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바빠집니다. 논에서건 밭에서건 거둬들여야 할 때가 되니 일손보다도 먼저 마음이 바빠집니다. 심지는 않고 거둬들이기만 한다면 바쁘고 자시고 할 것이 없겠지만 거둔 그 자리에 때 놓치지 않고 다시 심어야 되는 계절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여름 농번기철과는 달라서 겨우내 밭을 비워두기도 하는지라 농가의 형편에 따라서는 가을일손에 여유가 있습니다.

추분 지나가자 가을 햇발이 짧아지는 게 느껴집니다. 햇볕은 엷어지고요. 토방마루 끝의 햇살이 따갑기만 하던 여름과는 달리 조금씩 깊어지는 그것이 이제는 따사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박가지, 토란대 따위를 말리는 채반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햇빛 참 좋은날이 며칠 이어졌습니다. 습하지도 메마르지도 않은 고슬고슬한 그런 날입니다. 감나무의 감이 이제야 붉은 제 얼굴을 이파리사이로 드러내니 더 가을답습니다. 바람이 살랑거려서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코스모스가 흔들어서 바람이 살랑살랑 일어납니다. 가을에는, 아니 가을만큼은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길을 달려갔습니다. 바닷가로 난 아스팔트길을 따라서 코스모스 흔들리는 길을 따라서 아랫녘으로, 아랫녘으로 내려가면 목포에 닿는다는 그 길을 따라서, 변산반도를 벗어나고 줄포만을 돌아서 선운사도 지나고 해리에 닿았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해리장이 서고 있었습니다. 바다가 가까운 마을이기는 해도 비린 것보다는 산골냄새 더 향기로운 그런 소산들이 길을 따라서 좌판을 벌였습니다. 우슬, 엉겅퀴, 영지 따위의 약초들과 산밤과 감이 나오고 아 이런! 올기쌀이 나왔군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올기쌀 이름도 모르더군요. 찐쌀이라고 하고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줘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입가득 물고 침으로 불려가며 씹어 먹는 방법도 당연히 몰라서 한 두알 집어 먹어 봅니다.

올기쌀에 녹두를 넣고 지은 밥을 먼저 조상님에게 올리는 것을 이곳에서는 ‘올기심리’라 합니다. 가을 들어 첫 곡식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혹시 그런 밥을 자셔보았습니까? 그 푸르른 가을들판이 다 담겨 버린 것 같은 올기쌀밥을 먹어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조금 불행한 사람일겁니다. 제가 올기쌀을 예찬 하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그 방법을 말씀드립니다. 조금 덜 익은 벼를 낫으로 두어 다발 되게 베어 냅니다. 그것을 홀태로 훑어서 낱알을 얻어냅니다. 그 낱알을 솥에다 넣고 물을 부어 찝니다. 그것을 햇볕에 말립니다. 말린 그것을 절구통에서 절구질을 하여 찧습니다. 찧는 것도 겉껍질만 벗겨지도록 찧어야합니다.

옛날의 그 방법이 아니면 저 올기쌀이 할머니의 좌판에 놓일 까닭이 없어 두말없이 한 봉지 샀습니다. 한 되 남짓 되게 담겼는데 5천원이군요. 사라지는 옛날을 얻었으니 마음이 참 흥겹습니다. ‘심리’ 라는 말이 들어가는 게  또 있습니다. 봄철에 이 칠산 바다에서 첫 조기를 잡으면 변산의 고사리를 꺾어다가 넣고 끓이는데 그것 역시 조상님께 먼저 드리고 나서 먹습니다. ‘조기심리’라고 합니다. 심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말입니다. 올기쌀이 조기를 자아내서 그 옆 법성포로 넘어갔답니다. 조기는 하여간에 법성 화주가 생각나서였지요. 한 모금 목을 넘어가는 순간 불에 댄 것처럼 목 젓이 뜨거워서 화주인, 칠산의 바다와 조기와 바다 사나이들과 여인네들이 빚어낸 팔딱거리는 우리의 토속주! 안동소주가 양반들의 그것이라면 법성화주는 구릿빛 팔뚝에 힘살이 터지도록 돛과 노를 젓는 거친 바다 사내들의 술입니다.

그러나 법성에 화주는 있으되 예전 각 가정에서 담가내던 그 술이 아니요. 조기가 있으되 삼사월에 잡히던 칠산바다의 알 배인 조기가 아니더이다. 술은 품질을 규격화 한다는 말로 허가된 공장 생산품이요. 조기는 늘 입길에 오르내리는 수입산이 대부분인 것 같아 의례 그러려니 하고 먹긴 먹지만 흥취는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법성은 지금 조기철이 아니라 수입산이 됐던 칠산바다 것이 됐던 메말라 가고 있어 다시 뒤돌아서 동호해수욕장에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은 일출보다는 일몰이며 동해보다는 서해의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말쟁이들의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호해수욕장의 쓸쓸함과 고즈넉함과 해송들의 단정함과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파도는 저도 모르게 정태춘의 저 ‘떠나가는 배’를 흥얼거리게 합디다 그려.

겨울, 거친 북서대륙풍 앞에서 자기의 속살까지 하얗게 다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는 겨울바다의 그 순정 앞에, 화답하듯 하늘가득, 그러니까 천지분간 없이 주먹 같은 눈발이 내려 꽂혀 이게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별 못할 지점에 서보고 싶다면, 그래서 가슴 저 깊이 맺혀있는 응어리를 뱉어서 던져버려야 되겠다면 동호해수욕장! 그곳에 가 서보는 것! 거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려. 밤엔 친구의 집 구들방에 가서 몸을 눕혔다오. 뜨끈뜨끈하게 불을 지핀 황토방에 술판을 벌이고 이국의 정서를 몸으로 호흡하듯 엎드려 그 낯섦과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눈을 감았습니다. 낮의 코스모스 길과 저녁나절의 일몰을 지나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늘 끝은 시작이고 시작은 끝이어서 내일은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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