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청과, 도매시장 상장거래의 역사

“투명한 거래제도를 바탕으로 수취가격 제고와 안정적 판로를 제공해온 지난 75년의 성과를 회고하며, 제 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다져 미래 농업발전과 농민소득 향상에 기여하는 공익적 소임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다.” 서울청과(주) 김용진 사장이 밝힌 창립 75주년 기념사다. 지나온 발자취 하나 하나가 우리나라 도매시장과 농산물 유통의 역사를 대변하는 서울청과(주)를 반추한다.

     
▲ 1960년대 말 의주로 중앙도매시장(염천교시장) 모습
서울청과의 발자취…‘공영도매시장의 역사’


193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는 “경성중앙청과주식회사 창립총회 완료”를 알렸다. 경성중앙청과는 1939년 4월 1일 경성부 통의동(현 숭례문 광장 앞)에 문을 연 경성중앙도매시장의 청과부 운영업무를 대행하기 위해 창립된 회사다. 청과부와 선어부로 나뉜 경성중앙도매시장은 선어부를 개설자(경성부)가 직영했다. 서울청과는 개설자의 운영업무를 대행한 경성중앙청과에서 효시를 찾고 있다.

경성중앙청과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염천교시장(현 서소문 근린공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호를 중앙청과주식회사로 개명했다. 이후 20여 차례 경영권이 바뀌는 역경을 딛고, 1963년 12월 4일 서울청과주식회사(사장 전창기)가 됐다.

1950~1960년대 우리나라 도매시장의 대부분은 위탁(유사)도매시장이었다. 1957년 서울, 인천, 부산, 대전, 이리(익산), 전주, 군산, 대구, 청주, 목포, 김천, 포항, 광주, 마산, 경주에 중앙도매시장이 설치됐다. 그러나 도매시장은 처음부터 허가된 법정도매인과 유사도매인(위탁상)이 혼재했다. 위탁상들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생산자와 수집상에게 전대금을 뿌리면서 광범위하게 산지 출하자를 장악하고 있었다.

정부는 1960년대에 들어서야 도매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1961년 처음으로 부산에서 농협공판장이 개설됐고, 1962년 서울, 대전, 대구, 광주로 늘어났다. 농협공판장이 가세하면서 법정도매시장과 유사도매시장의 경쟁이 가속화됐다.

▲ 1980년대 초 용산 농산물도매시장 풍경
서울청과는 염천교시장에서 1975년 8월 31일 용산시장으로 이전했다. 1976년 서울특별시로부터 개설자 업무를 대행해 도매시장 운영·관리를 전담하는 ‘지정도매인’으로 지정받았다. 당시 용산시장은 서울시를 대행한 서울청과(법정도매시장) 1곳과 유사도매시장 2곳(나진시장, 태양시장)이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1976년 9월 27일자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용산시장내 위치한 서울청과는 대지 1만4,800평, 총건평 7,589평, 주차장 2,000평 규모였다. 과실부 중도매인 75명, 채소부 중도매인 145명, 도매점포 74개와 소매점포 108개가 인접해 있었다.
1977년 8월 31일 공공투자에 의한 대단위 농수산물유통센터 건립이 결정됐다. 세계은행(IBRD) 차관(5,000만불)을 바탕으로 1982년 7월 13일 강동구 가락동289번지 일대 총 547,265㎡(16만5,547평)이 착공됐다.

    3년 연속 최우수법인…거래실적 1조원 목표

▲ 1985년 6월 19일 새벽 4시 20분 가락시장의 첫 경매가 서울청과에서 진행됐다.
1985년 6월 19일 새벽 4시 20분. 호창이 시작됐다. 수백 개의 손가락이 깜빡댔다. 역사적인 순간을 담기 위한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가락시장의 첫 경매를 진행한 서울청과의 참외경매 순간이다.
당시 경매는 참가자들이 5단으로 된 계단식 의자에 서있으면 롤러로 된 선반을 따라 농산물 견본품이 지나가고, 중도매인은 손가락으로 금액을 제시하는 수지호가식 경매방식이었다.

서울청과 제 2대 대표이사를 역임한 최종적 전 대표는 “용산시장의 개인 위탁상인들을 가락시장으로 옮겨오면서 상장경매를 정착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직원들과 호흡을 맞춰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땀 흘리면서 제도권 시장의 성공적인 정착을 이끈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오항근 전 과일 중도매인조합장은 “염천교와 용산시절을 거쳐 가락시장까지 45년 이상의 세월을 서울청과와 함께했다”면서 “1985년 가락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제도권 시장으로 규모가 커질 수 있었던 것은 서울청과와 중도매인이 함께 자부심을 갖고 단결력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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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가락시장 서울청과 야경
92년 12월 10일 서울청과는 전자식 경매시스템을 시험가동하는 등 본격적인 가락시장 시대를 맞아 상장거래 정착에 앞장 서 왔다. 개장 초 15억 원이었던 자본금은 2014년 94억 원으로 증자됐다. 거래실적도 크게 늘었다. 개장 초 거래실적은 434억원(거래물량 20만3,000톤)에서 2013년도 말 기준으로 6,902억원(35만3,000톤)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 내 법인평가에서 2009년, 2010년, 2011년 3년 동안 연속 종합 1등을 차지했다. 또한 가락·강서 도매시장법인 고객만족도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CS 선도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말부터 2000년까지 40여 년간 마이크를 잡았던 이강하 전 경매사는 “상품을 보는 안목과 지식은 경매사의 기본”이라며 “서울청과의 경매사는 상품의 선별 뿐만 아니라 그 뿌리가 되는 농민들과 함께 최상의 상품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연구 한다”고 강조했다.

    “농산물 유통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

75년의 서울청과를 이끌어 온 경영 패러다임은 ‘정도경영’이다. 원칙과 규범을 준수한다. 모범적으로 정부 정책을 수행한다.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 이것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서울청과의 전통이다.

▲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서울청과 농산물연구소 내부모습.
지속가능한 유통 생태계 조성을 추진해 온 서울청과의 미래비전은 3가지. △농산물 유통 표준화 △정가·수의매매 등 거래제도 다양화 △부설연구소의 공적기능 확대다. 우선은 농산물 유통 표준화다. 일례로 지난 2012년부터 추진하는 박스 열무 포장재 지원사업이 있다. 출하단체를 대상으로 박스 구입비용의 일부를 지원해 포장반입이 235.7%나 증가했다.

경매 일변도의 거래시스템에서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규모화된 거래의 유통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08년부터 전자거래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 2012년에는 정가·수의매매 안착을 위해 일본 동경청과와 제휴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제주당근을 정가·수의매매로 거래해 안정적인 거래기반을 구축했다.

지난 2012년 설립된 서울청과 농산물연구소는 농업발전과 농민 소득증대가 목적이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연구소에서는 차세대 농민들을 위한 △고품질 농산물 재배관리 교육 △맞춤형 농산물 생산기술 교육 △농산물 유통관리 교육 등을 지원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한다.

▲ 서울청과 김용진 사장
울청과 김용진 사장은 “서울청과는 농산물 유통의 기수로서 농산물 유통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유일무이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회사”라며 “이는 서울청과의 경영방침인 ‘서비스 정신’, ‘창의적 사고’, ‘개방적 토론’을 근간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가 발전에 대한 기여를 다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지난 75년 세월 동안 한결같이 서울청과를 아끼고 사랑해 주신 전국의 농업인, 유통인, 소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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