 2.5km의 짧은 거리지만 일직선으로 곧게 뚫려 가파르다. 등산로 주위에는 남해안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스레피나무가 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20여 년 전까지 화환 제작용으로 남벌되기도 한 아픈 기억도 있지만 이제 남해 금산 숲의 아래를 책임지는 나무로 사시사철 녹색을 뽐내고 있다.

금산을 오르면 사스레피나무가 바닥에서 보이지 않고 철쭉과 참나무류가 온 산을 덮을 즈음 금산 38경 중 하나인 쌍홍문(雙虹門)에 도착한다. 한자를 보면 두 개의 무지개 문이지만, 바깥에서 보면 흡사 해골의 모양 같기도 하고 꼬끼리의 코가 늘어져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쌍홍문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속은 비어 있고, 위와 옆에도 구멍이 뚫어져 맑은 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밖에서 바라본 두려운 광경은 사라지고 하늘과 다도해를 두 손으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신세계가 펼쳐진다. 일찍이 한림학사 주세붕이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 이라는 글을 금산의 정상 부근 바위에 새길 정도로 쌍홍문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극찬했을 정도다.

쌍홍문을 기점으로 금산은 기암괴석의 별천지가 펼쳐진다. 북으로 바라보면 웅장한 바위가, 남으로 시선을 옮기면 나무 사이로 다도해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고운 자태를 수줍은 듯 나무사이로 숨어 있다.

■ 조선건국의 설화로 유명한 보리암
쌍홍문을 지나 300m 남짓 산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위자락에서 아찔한 자태를 뽐내는 보리암에 도착한다. 보리암은 원래 원효대사가 창건시 보광사로 불렸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 후 조선을 개국하였다고 한다. 그 후 현종 때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개액했다고 한다. 보리암의 앞에는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곳에서 남으로 바라보면 다도해의 섬과 상주해수욕장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의 여름철에는 산 아래 바닷가에서 몰려오는 해무가 장관이다. 서쪽으로는 금산에서 가장 큰 상사암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족히 아파트 30층 높이 정도는 되어 보인다. 보리암의 동쪽 아래편으로는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하였다는 선은전(璿恩殿)이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한다.

보리암의 왼쪽편으로는 금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잘 정비되어있다. 등산로 주위에는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류가 우점하고 있으나, 해풍과 얕은 토심으로 수고가 낮고 굽은 모습을 보인다.
단군성전을 옆으로 두고 다시 산을 오르다 보면 조릿대 군락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산사의 뒤편에는 으레 대나무가 많은데 이곳에는 조릿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등산로는 많은 이들이 다녀갔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흙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바위틈에서 힘겹게 자라는 신갈나무와 단풍나무가 즐비하다. 정산 부근의 바위 계단은 닳고 닳아 매끈한 색을 보인다.

금산의 정상에는 경상남도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된 봉수대가 있다. 높이 4.5m, 둘레 26m로 규모가 크고, 이곳에서 금산 38경과 남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개의 중심 봉수로 가운데서 동래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로, 창선면 대방산, 사천, 진주 등을 거쳐 서울로 소식을 전달했다고 한다.

■ 봄을 노래하는 히어리
금산의 북사면에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비밀의 정원이 있다. 북사면의 북곡저수지 부근에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있으며, 그 주위에는 우리나라 특산 희귀식물인 히어리 군락지가 있다. 히어리는 낙엽성 활엽관목으로 송광납판화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꽃말이 ‘봄의 노래’다. 조계산 송광사 부변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어 ‘송광’이 붙여졌고 ‘납판화’는 꽃잎이 밀납 같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원래 조계산, 백운산, 지리산에서만 자라는 나무인줄 알았었는데, 2005년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자원연구소 연구진에 의해 금산에서도 자생지가 발견되었다. 그 후 경기도와 강원도가 이어지는 백운산에서도 발견되었다. 히어리는 이른 봄에 꽃이 이삭모양으로 탐스럽게 피어 나무전체를 샛노랗게 뒤덮으며 가을에는 황금색 단풍이 든다. 금산의 히어리 군락지는 소중한 자연유산이기에 훼손되지 않게 자생지 보존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 금산을 내려오며
중국 진시황은 서불을 남해 금산으로 보내 불로초를 구하고자 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상사암의 전설에서도 그렇듯 금산은 곳곳에서 인간의 영욕과 무상함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무한한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절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또 다른 금산 산행의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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