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밭으로 연이은 ‘가격폭락’…정부는 ‘무능무력’



 농민 ‘심리적 불안감’ 만연…김제평야 논2만평 시설하우스로

 관세화특별법·유전자쌀수입금지법 등 국내 안전장치 시급



시장이 열렸다. 5천년의 근간을 시험대인지 벼랑인지 올려놨을 때 상황은 한마디로 ‘불안’이다. 때문에 정부는 ‘안심하라’는 홍보에 열중이다. 쌀 고정직불금 단가를 인상하고, 국산과 수입쌀의 혼합판매와 유통을 금지하겠다는 대책도 발표했다. 체질 개선을 통해 쌀 생산기반도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이는 동시에, 수입 급증으로 쌀값이 떨어질 경우 변동직불금제 또한 보완하겠다고 농민들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한쪽으로 쏠리는 작목전환 현상을 매해 겪고 있는 농민들은, 현상황에서 쌀농사를 그만두면 뭘 키워서 밥벌이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일부 전업규모의 벼재배 농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토를 할 것이고, 밭작물에 눈길을 돌릴 것이다.

어느 한 농학자는 “최근들어 예외없이 모든 농산물이 생산단가도 못 건지는 가격폭락을 겪고 있는데, 이상태에서 논농사가 줄어들면 밭작목으로 전환할 것이고 이후는 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내논 쌀개방 정책이 ‘농업붕괴’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당장 수입쌀값에 관세를 많이 매겨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엔, 불안감에서 시작된 ‘농사일의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크다. 과연 관세만 내면 누구나 쌀을 수입해 장사할 수 있는 구조에서 우리 농업은 괜찮겠는가.

“쌀개방은 밭작물 과잉을 낳고…”

누구나 예측 가능한 문구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국내 쌀 생산이 위축될 것이고, 이는 재배면적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밭작물 등으로 전환하는 농가가 늘어날 것이고, 밭작물 생산이 증가한다. 농산물 가격 폭락은 불보듯 뻔하고, 이후에 벌어지는 농업현실은 참혹한 이농과 이에 따른 ‘줄도산’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올해 농산물 가격은 대표적인 쌀값부터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시장에 나오고 있다. 노지재배 토마토, 오이, 양파, 마늘, 수박, 참외, 사과, 배 등은 물론 가을철부터 시설재배로 쏟아지는 딸기, 귤 등 부가가치 주력 농산물까지 모두 바닥이다.
이런 현상은 대체수요와 선택이 다채로운 수입농산물의 주된 이유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수급조절 정책 자체가 통솔력을 잃고 ‘국제시장’의 원리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쌀시장이 열린 상태에서는 이런 농산물 가격하락은 더욱 일상화될 것이다. 농업 전반의 작물 생산 체계가 바뀌게 되면서 일단 논농업에서 밭농업으로의 전환이 급증할 것이란 예측이다. 양성범 단국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쌀시장개방 관련, 연구보고에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분석한 결과, 1% 채소류 생산증가는 약 1천929억~3천543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우려했다. 논농사를 짓던 사람이 밭농사로 전환하면서 결국 공멸한다는 얘기가 된다. 

일례로 호남 최대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에 최근 2만여평의 밭이 생겼다. 벼농사의 수익성이 한계에 달했다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쌀시장 개방이 발표된 뒤, 밭으로의 전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양 교수는 “주로 식량작물에 국한된 지원대상을 확대해야 하고,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소규모 농가에 대해서도 대책이 고려돼야 한다”면서 “더불어 다양한 품목의 생산량, 소비량, 판매가격 등의 데이터 구축과 분석을 통해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쌀수입은 양곡관리법 위반”

서울행정법원이 정부의 허가없이 외국 쌀 수입을 못하도록 한 양곡관리법을 개정하지 않고 쌀 시장 개방은 안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정부의 일방적인 업무처리를 여실히 드러낸 경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함상훈 부장판사)는 “쌀에 대한 수입허가제를 폐지하고 이에 대한 관세 상당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미곡등의 수입허가’와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양곡관리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정부의 쌀개방에 제동을 걸었다.

이 소송은 민변이 쌀 관세화율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공개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 대해 법원은 보고서 공개요구는 기각했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60여년간 쌀시장 보호를 위해 지켜온 쌀 수입허가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법률적 판단이고, 국회를 통한 국민적 여론을 수용하라는 경고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법률적 해석대로라면 정부가 쌀개방을 선언했더라도 민간이 쌀을 수입할 경우 징역 10년이하에 처하는 양곡관리법 제 31조 제1항 1호를 어기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 관계자는 “쌀 수입허가제 폐지는 국민의 주식과 농업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문제”라며 “농민과 국민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중대한 국가대사이기 때문에 정부는 즉각 대책을 마련해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조작 쌀 수입금지, 고율관세 유지 대책 세워야”

최근 국회에서는 농해수위 소속 김승남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대표 발의한 ‘쌀관세율결정에관한특별법안’ 제정에 대한 공청회를 가졌다. 고율관세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찬성 쪽과, 세계적인 전례가 없는데다 쌀을 지키고자하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굳이 제도적 장치가 필요치 않다는 반대의견이 팽팽이 맞섰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대만처럼 고율관세를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란 지적이다. 여기에다 TPP와 앞으로의 FTA 등에서 교역조건의 우선순위로 쌀 문제를 앞세울지도 믿을 수 없는 대목으로 꼽힌다.

관세화특별법안은 정부가 향후 쌀 관세 관련 통상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하는 경우, 국회와 정부, 농민단체가 추천하는 위원으로 구성된 ‘쌀 관세 합의기구’에 협상계획을 보고하고 합의기구의 합의를 통해 미곡의 관세율을 정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또한 미리 국회에 미곡 관세관련 통상협상 계획과 진행상황을 보고토록 하고, 미곡 관세율 변경관련 통상조약을 체결할 경우,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해 국내 쌀농업을 보호하자는 취지이다.

유전자조작된 쌀이 수입될 가능성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쌀 수입이 자유화된 상태에서 미국 등 쌀 수출국들은 비관세장벽이란 구실로 유전자 조작 쌀 검사를 폐지할 것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 쌀 수입 금지법’을 만들어 국내 친환경 가족농을 유지하는 제도로써 역할을 하고, 국민의 안전한 식량 확보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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