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꾼들은 저녁이 되면 관청 주변을…

  순리꾼들은 저녁이 되면 관청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임무였다. 원래는 밖으로 나가려면 허락이 있어야 했지만 한참 위인   무관과 장사가 술 안주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가는 걸로 여겼는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순리꾼들이 지나가자 무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새벽에 생기동엘 다녀와야겠다. 내가 너 밖에 믿을 사람 더 있냐? 너는   안면이 있어 괜찮을 거야. 노루한테 이것을 전해주면 돼. 없으면 기다렸다가도 꼭 줘야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봉산에 도착하여 무관이 자리를 잡고 전후 얘기를 하니 경진이의 부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을 얻긴 했지만 무관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잘 되면 좋을 일이지만 잘못되면 가시밭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젊은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알면서도 그저 허락을 해준 그들이 마냥 고마울 따름이었다.

 봉산을 내려오는 장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 먼동이 뜨기도 전에 장사는 채비를 갖추고 생기동으로 출발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전해줘야 좋을 것 같았다. 오늘따라 자신의 굵직한 다리가 믿음직스러웠다.
 아침밥을 먹던 생기동 촌장은 급한 인기척에 놀라 문을 열었다. 지난 번 보았던 장사가 땀에 절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촌장은 움찔 놀란다. 혹시 소금을 훔친 것이 들킨 것은 아닐까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장사는 등에서 서찰을 꺼내었다. 얼마나 빨리 걸어왔으면 아침이라 서늘한데도  장사의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촌장은 조심히 펼쳐 읽어 내려갔다.

 “노루는 보아라. 단양 군수님이 고을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상감께 상소를   올리시러 한양으로 오늘 아침 출발하신다. 탐관오리를 질타하고 우창을 힐난하니 필경 단양을 떠나기 전에 화를 입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 영감님을 지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법하다. 그러니 이글을 읽는 즉시 너의 형 용두가 있으면 무리를 지어 제천으로 해지기전까지 오기 바란다. 무관 표종수.”
촌장은 급히 노루에게 달려갔다. 서찰을 읽던 노루의 손 끝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노루는 황급히 몇 명
을 모으더니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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