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이유로 농축산 수출강국과 잇단 개방 협정 체결

캐나다(3.11), 호주(4.8), 중국(11.10), 뉴질랜드(11.15), 베트남(12.10).
우리나라가 지난 10여년간 타결한 총 15건의 FTA중 1/3인 5건이 올 한해 이뤄졌다. 지난 22일은 최경림 산업통상부차관보가 뉴질랜드까지 날아가 한·뉴질랜드 FTA협정에 가서명까지 하는 등 올해 마지막까지 FTA 일색으로 마감했다. 농업 관계자들 입장에선 ‘줄초상’을 치른 심경이다.

여기에 더해 내년은 더욱 암울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등 협상이 진행 중인 협정까지 타결되면 우리나라에 ‘농업이 존재할까’ 싶다. 하지만 정부는 호재로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이쯤되면 농업분야에 대한 보호막을 달리 구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잦다. 관심도 없는 정부를 향해 계속 애원하듯 울부짖는 정도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견해가 많다. 이대로는 어렵고, 정부에게도 기대치가 낮고…. 내년에도 농업·농촌은 갈곳없이 아스팔트에 얹혀 살 형편으로 보인다. 난감하기만 한 얼룩, 각국들과의 FTA체결과 우리 농업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재차 살펴본다. 이는 정부에 대해 농업보호를 강조함과 동시에, 여론을 재삼 일깨우는 계기를 염원함이다.

□ 캐나다, 9년14차 협상…TPP 때문에 양보

캐나다와의 FTA협상은 10년 가까이 지난하게 진행됐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 우려되고,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를 낮출 경우 큰 피해가 염려된다는 문제 등이 협상 진척을 더디게 하는 이유였다. 협상이 급진전으로 인해 자동차 수출길을 열었다는 정부의 설명 뒷면엔, TPP에 가입하려는 ‘입장료’ 대신 농업분야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속 아픈 얘기가 숨어있다.

협상결과 우리나라는 전체 농산물 중 18.8%(282개)를 양허제외 및 예외적으로 취급하는 조건을 얻었다. 쌀, 분유, 치즈, 감귤, 사과, 배, 고추·마늘·양파(냉동 제외), 인삼 등 주요 민감농산물 211개 품목은 양허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문제였다. 협상지연의 주된 요인인 쇠고기는 40%에 대해 점차적으로 낮춰 15년 후에 관세를 철폐키로 했다. 캐나다 입장에선 현재의 시장점유율 0.6%를 감안하면 무한 잠재력이 있는 시장인 셈이다. 미국에 이어 수입비중이 2위인 캐나다산 돼지고기는 현재 22.5~25%대의 관세를 서서히 낮춰 13년후 아예 무관세화한다는 협정이다. 양돈농가의 피해규모가 점쳐지는 대목이다. 향후 축산물 관세가 완전히 사라지는 15년후를 기점으로 총 4천806억원의 축산업 피해가 예상된다는 관측이다.

□ 호주, 낙농 1천239억 피해 예상

캐나다보다 먼저 실질적인 타결을 선언한게 호주다. 농축산업 분야에 대한 보호의지가 사라지면서 현실적으로 제일 접근이 쉬웠던 FTA가 호주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년간 끌어오던 협상에 타결이 선언되면서, 농업계는 ‘쇠고기 시장 둑 터졌다’고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는 농업분야의 민감성을 고려해 관세철폐기간을 늘리는 등 예외적 수단을 최대한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쇠고기를 포함해 여타 509개 민감 농수산물에 대한 관세를 10년 초과 장기철폐 등으로 국내적 민감성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부연했다. 쇠고기 관세는 15년, 낙농품중 치즈, 버터, 조제분유 등은 저율할당관세(TRQ)를 부과키로 하는 등 한미FTA보다 한수 위인 조건에서 막았다는 게 정부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내 수입쇠고기의 55.6%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게 호주산인 점을 감안하면, 해마다 관세까지 낮아질 경우 수입물량 증가는 불보듯 하다는 예측이다. 건국대 김민경 교수는 호주와의 FTA 체결시 낙농분야에 국한해 최대 1천921억원의 낙농생산액 감소가 우려된다는 연구분석 결과를 내 논 바 있다.

□ 뉴질랜드, 유제품 수출 1위…키위·단호박까지

영연방 3개국 FTA마지막 시나리오인 뉴질랜드 역시 축산강국이고 최대 농업수출국이란 점에서 농업분야 희생조건이 수반됐다는 의견이 많다. 뉴질랜드와의 FTA는 5년간 협상이 진행됐고, 지난 11월 협상이 타결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농축산물을 가장 많은 비중으로 전면개방한 국가가 됐다.

정부는 농축산물 분야는 양허제외, 예외적인 취급(TRQ, 부분감축, 계절관세 등) 비중이 전체 농산물 1천500개 중 40.1%인 602개로 다른 FTA에 비해 ‘보수적’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보호의지를 피력한 협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농업분야 희생이 발견된다. 협상 당시 뉴질랜드측이 시장개방을 요구했던 품목들에 대해 대부분 양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쇠고기의 경우 세이프가드를 발동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15년내에 관세가 철폐되기 때문에 매년 1.9%씩 가격이 낮아지고 그만큼 수요층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유제품의 30%를 차지하는 뉴질랜드산은 7~15년 관세철폐 약속에 따라 수입공세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6년내에 관세를 없애기로 한 키위, 5년내 철폐되는 단호박 등은 수출 급증세가 예상되는데다, 이와 비슷한 과일이나 작물의 간접피해가 예고된 터다. 이들 항목 또한 뉴질랜드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들이다.

□ 중국, 양허대상제외 무의미…수입 봇물 예상

주요 FTA의 양허제외율을 보면 한미FTA는 1.0%, 유럽은 2.8%, 캐나다는 14.4% 수준인데 반해 중국과의 협상은 30%까지 관세철폐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개방의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양허제외 지위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게, ‘중국산 범람’ 문제이다. 한중FTA의 최대 피해 또한 농업분야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된 얘기다.

그만큼 현실은 ‘정부의 이론’과 따로 움직이는 꼴이다. 주요 농수출산물 548개 품목을 초민감품목으로 분류, 양허대상에서 제외했고, 감귤과 소비대체 효과가 큰 오렌지, 과실류 주요 가공품인 포도·사과·복숭아·딸기·토마토 주스도 양허제외품목에 포함시켰다는 브리핑이다.

문제는 FTA가 발효되면 낮은 관세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현실보다 더욱 좋지 않은 조건이 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우선 가공식품인 간장·된장·고추장·메주 등 전통식품과 국내 생산기반 유지가 필요한 식품용 대두유·설탕·전분 등 가공식품이 양허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 이들은 5년에서 15년 안에 단계별로 관세를 낮춰야 한다.

소, 돼지, 닭, 오리, 우유, 계란 등 주요 축산물을 예외시킨 것도 별 의미 없다는 의견이 많다. 일부 가공품을 제외하면 국내 수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관세철폐 대상인 생우의 역수입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우려를 낳는다.

기존 낮은 관세율로 인해 수입산 시장 점유율이 높은 과채류, 가공품, 양념채소 등도 중국입장에선 굳이 양허대상으로 끌어낼 필요가 없다는 측면이 강하다.
굳건히 지켰다는 냉동고추·마늘(27%), 인삼차·음료(8%), 건조파(30%), 냉동양파(27%) 등은 이미 국내 식자재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마당에 더욱 내줄 자리가 없는 것들이다.

□ 베트남, ‘아시아의 브라질’ 준비된 농산물 수출국

세계 쌀 수출국 2위인 나라가 쌀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FTA협정을 맺었다. 뒷셈이 따르던지 이에 버금가는 카드를 내밀었던지, 농산물 분야에 대한 숨겨진 카드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다.

베트남과 FTA를 체결하면서 우선 아세안FTA협정이 기준이 됐다. 아세안FTA 때 민감·초민감품목 525개를 대상으로 협상한 결과, 총 122개 품목에 대해 추가개방을 약속했다. 베트남측 요구대로 망고(30%), 파인애플(30%), 두리언(45%) 등의 열대과일에 대한 관세가 10년후에 완전 철폐된다. 파인애플쥬스(20%)는 5년후, 과실혼합물(45~50%)는 10년후 없어진다. 냉동삼겹살은 10년, 쇠고기 식용설육은 3년후 철폐한다.

정부는 아세안FTA에서 양허제외했던 쌀을 협정대상에서 아예 제외해 보호수준을 높였다고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답변은 ‘미미한 영향’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이란 국가를 한번만 살펴보면 알수 있듯이 녹록하게 바라볼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TPP에서 노릴 수 있는 쌀관련 추가 요구도 충분히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베트남은 쌀 자급능력이 125%에 달하고 수출단가도 톤당 351달러로 중국산에 절반가격으로 매긴다. 결코 손놓고 있을 작물이 아닌 것이다. 열대과실류의 수입이 늘면서 대체수요로 인한 국내 과수농가들의 피해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오를 조짐이다.
냉동마늘, 건조마늘, 생강, 천연꿀, 고구마전분, 돼지고기 등도 경쟁력이 만만치 않게 점쳐지는 품목들이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