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보니 이번 사리에 바닷물이 무려 나흘 동안이나 많이 빠진다고 나와 있군요. 저는 사실 달력보고 알았다기보다는 갯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늦게 사 달력을 들여다봤고요. 바닷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의 이런 날을 참 많이 기다립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나흘씩, 그것도 마이너스지점 즉 평균값의 훨씬 아래까지 물이 빠진다니 이것 참 얼씨구 좋다 입니다. 이럴 때는 갯것 잘할 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바다에 가기만 가면 뭐가 됐던 먹을 것을 주워올 수 있습니다. 한 달포 전에 바다에 갔을 때는 물이 고여 썩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날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지요.

첫날은 별 것 없었습니다. 바닷가 말로 8물때인데 마이너스10 지점까지 빠졌으나 알이 꽉 찬 게는 더 깊이 내려가야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적게 빠져도 할 수 있는 조개와 고등 따위 조금 주워 왔습니다. 둘째 날 9물때는 물이 과연 많이 빠졌습니다. 물이 점점 빠져서 일 년에 몇 번 드러나지 않는 지점에까지 이르자 온갖 가지 것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도 게 저기도 게, 굳이 호미로 파지 않아도 갯벌 밖으로 몸을 드러낸 참조개 소라 해삼이며, 오른손이 이것을 주워 담을 때 눈은 벌써 다른 것을 쫓고 왼손이 그걸 따라 갑니다. 물이 완전히 빠져서 정지된 상태로 약 10여분, 그때가 지나면 빠지던 속도의 세배 네배로 빠르게 물이 들기 시작하므로 갯벌이 잠깐 몸을 열어준 그 사이에 손을 빠르게 놀립니다.

갯것 하러가서 이렇게 재미를 보노라니 손 시리고 발 시린 것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오히려 손가락들이 피가 잘 돌아 붉은 기운을 띠며 후끈거립니다. 있던 근심 걱정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이 한군데 터 잡고 살기 이전의 수렵채취 본능에 가까이 갔기 때문이랄까요. 또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맛나고 좋은 것을 많이 모으게 되면 좀 덜하다 싶은 것은 버리기도 한답니다. 가지고 갔던 그릇이 너무 작을 때엔 무겁고 부피만 많이 나가는 것은 도로 바다에 던져주면서 멋쩍게 웃곤 하지요. 정이나 그릇이 작으면 입고 있던 옷가지를 벗어서 싸들고 오기도합니다.

둘째 날, 그 정도는 아니었어도 아무튼 가지고 간 둥근 통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걸 한손에 들고 또 한손에는 플라스틱 통에 가득 바닷물을 채워서 차 세워둔 곳까지 오는데 무거워서 여러 번을 쉬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걸 가지고 집에 가서 반찬을 할 생각을 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합니다. 밖에서 차 소리를 내자 아내가 서둘러 마중을 나와서는 “어째 오늘은 많이 했어?” 묻습니다. 이럴 때도 참 기분이 좋습니다. “암! 대박 터졌지.” 가장이 밖에 나가서 돈 많이 벌어 온 것과 같은 것이라 대답에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러긴 해도 저희 안식구는 갯것 한번을 가지 않고 해온 것도 야무지게 손질을 못합니다. 늘 제가 해다가 먹기 좋게 만들어서 턱밑에 바쳐버릇해서 먹기는 잘 하지요. 아니, 제가 조금 잘못 말한 듯합니다. 옛날엔 이랬는데 지금은 해오면 손질은 잘 한답니다. 이날도 해온 것을 수돗가에서 큰 그릇에 부어놓고 같은 종류끼리 고르고 추려내서 조개 종류와 고둥은 해감 시키려고 바닷물에 담가놓고 안식구는 게장을 담느라고 분주합니다. 해삼과 성게 따위는 어차피 술안줏감이니까 그냥 바가지에 담아서 한쪽에 밀어놓고 굴은 또 바로 까야합니다. 갯것을 한번 같다오면 해온 것 갈무리 하느라 이렇게 나머지 하루를 품버립니다.

사흘째도 물이 많이 빠져서 같은 자리에 갔어도 많이 해왔습니다.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와서 하얗게 깔렸어도 무엇이 됐던 간에 바다에서 이고지고 나올 때는 다 한보따리씩 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새삼 갯벌의 생산성이 대단하다 여겨집니다. 이렇게 주어내도 한두 달 후에는 또 어김없이 그만큼씩 채워지니 가히 생금 밭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셋째 날 저는 이곳 대안학교공동체 식구들을 몇 명 불러 함께 바다에 갔습니다. 그들이 꼭 한번 바닷가에 데리고 가 갯것 하는 방법을 가르쳐내라고 졸라서 말이지요. 꼭 한번이 아니라 해마다 한두 번씩 가르쳐줘도 늘 사람이 바뀌므로 그들에게는 처음 한번이긴 합니다.

둘째 날 많이 해다 놔서 저는 이날은 놀 량으로 설렁설렁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개의 숨구멍을 가르쳐주고 파보라 합니다. 참 신기하고 놀랍고 오지지요. 단추 구멍처럼 생긴 곳을 파보면 어김없이 통실하게 굵은 바지락이며 살조개 말조개 따위가 나오니까 어른이라고 해서 어린아이의 그 순진한 탄성이 아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어도 공동체 사람 다섯 몫보다도 제가 더 했습니다. 이날은 물때가 점심 무렵에 맞춰져서 갯것 한 것들을 가지고 다 저희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갑자기 많은 손님 먹일 밥이 없을 것 같아서 라면을 사들고 왔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해보지 않아서 생각도 못했는데 라면에 게를 넣고 끓이면 그렇게 달고 맛있다내요.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과연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게라면 먹기 전에 물론 해삼 성게 손질해서 소주한잔 빠지지 않았고요. 이런 것은 참 좋은 어촌의 문화라고 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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