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얼마전 지났습니다. 설과 추석 명절을 빼면 일 년 중 가장 요란스러운 날이 아닌가싶습니다. 2천년전 아기예수가 태어난 날을 전 세계가 이렇게 기념하는 것은 그가 평생을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마구간이란 태생지부터 잘살고 권력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겠습니다. 그렇게 많이 오던 눈도 기대와는 달리 이날은 오지 않아서 조금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한 일주일동안 맑은 날이 계속 되어서 그도 또한 괜찮네요.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이라 성탄절이 되어도, 눈이 오지 않아도 무덤덤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날은 평소와는 달리 뭔가를 조금은 더 생각합니다.

제가 결혼을 한 것은 1984년도인데 예식을 교회에서 올렸습니다. 그때도 무신론자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교회를 다녀서 영세라는 걸 받지 않으면 즉 교인이 아니면 교회에서 목사가 주례하는 결혼식을 치를 수 없었습니다. 안식구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니 문제가 없는데 저는 자격이 되지 않으니 난감했지요. 처음엔 결혼을 반대하던 장모님이 나중에 승낙하시면서 다짐 두듯 식은 교회에서 올려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걸 무시하고 일반 예식장에서 치러버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결혼식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웃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몇 달 동안 교회를 나가서 교리공부를 하고 어떤 절차에 의해 영세를 받고 민원서를 발급받듯이 증명서를 받아 해당 교회에 제출해야 되는 것이 아닌데다 저 또한 신앙심과는 다른 하나의 형식으로만 여겼으니 교회와의 인연은 그때 잠시의 것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한 기억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뜩이나 빼빼하니 살집 없는 사람이 결혼한답시고 애를 썩혔는지 광대뼈가 툭 불거지도록 얼굴이 말랐었고 난생 처음 해보는 예식인지라 웃지 못 할 실수가 생겨서 장인어른이 딸의 손을 잡고 걸어오시는데 그냥 멀뚱하게 선 자리에서 그대로 신부의 손을 건네받기도 했습니다. 장인어른이 고놈 참 버릇없고 괘씸한 놈이라 속으로 나무라셨을 것 같고 당신도 많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조금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주례는 왜 그리 길기만 하던지, 다른 예식장의 주례들은 짧기만 하던데 사람을 세워놓고 말려 죽이려는 심사인지 예식을 두 시간 가까이 끄는 것 같았습니다. 겨우 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는데 출장 나온 사진사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지 않아서 사진 찍는데  또 한 시간 가까이 버텨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결혼사진 속의 저의 모습은 골이 날대로 난 표정이라 나중 사진 찾을 때 본 이후로 저는 결혼사진을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습니다. 또 있습니다. 눈이 그렇게 많이 올 수가 없었습니다. 함박눈이 오다가 눈보라가 치다가 진눈개비가 연방 섞바뀌는데 눈 때문에 대절차가 동네까지 못 들어 갈까봐 서두느라 피로연도 제대로 못했으니까요. 이랬던 저의 결혼식 날이 1월3일. 이제 일주일가량 남았군요. 특히나 둘째딸애의 생일이 그렇게 요란을 떨었던 저의 결혼식 덕분에 축복을 받아서 성탄전날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예수님 덕분에 이날 미역국을 먹고 성탄의 의미를 새기며 이어서 결혼기념일을 생각합니다.

올해는 바다를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는데 달력을 보니 성탄절이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더군요. 그래서 갯것이나 좀 해다가 반찬이나 장만해 보려고 바다에 갔답니다. 지금은 김발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염산이란 걸 쓴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게 고둥이 밑에 숨어 있음직한 바윗돌마다 죄 하얀 색의 백태가 끼었더랬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먹이가 되는 해초류들이 자라지 못해서 게와 고둥들이 없습니다.

적이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올 수가 없어서 두어 시간 남짓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헤집고 주워 모았더니 겨우 가지고 간 바구니의 밑바닥이나 덮어올 수는 있었습니다. 일 년 사이, 눈에 띄게 바다 생태계의 변화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그걸 또 그악스럽게 헤집어 잡아오는 이 행위는 무엇인지, 마음이 그다지 편치만은 않은데 대처나 바다가 이렇게 변하지 않을 내야 않을 수가 없는, 늘 보지만 다시 새로 보이는 광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닷가 경치 좋은 데마다 빈틈없이 들어찬 저 건물들 말이지요.

바닷가 경치 좋은 곳들이란 거의 백퍼센트 바다 쪽으로 돌출된 곳들이고 거기에 파도가 더 부딪고 그 안쪽엔 아늑하므로 해양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들어선 호텔이니 휴양소니 연수원이니 하는데서 나오는 하수가 정통으로 이 생물들의 머리에 들씌워지는 것입니다. 암담해서 멀리 생각하기 싫지만 갈수록 갯것하나 해다 먹고 살기도 강퍅해지는데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따, 저 떼로 몰려다니는 여행객들의 울긋불긋 희희낙락을 보십시오. 이 세상 걱정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그려. 성탄절은 오로지 즐기면 된다는 듯 한 저 젊음들에서 풍겨나는 분위기는 스스로 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외부로부터 심어진 것인지 헷갈립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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