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목 은행나무 사이로 보는 절경


용문산으로 가는 길

서울 지하철 중앙선 종점인 용문역. 동양 최대의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가 위치한 용문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부터 약 25분 정도 버스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 은행나무 가로수와 그 너머로 잣나무, 굴참나무가 자라는 산기슭이 보이는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를 달리다 보니 고즈넉한 고향길이 생각나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용문산(1,157m)은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용문산은 계절마다 나름대로의 풍광을 자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봄에는 얼레지, 복수초 등 아름다운 야생화가 꽃 피우고, 여름과 가을에는 수려한 산세와 계곡이 함께 어울려 산명수려(山明水麗)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겨울에는 깊은 계곡마다 하얗게 얼어붙은 계곡물과 그 위에 소복이 쌓인 눈들이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용문사와 천년고목 은행나무

용문사 입구에서 용문사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포장이 잘 되어있는 산책로로 가족단위 탐방객이나 유모차를 끌고 올라오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산책로 주위로 늘어서 있는 푸르른 나무들과, 산책로 옆을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즐기며 가벼운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었을까.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몰려 있는 것이 보이고 그 뒤로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인다. 큰 가지들은 웬만한 나무의 두께보다 두껍게 느껴질 정도로 실로 엄청난 위압감을 준다.

용문사하면 은행나무가 떠오를 정도로 이 천년고목 은행나무는 여러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추정 수령은 1,100년 정도이며, 높이는 약 62m, 가슴 높이에서의 둘레는 약 14m에 달한다. 이 은행나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927~935 재위)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625~702)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이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현재와 같이 성장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내려 온다.

그 외에도 누군가가 나무를 베기 위해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나고 갑자기 천둥이 내리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며,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이러한 전설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기는 힘들겠지만 이 고목의 웅장함과 위압감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전설들이 생긴 이유가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은행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성질을 지닌 은행나무를 절 주변에 주로 식재하였으며,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이러한 전통이 전파되었다. 일본에서는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지점 인근에 위치한 절 내에 있던 은행나무들이 주변 건물들이 모두 폭발에 의해 파괴되었음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이듬해 새싹을 틔운 사례도 있다고 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오랜 세월에 걸친 전란의 혼돈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이라고도 불렸으며,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관 품계를 하사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왔다.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고 여겨져 1962년에는 천연기념물 제 30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중요하게 관리되고 있다.

1900년대 초부터는 은행잎 추출물의 약효에 대한 연구들이 이루어졌으며, 1960년대에는 은행잎 추출물이 말초혈관 확장, 혈액순환 촉진, 콜레스테롤 감소 등 혈액 및 혈관에 대한 약리작용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최근에는 뇌 대사 촉진, 뇌 혈류량 증가 등 뇌기능 개선작용을 나타내는 것도 밝혀졌다고 한다. 특히 국내 은행나무 잎에는 약효성분이 있는 추출물인 진코플라본 글리코사이드(Ginkoflavon glicocide)가 다른 나라의 은행나무 잎보다 10~20배 가량 많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거대한 은행나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바위투성이의 험준한 등산로

용문사 은행나무가 주는 감동을 뒤로하고 용문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에 이르면 난이도별 등산로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인다. 정상인 가섭봉까지 오르는 길은 용문산의 또 다른 명소인 마당바위를 통할 수 있는 계곡길과 능선을 직접 치고 올라가는 능선길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계곡길을 택하면 계곡을 졸졸 흐르는 물을 벗 삼아 산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들어서면 그 많던 가족 단위 탐방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필시 등산로에 돌이 많고 투박하여 오르기가 편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흔히 산세가 험하고 돌이 많은 산에는‘악(岳)’자를 붙인다. 용문산도 이들 악산으로 불리는 산들 못지않게 험준하고 돌이 많다.

오르는 길에서 볼 수 있는 숲의 구조는 비교적 뚜렷하다. 아래층에는 조릿대, 생강나무, 매화말발도리 등을 쉽게 볼 수 있고, 숲의 바닥에서는 수줍은 듯 노오란 그물로 자신을 살포시 감싸고 있는 노랑망태버섯도 관찰할 수 있다. 중간층에는 쪽동백나무, 당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보인다. 가장 상층에는 졸참나무, 신갈나무 등의 참나무 군락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용문산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참나무류들의 분포가 용문산의 절반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용문산은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과 같이 고산에 속하는 지형을 갖추고 있으며, 중부산악지역 중심으로 나타나는 북방식생과 남방지역의 고산식생이 교차하는 한반도 내륙에서의 식생 전이대이기 때문에 다양한 식물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높이 4m, 길이 7m, 폭이 5m 가까이 되는 거대한 마당바위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하면 산세는 더욱 더 험난해진다. 경사는 급해지고 돌들도 더욱 많아진다. 쇠말뚝에 매인 밧줄과 나무 계단 등이 설치되어있어 등반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수직에 가까운 작은 석벽들을 오를 때에는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야 할 정도이다.

정상에서 느낄 수 있는 절경

가파른 계단길을 지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드디어 가섭봉에 오르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산 정상에 오르는 순간은 언제나 기쁘지만 용문산과 같이 험한 여정을 거치고 올라올 때면 그 보람은 곱절이 된다. 정상 주위에서는 괭이눈, 앉은부채, 복수초, 얼레지 등의 야생화 등을 찾아볼 수 있으며, 또한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상징으로 만든 새하얀 조형물도 있어 보는 정상을 정복한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준다.

도시 근처에 위치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의 경우, 정상에 서면 빼곡히 늘어서있는 아파트와 건물들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용문산 정상에 오르니 온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실로 편안함과 감동을 주는 절경이다. 그렇게 올라오기 힘들었던 험준한 돌길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정상에 다다른 다른 등산객들도 이러한 절경을 조금이라도 더 마음속에 담아가고 싶은지 한참을 경치를 즐기며 즐거워한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로 하산을 하고나니 용문사의 은행나무가 다시 반겨준다. 최근에는 인근의 용문산 자연휴양림 시설이 활성화되면서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용문산은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는 길을 원하는 가족단위의 관광객들과 거칠고 험한 돌길에 도전해보고 싶은 도전정신 있는 등산객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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