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의 전나무 향에 마음을 뺏기다

4월에 못자리를 끝내고 땅심을 높이기 위해 하는 푸작나무, 7~8월에 퇴비 생산을 위해 하는 잡목 베기,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는 난방과 취사를 위해 솔가루 긁기와 삭정가지, 고즈베기 그리고 솔방울 따기... 나무 한 짐 가득 지게에 짊어지고 절 앞에 당도하면 샘물로 목을 축인 후 전나무 숲에서 벌렁 드러누워 흐른 땀을 식힌다.

“산위에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대요”
우리 조상들은 산이 내어 주는 만큼만 거두면서 산을 보호하고 지키며 사랑했다고 동행한 노신사가 귀띔해 주신다.


■ 계절을 품은 숲

짭쪼름한 바닷내음 바람에 실려와 마음에 머무는 변산, 서해를 향해 툭 불거진 변산반도. 그 곳에서도 내변산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내소사로 가는 길, 그 길에 발길이 머무는 것은 그 곳에 가본 이라면 누구나 기억 한편에 남아 있는 추억일 것이다. 그 곳에 전나무가 숲길을 이루고 있다. 그 길에 들기 전에 일주문 앞을 비켜주지 않고 있는 수령 700년이 넘었다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에 먼저 인사를 하여야 한다. 지금도 할아버지 당산나무에게 제물을 준비하고 치성을 드리며 당산제를 지낸다고 하니 아무리 여행객이라도 허락을 여쭙는 게 좋겠다. 

전나무는 사계절 늘 푸른 잎을 자랑하며 고산지대에 자라는 상록침엽교목이다. 그러나 내소사의 전나무 숲은 드물게도 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울창하고 그 크기가 장대하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600미터의 전나무숲길 좌우에 조성된 숲으로 나무마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힘찬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전나무의 고상함은 깊은 산속에 은둔하며 속세의 인간이 범접하기 어려운 신선처럼 느껴지기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까르르’ 아이의 웃음 같은 싱그러움이 온 머리를 휘감는다. 이런 것이 청량감인가. 저벅저벅 걷다 보면 숲길의 정취에 취해 누군가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친구가 나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그 어떤 물감으로도 이 싱그러운 계절을 모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터질 듯한 푸르름으로 마음 구석구석을 씻어낼 수 있을까.

나무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며 넉넉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전나무 숲길에서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어렷풋한 안개가 내린 새벽녘의 새로운 햇살이 그 길에 처음 당도할 때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눈치 없는 단풍이 불쑥불쑥 끼어든 늦가을에 그 색의 오묘함을 느껴보는 것도, 하얀 눈이 전나무를 괴롭히는 한겨울 그 길도 아름다우리라.
내소사 전나무숲길은 시원함도 시원함이지만 일상에 찌든 심신까지 달래준다. 치유의 숲으로는 물론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사람들을 압도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나무는 수령이 100년이 넘고 그 높이가 40미터에 이르며 지름도 1미터에 이른다. 7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전나무숲은 속세와 성소를 구분하는 듯도 하다.

9월 초, 전나무 아래에는 꽃무릇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군락을 이뤄 타는 듯이 피어있는 붉은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한 듯하다. 꽃무릇은 꽃과 잎이 따로 피어 애잔한 아픔을 안고 있기도 하나, 사찰 주변에 꽃무릇이 많은 또 다른 이유는 그 뿌리가 방습과 방충 효과가 있어 단청은 물론 목재의 보존을 위해서 재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면 벚나무를 만날 수 있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벚나무를 심어 화재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려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내소사에 당도하면 평지로 된 전나무숲길을 걸어온 것을 깜빡하게 만든다. 마치 심산유곡에 위치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 우리네 여인 같은 담백한 산사, 내소사

1,0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내소사는 산들의 품속에 들어앉은 자태가 너무도 보는 이를 평안케 한다. 일년 내내 내소사는 전나무 향기뿐만 아니라 철마다 갈아 피는 꽃의 향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곳이다.
내소사는 633년(백제무왕 34년 신라 선덕여왕 2년) 혜구두타가 대소래사와 소소래사를 창건하였으나, 대소래사가 불에 타 없어지고 소소래사만이 남아 내소사가 되었다고 하니 이 또한 아련함을 간직한 듯 하다.
 지금의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 11년(1633년)에 청민선사가 중건했고, 광무 6년(1902년)에 관해스님이 중수하고, 만헌스님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오로지 나무토막들을 깎아 끼워 맞춰 세운 것으로 그 기술과 정성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절 중건 당시 목수의 우직함을 시험코자 했던 사미승의 장난스런 전설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지만 실제 대웅보전 오른쪽 앞 천정에 나무 한 개가 부족한 것을 보니 이것마저 비대칭의 아름다움으로 보이는 듯하다.
또한, 대웅보전의 꽃 문살은 우리나라 장식 무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16?17세기 우리나라 목공예 양식이 잘 드러나 있는 걸작이며 부처님에게 공양을 하려 했던 목공의 깊은 불심을 엿볼 수 있다.

■ 내소사를 떠나며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뒤로 하면서 가슴 한편에 아쉬움도 남았다. 내소사 전나무숲은 평지에 있다 보니 접근성이 용이하며 많은 내방객들의 답압으로 인한 훼손을 줄이기 위해 자갈을 깔아놓아, 오히려 나무의 생장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푹신푹신한 원시림은 양탄자를 밟는 것처럼 부드러우며 공극이 많기 때문에 나무가 건강하게 자란다.
나무뿌리는 물과 산소를 동시에 필요로 하는데 흙의 입자 사이에 있는 공극이 계속하여 물로 차 있으면 과습으로 뿌리가 썩게 되고 반대로 공기가 차 있으면 건조 피해로 인해 나무의 생장이 저해된다.

나무의 건강을 위해서는 사람이 흙을 손대는 것보다는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 가장 훌륭한 숲을 가꾸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사람은 최소한의 간섭으로 지렁이, 쥐며느리, 톡톡이 들이 건강하게 맡은 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치산녹화사업을 시작한지 40여 년이 흐르며 울창한 산림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산이고 숲만 아니라 내집 가까운 곳부터 한번 둘러보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산림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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