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도 중순 무렵에서야 겨울다운 날이 이어집니다. 겨울치고는 드물게 소한의 추위가 찾아오고 그 추위가 일주일가량 계속되니 사방이 조용하게 얼어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윗날은 맑고 좋아서 안에 있기란 좀 답답하군요. 하여 나무나 하자고 챙기고 밖에 나왔습니다. 이따가 몸 움직이면 이내 더워져서 벗어버릴 것이지만 두툼한 점퍼에 모자 장화 따위로 우선은 중무장을 했습니다. 숫돌에 낫을 갈고 톱을 챙겨서 바로 집 옆의 산에서 나무를 하는데 이것은 땔감으로 쓸 목적이기도 하지만 집 옆의 길 쪽으로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베어내 훤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그리고 그 나무 베어낸 곳에는 가랑잎이 많이 깔린 흙살 좋고 양지바른 곳이기에 봄에 더덕종자를 좀 뿌려 볼 생각입니다.

이곳은 삼년 전에도 같은 이유로 나무를 베어낸 자리인데 더덕종자만은 생각을 바꿔 밭에다 뿌렸었죠. 그런데 제 아무리 유기농이니 뭐니 해도 밭에서 기른 더덕은 맛이나 향에 있어서 야생의 그것을 쫓아 갈 수 없더군요. 크는 것도 네다섯 배 차이가 날 정도로 산에 것은 더딘데 밭에 것은 2년만 키우면 커다랗게 자라서 수확이 가능합니다. 개중에 어떤 것은 무 같은 것도 있으니 덩치가 커도 더덕답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받아둔 종자를 산에 뿌리고 낙엽 아래 땅에 묻힐 수 있도록 갈퀴로 좀 뒤적거려줄 생각입니다. 이렇게 한 가지 일에 세 가지 목적이 있으니 하찮은 나무하기도 큰 역사 같습니다.

웬만한 굵기의 나무들은 날이 잘 선 조선낫 한 자루만 있으면 베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왼손으로 나무의 우듬지를 휘어잡고 비스듬해진 나무의 밑동을 낫날을 휘둘러 전광석화처럼 쳐 올리면 설사 그것이 어른 팔뚝만한 굵기라도 사뿐하게 베어집니다. 이때 나뭇단을 묶는 끈은 칡이나 새끼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제아무리 용을 써서 묶어도 꽉 조여지지 않아 쿨렁쿨렁합니다.

그러므로 회초리 진 윤노리나무나 덜꿩나무 혹은 물푸레 산딸나무 따위의 질기고 잘 비틀어지는 나무로 고리를 만들어 묶습니다. 이러면 아주 높은 산에서 밑으로 나뭇단을 굴러 내려도 결코 풀어지거나 나무가 빠지는 일이 없죠. 바로 집 옆에서 하는 나무라 흔해빠진 칡덩굴 한 오리로 그냥 둘둘 둘러 묶어도 되지만 왠지 옛날 가락을 내고 싶어서 저는 나무 매끼(고리)를 틀어 나무를 합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밑동은 톱으로 베어 내고요. 그래야 돌아다니며 더덕 종자 뿌리고 갈퀴로 긁을 때 거침새가 덜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청미래덩굴 따위의 가시나무들은 한쪽으로 모읍니다. 우선 당장 불에 잘 타지 않는 굴피나무나 붉나무 옻나무 합달나무 음정목들도 따로 모으고 생나무인 채 바로 아궁이에 들어가도 잘 타는 참나무 싸리나무들만 단으로 묶는 거지요. 이렇게 차근차근 정리를 하면서 나무를 하니 한나절에 겨우 나무 두 단입니다. 그래도 천천히 몸을 놀리니 참 좋습니다. 몸에 온기가 생기고 뼈마디가 부드럽게 풀려서 낫을 휘두르는 두 팔과 허리 무릎이 바위를 딛고 높은 산 위로 도약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그렇게 뛰어올라서 맑고 쨍쨍하도록 차가운 하늘을 맴도는 저 솔개이고 싶어지더군요. 그러다가 미동도 없이 하늘 한복판에 붙박인 채 순식간에 주변의 공간과 시간을 장악해내는 솜씨라니! 정중동, 멈춰있되 멈춰있지 않는 것이 얼어있되 결코 얼어있지만 않은 이 계절과 중첩되어 생활의 좋은 기운 한 가닥 제 몸에 물꼬를 대인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무 일주일 했더니 쏙소리 단은 열 개가 넘었고 산밭은 한 뙈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집 주변은 어연간 환해졌고요. 제 집은 산에 가까이 있기에 주변의 풀이나 나무를 조금만 자라게 놔두면 그것으로 울타리가 되고 성이 쌓여서 답답합니다. 낙엽 떨어진 겨울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녹음 우거지는 한여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어서 주기적으로 나무를 베어서 정리해줘야 합니다. 내친김에 집 양 옆의 키 작은 관상수들의 마른 가지들을 잘라내고 이제는 꽃이 완전히 말라버린 국화대궁들도 잘라냈습니다. 이것은 나무처럼 하자고해서 하는 게 아니라 손에 일감 묻힌 김에 눈에 보이는 대로 정리하는 것이라 순서도 없습니다. 왔다 갔다 하다가 장독에 눈이 가서 작년에 연잎을 따서 덮어뒀던 된장항아리도 열어서 상태를 살피기도 하고 장독 뒤의 대밭 속에 들어가서 말라버린 대 몇 개를 베어 내기도 합니다.
겨울 해는 짧기만 해서 저녁나절에 한 서너 시간 돌아다녔는가싶으면 산등성이로 뉘엿뉘엿 해가 집니다.

춥고 날이 맑아서 꼭 설 쇠인 입춘 무렵인 듯 무언가 수상스런 기운마저 느껴지는 그런 저녁이 계속됩니다. 낮게 구름장이 드리우고 송이 눈이 펄펄 날렸으면 좋겠단 생각도 듭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렇듯 간사합니다. 겨울이 지겨워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싶다가도 봄의 수상한 기운이 보일락 하면 놀고먹던 게으른 마음이 발동되어서 벌써 겨울이 가나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겨우내 눈이 많이 올 때는 눈이 지겹더니 단 일주일 날이 조금 개이자 바로 또 눈을 원하는 이 꼴이라니—.
하지만 이것이 꼭 나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지요? 그냥 생각되어지는 대로 몸을 맡겨도 시골구석의 겨울 한가운데에서 그냥 나무꾼이고 농사꾼일 뿐이지 달리 무엇일 턱이 없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