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일기예보로는 이쪽 지방에 10cm가량의 눈이 온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지붕위에 쌓인 것을 가늠해보니 한 뼘이 넘습니다. 약25cm정도 왔다는 이야기지요. 여기에 하늘은 눈구름으로 덮여있고 계속해서 쏟아 부으니 얼마나 더 쌓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궂은 날씨는 얼마 전부터 계속돼왔고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은 날마다 오다시피 했는데 그 위에 기온이 떨어지며 한꺼번에 많은 눈이 와 버리니 이제는 오는 대로 쌓여서 눈이 모든 것을 이겨먹는 대장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감나무엔 따지 않은 감이 꽤 많이 달려있었고 곶감을 깎는 먹감은 나무에 달린 채 쭈글쭈글 마르기도 해서 오며가며 하나씩 따먹기 좋았습니다. 새들이 조금씩 쪼아 먹고 남긴 것들이 그렇게 마르는데 천지사방이 다 눈으로 덮여서 먹을 것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불과 이틀사이에 그 감들도 다 없어졌습니다.

감을 쪼아 먹는 새들은 몸피가 큰 것들입니다. 까치와 어치 그리고 산 까치들인데 이놈들은 때로 몰려다니며 먹는지라 감이 없어지자 이제는 나무 밑이나 집 앞의 두엄자리를 파헤쳐서 음식찌꺼기와 곡식 낟알 따위를 줍습니다. 몸집이 작은 박새나 곤줄박이들은 토방 마루로 자꾸 날아들고요.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는데 유일하게 맨땅으로 남아 있는 곳이 사람 사는 집 처마안의 토방이라 날아드는 이들이 반갑지만 마땅히 뿌려 줄 먹이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이것 빼고는 천지사방이 아주 조용합니다. 눈이 많이 오니 하루 종일 길거리 지나가는 차도 없습니다. 눈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는 까닭에 제설차도 눈 그치기를 좀 기다리나 봅니다. 사람도 눈 속에 갇혀서 꼼짝 못하는데 제 사는 곳은 마을과 떨어진 산속 외딴집이라 더욱 적막합니다. 사르륵사르륵 밤새 눈이 내려 쌓이는 소리를 자리에 누워서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한밤중 잠에서 깨어나 귀를 기울이면 눈 오는 소리도 꽤 크게 들립니다. 비하고는 달리 추녀 떨어지는 소리도 나지 않지만 천지사방이 꽉 조이며 압박해 오는 듯 은밀하게 조용하게 오는 눈 소리는 때로 몹시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비는 흐르는 것이지만 눈은 덮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눈 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할 때가 있었습니다. 옛날의 눈은 지금과는 격이 달라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었습니다. 샘으로 물을 길러 갈수 없어서 눈 녹여서 밥을 해먹고 냇가로 빨래를 하러갈 수 없어서 흰옷이 무색 것이 되었으니까요. 그러긴 해도 나이 어린 애들이야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논이나 방죽에서 얼음을 지치고 고샅길에서는 눈썰매를 타며 신나했을 뿐이지요. 조금 커서 멜빵거리 나무나마 하러 다닐 쯤에는 울안에 나무 떨어질 걱정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게지고 본격적으로 나무를 하러 다닐 쯤에는 겨울 땔감을 책임져야 할 나이여서 날만 좋았다하면 무조건 산으로 내달아서 해 저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해대었습니다. 그때의 그 나무 떨어질 걱정이 지금도 저의 의식을 지배해서 처마 밑에 쌓인 장작을 보면 기분이 좋고 배가 부른 듯 합니다.

애써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눈 핑계로 며칠이고 좀 가만히 엎드리어 있으려던 생각을 떨치고 나가서 집 뒤 산에서 나무를 했습니다. 저희 집은 하루에 한번, 저녁에는 저희 자는 안방 아궁이에 불을 넣고 아침에는 따뜻하게 부엌을 덥히고 물을 얻을 량으로 정지 방 아궁이에 불을 넣습니다. 안방 아궁이는 거실에서 불을 때게 되어 있는 구조라 마른 장작을 땔 수밖에 없지만 정지 방 아궁이는 밖으로 달아내어 부엌을 만들었으므로 거친 생나무를 땔 수 있습니다. 불도 때보면요. 마른 장작은 불붙여 때기는 좋아도 방이 좀체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생나무는 마른나무로 밑불만 충분하게 만들어 놓으면 때기에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불 힘이 좋아서 부엌도 더 따뜻하고 방도 역시 더 따뜻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나무 없으면 눈꿍에도 지게지고 산에 가서 땡땡 언 생솔가지 뚝뚝 분질러다가 땠답니다. 솔가지도 얼지 않으면 잘 안타지만 얼면 희한하게도 툭툭 터지는 소리를 내며 잘 탑니다. 대신 연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지요.

그렇게 옛 생각을 하며 저녁나절에 나무 두어 다발해서 나뭇간에 들여놨더니 밤새 또 눈이 몽땅 와 버렸습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첫날 많이 온 눈을 보고 이장이 마을방송을 하기를 ‘어젯밤에 눈 참 거시기하게 많이 왔습니다.’ 둘째 날 더 많이 오자 ‘어제 온 것은 거시기도 아닙니다. 잉’ 했는데 셋째 날 더 많이 오자 ‘이제 우리 마을은 거시기 돼야 부렇소’ 눈 많이 오는 어느 동네서 그랬다지만 여기도 꼭 그 짝이 날 모양입니다.

답답합니다. 빨리 고실고실 마른땅을 밟으려면 지붕과 울안의 눈을 다 들어내야 하는데 이 많은 것을 무슨 힘으로 들어낸답니까. 처마 밑까지 쌓인 눈을 그대로 두고 보자니 이 눈이 언제 녹을지도 모르겠고 빨리 녹는다 하여도 내내 질컥대서 장화신세를 져야겠지요. 것 보담도 차를 몰고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그게 더 답답합니다. 이 눈 속에 차를 몰고 밖에 나가보니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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