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에서 바라보는 ‘푸른 융단’


■ 빙그레 웃는 좋은 섬, 땅끝 완도

완도(莞島)는 땅끝마을 해남반도의 남창(南倉)에서 20여 ㎞, 달도(達島)와는 600m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이다. 해남 땅 끝에 이웃하고 있듯, 완도는 우리나라 82개 군중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한 완도군의 본섬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군이라면 제주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아쉽게도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개의 시만이 존재할 뿐이다. 완도가 연육교로 육지와 연결된 지 이미 50여년이 지났음을 감안하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을 이제 해남이 아닌 완도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완도라는 지명의 유래는 사뭇 다양하다. 풀과 나무가 무성해 왕골풀과 같다 하여 완도라고 했다는 설과, “청해진은 조음도에 있다.”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조음도(좋은 섬)가 빙그레 웃는(莞) 좋은 섬으로 의역되어 빙그레 웃는 섬 완도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금산봉송)의 섬으로서 국원의 섬과 같아, 원도가 완도로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모두 확실하지는 않다. 그 유래야 어찌 되었든, 현재 완도는 ‘웃음’을 고장의 미래 전략산업으로 삼아 찾는 이들이 자연스레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그야말로 바다와 섬이 아름다운 건강한 섬 완도의 참 매력에 푹 젖어 들 수 있게 한다.

■ 사철 푸르른 오봉(五峰)의 으뜸 상황봉

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644m의 상황봉이다. 완도가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이라면, 상황봉은 섬에 솟은 산 중에서 제주도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 남해도 망운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니 섬 전체가 상황봉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름마저 코끼리 상(象)자에 황제 황(皇)자를 써서 황제 코끼리란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완도’하면 ‘청해진’, ‘장보고’를 떠올리듯이, 이 상황봉의 이름도 장보고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상왕국을 이룩하면서 완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자기 자신을 비유해 이름지은 것이라 한다.

상황봉을 중심으로 백운봉(600m), 쉼봉(598m), 업진봉(544m), 숙승봉(461m) 등이 남북으로 이어져 완도의 오봉(五峰)을 이룬다. 이렇게 산세가 당당하다보니 나무들도 많다. 완도를 둘러싼 푸른 바다가 사시사철 건강한 휴식과 튼실한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면, 완도의 숲 역시 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이는 상황봉을 중심으로 섬의 대부분에 단풍이 들지 않고 색깔도 바래지 않아 내내 푸르른 상록활엽수의 난대림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가히 언제나 바다와 산이 푸르른 녹색의 섬이자 초록빛 산이라 할 수 있다.

난대림은 지리적으로 온대와 열대의 경계에 분포하는 숲이다. 또한 온대지방에 위치하면서 난류의 영향으로 상록활엽수가 자라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난온대림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연평균 기온이 14도 이상이며 연평균 강우량 1,200㎜ 이상인 남해안 지역이 주 분포지이다.

산림청 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난대림은 여의도 면적의 32배에 달하는 9,669ha가 분포하고 있어 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의 0.1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92%인 9,054㏊가 전남 해안과 섬에 위치하며, 이중 완도 상황봉 일대는 약 2,000ha의 넓은 면적에 상록활엽수림이 분포하는 국내 최대의 난대림 집단자생지로서 이름 높다.

■ 완도수목원, 산 전체가 상록수 수목원

해남 땅끝을 향해가다 남창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달도를 지나다 보면 높이 75m에 새하얀 주탑의 위용을 뽐내는 신 완도대교가 완도에 첫발을 딛고자 하는 이들을 반긴다. 신 완도대교를 건너서 해변으로 우회전한 후 2km 정도 가다 수목원 안내 표지판에 따라 좌회전하여 역시 2km 정도 직진하면 완도수목원에 다다른다. 여기가 1991년 조성된 국내 최대의 천연 난대식물 자생지인 완도수목원이다.

상황봉 북서사면에 있는 완도수목원은 완도 본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50ha의 면적에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감탕나무, 완도호랑가시, 굴거리나무 등 조경 및 식·약용으로서 가치가 높은 752종의 자생 난대수종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유일한 난대수목원이다.

수목원 정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보이는 백운봉과 상황봉의 광활한 면적을 아우르며 마치 짙푸른 양탄자를 빈틈없이 깔아놓은 듯 펼쳐지는 진녹색 경관의 순수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압도한다.
완도수목원은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연수목원이다. 사람들은 거기에 구역을 긋고 길을 내고 전망대를 세우고 시설을 보강했을 뿐, 나무와 풀과 숲은 오로지 자연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완도수목원의 난대림은 길이 아닌 곳은 한 발을 내디딜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이렇게 사시사철 짙은 초록의 상록수 밀림을 이룬 것은 이 지역이 원래 맹아림 지역이기 때문이다. 맹아림은 임목을 벌채한 후 그루터기에서 자라난 맹아에 의해 조성된 숲으로, 난대수종들이 대부분 맹아에서 움트는 싹이 잘 나는 수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숲의 자연스런 천이과정이 아닌, 지난 한 세기 동안 사람들이 저질러온 마구잡이 벌채의 상흔이란 점이 숲을 보는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특히 붉가시나무와 동백 등 재질이 조밀한 난대수종은 고급 숯 원료로 인기를 끌어, 어민들이 고기는 안 잡고 어선으로 숯을 실어 날랐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숯가마 터가 완도 수목원 뒷산에 아직도 남아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난대림은 수령 30〜40년이 많고 대부분 잘린 둥치에서 빽빽이 돋아난 여러 그루의 맹아림으로 이뤄졌다. 이제 훼손되지 않은 난대림은 아홉 계단 몽돌밭으로 유명한 정도리 구계등(九階燈)일대와 완도항 앞에 있는 작은 섬 주도, 그리고 해남 두륜산 계곡에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 상록수림 울창한 수목원 길

완도수목원의 난대림을 제대로 즐기려면 산속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올라야 한다.  동백나무군락지 등을 지날 때는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동백나무 열매를 관찰할 수도 있고, 하늘을 가린 울창한 천연의 숲 속에서는 자생하고 있는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메밀잣밤나무, 굴거리나무, 황칠나무 등의 상록수를 중심으로 이나무, 자귀나무, 새우나무, 소사나무와 같은 낙엽활엽수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면 희귀식물인 복수초, 사철난, 금새우난, 약난초 등과 각종 관목 및 초본류 등의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가시나무’라고 하면 가시가 돋친 나무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시가 없으면서도 이름이 가시나무인 나무가 있다. 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가시없는 가시나무들이다. 가시나무는 도토리가 열린다는 점에서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과 같다. 도토리나 상수리 따위가 열리는 나무를 모두 아울러 참나무로 부르는데 참나무 가운데서 겨울철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성의 참나무를 가시나무라고 부른다.

가시나무는 모양새가 웅장하고 단정하여 뭇 나무들 가운데 임금이라 할 만큼 품위가 있다. 유럽에서는 ‘사자는 짐승들의 왕이고 독수리는 모든 날짐승의 왕이며 가시나무는 숲의 왕’이라는 말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고귀하고 신령스런 영혼이 가시나무에 깃들어 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완도수목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붉가시나무도 붉지도 않고 가시도 달리지 않았다. 하지만 목재를 잘라보면 심재가 붉은빛을 띄고, 봄에 새로 나는 새순이 붉은색이라 해서 붉가시나무라 이름 붙여졌다.

숲길 가장자리에선 머귀나무가 뜨거운 남도의 햇볕을 가려 걷는 이의 땀을 식혀주고, ‘이 나무가 먼 나무야?’는 물음에 우스개 소리하듯 ’먼나무지!‘라는 대답에 실소를 머금게 하는 먼나무도 가을에 앞서 빨갛게 익을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준비하고 있다.

난대림은 잎이 반짝이는 상록활엽수로서 독특한 경관을 연출하는데다 환경오염에 강하고 나무에 포함된 성분이 약재, 장식재, 천연도료, 방향제, 방부제 등으로 이용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참가시나무는 우리 몸의 내부를 정갈하게 해주는 약효를 가지고 있어서 잎이나 잔가지는 말려서 차로 끓여 마시면 담석과 신장 결석에 효과가 있다. 보물나무 혹은 산삼나무라고까지 불렸던 황칠나무는 중국에서 황제의 색이라 했을 정도로 변치 않는 천연 황금빛 전통고급도료를 제공하는 식물이며, 특히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식향”의 주원료로 쓰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성탄절 장식과 생울타리용으로, 녹나무에서 추출한 캄파향은 강심제 원료로 쓰인다. 이밖에 겨울에도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이나무와 감탕나무, 잎자루가 붉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굴거리나무와 후박나무는 조경용과 가로수로 개발 가치가 크다.

■ 완도의 맛은 여름과 겨울에

상황봉 정상을 향해 가면 수목원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수목원의 전망대는 모두 2곳. 팔각정 전망대 앞 나무들이 자라 시야를 가려 산 중턱 등산로에 자리한 나무 테크 전망대가 정상 가까이에 자리한 팔각정전망대 보다 전망이 더 좋다.

능선의 전망대에 오르면 백운봉과 상황봉을 아우르며 난대림의 전경이 두 눈에 가득하다. 마치 푹신한 초록빛 융단을 펼쳐놓은 듯 몸을 던져 드러누우면 하시라도 온 몸을 편안히 감싸 줄 것만 같이 푸근해 보인다. 덤으로 전망대에서는 동, 서로 다도해상국립공원의 전경을 시원스레 즐길 수 있고, 북쪽으로는 해남 달마산과 대둔산이 문지기인양 완도를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다른 활엽수가 모두 진 겨울이면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빛 난대림이 장관을 연출한다고 하니, 여름의 완도와 겨울의 완도를 보아야 완도를 보았다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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