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장마 때보다도 더 비가 잦고 많이 오니 흔히 이야기 하듯 가을장마입니다. 여름장마 때 비가 적었던 탓에 전국의 저수지 물이 반도 차지 않았다 하고, 심지어 어떤 곳들은 먹는 물마저 부족하다 하니 늦게라도 이렇게 비가 많은 것은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비 때문에 밭작물들을 많이 망치게도 됐습니다. 우선 비닐하우스에 고추 따 널은 것을 말릴 수가 없고, 일찍 깨를 베어 세워 놓은 사람들은 깨가 다 썩는다며 울상입니다.

베지 않은 것도 그대로 땅에 쓰러져 썩어가고요. 다 지은 농사를 거둬들일 때 이러하니 가을의 장마가 여름의 그것보다 더 피해가 심한 게 되었습니다. 저도 두물째 딴 고추가 비닐하우스에서 희나리가 되어가는 중이고, 먼저 심은 깨는 베어야 될 때인데 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고추야 아무러면 저희 먹을 것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만 커다란 하우스마다 가득가득 두물 세물 고추를 따서 널어놓은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더군요. 여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건조기 하나 장만하겠다 여겨져서인가 시도 때도 없이 그런 회사에서 오는 전화 때문에 시달림을 받는 것도 요즈음입니다.

말이 나왔습니다만 전화로 시달림을 받는 것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태양광 설치하란 전화도 셀 수 없이 많이 오고 컬러강판으로 지붕 개량하시라는 전화도 빠지지 않습니다. 누가 자기들한테 청한 것도 아닌데 친절하게끔 상담을 해주겠다고 선심 쓰는 것 보면 짜증나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여기에 심심찮게 무슨무슨 조합이라는 데서 오는 건강보조식품 사먹으라는 전화와 우체국 금융회사를 흉내 내는 사기전화에 이르면 그만 전화기를 없애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밖에서 바쁘게 일하다가도, 혹은 낮에 잠깐 누워 쉴 때 전화가 오면 이게 무슨 전화인가 궁금해서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일하다 말고 뛰어 들어와 전화를 받았는데 그게 반가운 딸애들의 전화가 아니고 벌써 수십 번째 받는 판촉사기 전화이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거친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시골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만하고 어수룩하다고 보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전화질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시골사람들이 만만하게 뵈는 건 사실일 겁니다. 우선 나이 많이 먹은 분들이 대부분이니 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둡다 여기겠지요. 귀 어두워 말 잘못 알아들으니 꽥꽥 고함치듯 반말지거리도 예삽니다. 직접 차 끌고 동네방네 개 사러 다니는 장사치조차 농민들을 속이려들기 일쑤인데, 제가 며칠 전에 키우던 개를 판 이야기를 들으시면 아마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입니다.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에 해드렸는데 그 새끼가 그새 다 커서 젖 뗄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미와 새끼를 한꺼번에 팔기로 하고 동네에 이삼일에 한번 꼴로 지나가는 개장수를 불렀습니다. 다음은 개장수와 저의 문답입니다.

“새끼가 몇 마리여?”
“여섯 마리요. 많이 안 나서 그런가 탐지요 안?”
“에이- 아직 더 키와야 쓰겄구만”
“뭔 소리요. 난지 40일이 넘어서 밥을 얼매나 잘 먹는디요.”
“50일은 키와야 하는디 새끼가 아직 에려, 그나저나 얼마 받을라고?”
“개를 안 팔아봐서 잘 모르겄소. 얼매나 줄랑가 장사 양반이 말해 보시오”

개장수가 다시 새끼와 어미를 되작거리듯이 보고는 난처한 거래나 된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서 12만원을 놨습니다. 복날 다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어미 개는 싸더라도 새끼는 그러지 않은 것이라 적어도 25만원 이상은 나가리라 생각했는데 꼭 그 반절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드렁한 척 새끼 한 마리에 얼마씩 쳤느냐 불었더니 7천원을 쳤다는군요.

“그럼 쪼금 더 키워 볼탱 게 수고스럽지만 다음에 한 번 더 들려주시오”
“아니 쥔이 얼매 받을랑가 말을 히 보시오 15만원?” 개장수는 5만원권 세장을 꺼내서 손에 펄렁였습니다. 제가 쳐다보지도 않고 다음에 한 번 더 오시라 했더니 돌아서서 지갑을 열고 이번에는 20만원이라며 돈을 막 제 손에 쥐어주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싸우듯이 목청을 높이면서.

“20만원 줄 것을 12만원 불렀소? 어느 정도여야지 어디서 항상 싼거리만 하고 당겼던 가비요. 이랬더니 개장수는 돌아가는데 저희 집에서 한길까지 나가는 200여 미터의 길을 가다 서고 가다 서기를 대여섯 차례 거듭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개 값이 이미 자기가 말한 금액을 훨씬 웃돌아서 조금 더 주고라도 사가지고 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겠지요. 이틀 후에, 개장수에게서 전화가 왔길래 25만원을 이야기 했더니 다음날 와서 기름값만 깎아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런 사람 아니라며 차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보여 주는데 옛날에 어디선가 시의원에 출마한 자기 선거 팸플릿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시골에 내려와 건강원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개장수마저도 되지 못한 그 따위 휴지조각 나부랭이를 내세워 시골사람을 우롱하려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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