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를 벱니다. 잎을 따서 장아찌를 담가놓은 지가 엊그제인데 어느 순간 그 잎이 누우렇게 되고 씨방들이 갈색으로 말라가서 벨 때가 되었습니다. 수돗가에서 왜낫을 잘 갈아서 밑창이 단단한 작업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들깨 밭으로 갑니다. 길게 세 줄을 심었어도 양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라, 노는 양인 셈이어서 마음이 가볍습니다. 목청 것 부르는 것은 아니어도 이 맑은 가을날만큼이나 기분이 좋아서 무언가 흥얼거려졌습니다.

들깨 베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해서겠지요. 들깨의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고 벨 무렵의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족히 가을의 가장 가을다운 냄새라 할 수 있지요. 말 그대로 풍성하게 익어가는 들의 냄새입니다. 들깨의 키가 제 키와 비슷해서 깨를 베는 저의 온몸에 휘감깁니다. 몸을 조금만 숙이면 들깨의 그늘에 묻히게 돼서 금세 땅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이마의 땀을 식혀주곤 합니다. 제가 들깨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은 들깨는 다른 여름작물을 다 심어놓고 나서 조금 늦게 심어도 아무걱정이 없고, 자라는 동안에 아무리 잎을 뜯어먹어도 잘 여물기 때문이고, 참깨처럼 까다롭게 죽거나 쓰러지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작물사이 사이에 심으면 병해충이 예방되며, 기름 또한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꾸기 좋은 점 때문인지 참깨에 비해 값은 헐값이라 사람들이 많이 심지를 않습니다. 밭둑가에 빙 둘러 심거나 한두 줄 두둑을 지어 심어서는 거둬 들깨가루를 내어 쓰고 기름을 짤 뿐입니다.

들깨를 거의 다 베어가는 만큼이나 가을이 마무리를 향해 치닫는 느낌입니다. 들깨 밭 옆의 콩들도 이제 거의 다 익어서 이파리들을 떨구고 있습니다. 여름내 고라니가 와서 뜯고 멧돼지가 뒤적였어도 지들 나름대로 힘을 다해 익어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내니까 지 생각대로 되어주지 않을 때 낙담을 하고 화를 내는 것이지, 한 발짝 물러나 자연을 보면 결코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가을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럴 수 있을 만큼 인간내면이 성숙해진 것일까요? 흔히들 말하기를 “그 정도 욕심 없이 어떻게 살림을 하냐”면서 이웃의 이기적인 모습들을 눈감아 주기도 하는데, 때로 그것이 자연에 대한 수탈, 내지는 파괴로 이어지는 것도 눈감는 것은 아닐는지요. 제가끔 모습을 드러내야하는 계절 앞에서 우리는 어떤 꼴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에 더덕 밭에 풀을 다 베어냈습니다. 어수선하던 모습들이 참 말끔해졌습니다. 베면서 보니까 개별꽃 등쌀에 어쩌나 싶었던 더덕들이 그 밑에 그대로 무탈하더군요. 사실 더덕은 음지 식물이라 개별꽃이나 다른 풀들 밑이 오히려 생장에 도움이 되었던 셈입니다. 시험 삼아 파 보니까 뿌리가 아주 튼실했습니다. 양파를 심기위해 지난번에 갈아 두었던 밭도 한 달이 지난 새에 풀이 많이 커서 다시 갈았습니다.

가을에 나는 풀이라는 게 여름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차이어서 자라는 품새나 억세기가 더디고 약한데, 그래도 풀이 너무 크다 싶어서 다시 갈아엎었습니다. 이제 마루 끝에 앉아서 봐도 밭의 저 먼 끝가지 훤히 보이게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정리되어 가는 셈입니다. 가을일 서둘러서 좋을 게 없다지만, 제 농사의 되는 모양세가 서둘지 않아야 될 것도 없어서 미리미리 하는 중입니다. 시월은 아무래도 바쁜 철이어서 틈만 나면 일을 해내야 합니다.

나락 베고 양파 심고 보리 갈면 금년일은 대강 마무리 될 테지요. 아침저녁 날이 참 쌀쌀해져서 세수 하느라 찬물에 손 담그면 시립니다. 텅 비어가는 밭머리에 서는 날이 많아집니다. 가을이, 잘 여문 곡식들로서 꽉 차 버리는 풍요로움이기도 하지만, 이 텅 비어버리는 것의 여유로움도 어찌 보면 풍요로움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저 빈 밭에 무엇을 심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 때문에 비었으되 빈 게 아니겠지만 그 상태로 좀 놔둬보고 싶은, 어쩌면 밭에도 우리 삶의 쉼표 같은 의미가 어른거리기에 한 발짝 앞서 바라보면 풍족한 것일 겁니다.

그와 반대로 지금 저희 집 마당은 곡식들이 널려 있어서 마당답습니다. 지금은 녹두가 널려 있습니다. 일찍 따서 알곡만 모은 녹두를 벌레 먹고 덜 여문 것을 골라낸답시고 방안에 들여놓고 여러 날을 두었는데, 바구미가 생겨서 다시 마당에 널었습니다. 늦게 딴것들도 순서대로, 꼬투리채로, 혹은 알곡인 채로 나란히 널어져서 마르는 중입니다. 뒷마당은 장독과 화단이 있는 잔디마당이지만 앞엔 곡식 널 것을 생각해서 흙 마당으로 두고는 늘 풀을 뽑고 나뭇잎들을 쓸어내는데, 그 마당에 아침이슬이 마르는 아홉시나 열시쯤이면 깨끗한 깔개를 마당귀에 맞춰 반듯이 펴고 곡식을 넙니다. 고루고루 잘 펴 널고 손 털고 일어나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저 넓디넓은 땅에서 여름의 수고로 얻은 것치고는 참 보잘 것 없습니다. 들인 노력의 오분의 일,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어서 순간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의 수고는 가뭇없이 사라져 생각나지도 않고 땅의 수고만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한 톨의 곡식을 살 때 돈으로 산다고는 생각 마십시오. 오직 마음으로 사고 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농부의 수고는 그것으로 보상 받고 농업의 미래는 밝아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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