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데도 일 해보기는 처음입니다. 하루나 이틀정도 쉬었으면 좋겠는데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쉬는 것도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좀 푸욱 쉬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닭에 인삼이나 대여섯 뿌리 집어넣어서 고아 뜯으며 일 걱정 없이 쉬어보고 싶습니다. 비록 TV에서겠지만 재미난 영화도 하나 보고 생각지도 않은 문학상 같은 것에 당첨(!) 됐다는 전화를 받으며 그렇게 쉬어보고 싶은데 마늘을 아직 심지 못했습니다. 몸은 자꾸 말을 듣지 않는데 그놈의 마늘 심을 걱정 때문에 잠마저 깊이 들지 못하니 아침에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더 힘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마늘을 많이 심는 것도 아니랍니다. 많이 심어야 팔 곳이 없으니 저희가 쓸 것만 심습니다. 그래도 할 것은 다해야 되고, 힘든 건 빼지 않고 힘듭니다. 거름 날라서 뿌리는 일, 경운기로 밭가는 일, 쇠스랑으로 흙 고르는 일, 비닐멀칭 하는 일, 하나같이 제 손이 가야 되는 일입니다. 안식구는 토방에 앉아 마늘종자 까는데 바빠서 멀칭 씌울 때만 잠깐 잡아 주었습니다. 이런 때는 누구 힘센 장정이 한명 있어서 꼭 제 맘처럼 척척해주면 좋겠단 생각이 절로 납니다. 농협에서 사다 쓰는 20kg 퇴비 한포 무게가 무슨 돌가루 시멘트나 되는 것처럼 무거워서 20포대 날라다 뿌리는데 두 번 세 번을 앉아서 쉬어야 했습니다. 기운이 없으니 온몸에 땀이 솟아 물에 빠진 생쥐 꼴인데, 왜 허리를 그렇게 구부리고 다니느냐고 속 모르는 아내가 타박 주듯 말합니다.

땀이 자꾸만 흘러 눈을 찌르기에 경운기질을 할 때는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밀짚모자를 썼습니다. 엊그제 비가 제법온 뒤라 물기가 알맞아서 경운기로 반듯하게 잘 갈아 놓으니 쇠스랑질은 몇 번 하지 않아도 덩이가 부서지고 골라져서 판판해집니다. 늘 이렇게 해서 비닐을 씌우고 마늘이든 양파든 심어야 마음이 놓이는데, 심는 양이 많아져서 할 수없이 트랙터를 불러 일을 하면 땅이 다져지는 게 참 싫더라고요. 마늘 심을 두둑을 길게 두 줄을 어찌어찌 다하고 보니 오후세시가 가까웠습니다.

일하면서도 내내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의 농사가 내년에도 가능할까 하는 것을요. 며칠만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밭에서 한눈을 팔면 어찌 알고 풀은 그렇게 그악스럽게 크는지, 짐승은 왜 그렇게 꼬이는지, 벌레들은 또 왜 그렇게 농작물을 병들게 하는지, 거기에 비해 사람은 어제 오늘 다르고 작년과 금년이 달라서 한결 같지가 않습니다. 일하면서 오늘 다시 보니 마늘밭 옆의 더덕 밭은 와전 풀 공화국이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힘센 놈이 개별꽃이어서 이제는 더덕 밭 전체를 거의 다 덮었습니다. 다른 풀은 나서 한번 무성하게 자라면 스러지기 마련인데 이것은 일 년을 두고 번식에 번식을 거듭하는군요. 도저히 제힘으로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가 봅니다.

쉬엄쉬엄이나마 그래도 일을 하다 보니 어언간 끝이 보여서 숨도 한번 편안하게 쉬어지고 몸도 많이 풀렸습니다. 아침엔 상을 물리고 나서도 자리에 누워 버릴 수밖에 없는 상태였는데 일 때문에 누워서 걱정하느니 차라리 몸뚱이 끌고 다니면서라도 해야 되지 싶어서 한 시간 쯤 후에 어찌어찌 일으켜 일을 시작 했더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일이 끝났습니다. 일이 힘들 때마다 버릇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고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면 어언간 제가 원하는 순간이 찾아와 냇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순간이며 반복이어서 따지고 보면 좋고 나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지 않으면 오지 못하듯 고통의 순간도 기쁨의 순간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붙잡히고 놓여나는 것일 겁니다.

추분이 지났으니 절기로 보면 가을의 한 복판에 서있는 셈입니다. 허나 아직 날씨가 덥고 습기가 많아서인지 높은 산에도 단풍물이 들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들판의 벼는 하루가 다르게 누우런 빛깔을 더해가서 차를 타고 지나가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논은 아마도 지금이 가장 논답지 않을까 싶군요. 벌써 이른 나락을 심은 논은 군데군데 베어진 모습입니다만 그래도 들판은 어떤 기운으로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밭의 것들도 이제 서서히 가을의 물이 듭니다.

내일, 다시 전국에 걸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느지막한 오후지만 배추밭에 약을 뿌리고 양파모판에 거름을 조금 더 해 주었습니다. 양파는 농협에서 포트 묘를 해서 비용을 받고 농가에 공급해 주는데 저는 그냥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 밭에다 모를 부었더니 풀도 많이 나고 고르질 못합니다. 포트 묘 키우는 사람들 것을 보면 묘의 상태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포트에 상토를 채우고 한 구멍에 하나씩 기계로 파종을 하고 그때부터 여러 가지 병해충 예방약을 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양파묘판의 풀을 뽑고 거름을 뿌리면서 생각해보니 저라는 사람은 참 이상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을 힘들어 하면서도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하며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그 속에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어제 오늘만이 아니고 아주 오랜 시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러는 사이 저도 이렇게 논밭에서 허리가 구부러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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