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안에 쌓아둔 깨대며 콩대 따위들을 작두로 잘게 썰었습니다. 알곡을 털어내고 난 바짝 마른 것들이라 아궁이에 때기 좋은 것들이지만 그것 아니라도 땔나무는 많은 까닭에 거름을 만들기 위해섭니다. 이것들은 실은 초겨울에 썰어서 나락 방아 찧고 나온 쌀겨와 섞으려 했는데 그만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봄이 가까우니 하우스를 정리해 둬야겠지요. 작두를 꺼내서 그라인더로 날을 벼리고 아들 녀석을 데리고 작두질을 합니다. 힘 좋은 녀석은 작두를 누르고 저는 작두날에 먹입니다.
바짝 마른 것들이라 썩썩 잘도 썰어집니다. 그러나 대궁과 달리 밑동은 단단하기 나무 같아서 힘이 듭니다. 저야 먹이는 사람이니 힘들게 없지만 풋기운 꼴이나 쓰려는 듯 설치던 아들 녀석은 이내 양팔에 힘이 다하는지 속도가 떨어집니다. 해서 “역할을 바꿔볼까?” 했더니 아직은 고개를 흔드는군요. 저도 저만한 나이 때 형님과 함께 작두질을 하다가 역할을 바꿔 먹이는 법을 알았는데 이 녀석은 해보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나 봅니다. 그래 속도를 좀 늦추면서 옛이야기를 해 줍니다.

발로 작두를 밟으려면 약30cm 높이 정도 되는 발판위에 왼발을 지탱하고 서서 오른발로 밟는 것인데 왼손에는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작대기를 짚어야 하고 오른손은 작두날의 슴베에 매단 끈을 잡아서 작두날을 치켜들었다 놨다하며 밟습니다. 칡순이나 들풀을 베 말린 것들은 썰고 말 것도 없이 힘이 들지 않는데 콩대는 몸의 무게를 실어 힘을 다해 밟아도 잘 썰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녀석이 손으로 누르는 이것은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지요.

게 중에 제일 썰어지지 않는 게 물에 젖은 고구마 순이랍니다. 젖으면 더 잘 썰어질 것 같아도 찔긋 거리기만 하고 통 썰어지지 않아서 애를 먹지요. 나도 모르게 안간힘으로 밟다보면 발바닥 장심이 부르트기도 해서 굉장히 고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무신 대신 두껍고 미끄럽지 않은 짚신을 신고 밟습니다. 이런 풍경은 이제 완전히 옛날의 것이 되고 말았군요. 여물을 썰거나 퇴비 풀을 썰던 모습들은 이제는 너무도 아스라해서 옛날을 이야기 하는 저 자신조차 실감이 나지 않으니 듣는 녀석이야 오죽할까요? 하여튼 그렇게 두어 시간씩 이틀에 걸쳐 작두질을 해서 비닐하우스 안을 좀 정리하고 오랜만에 부자가 함께 목욕탕을 갔습니다.

땀나게 일했을 때마다 저는 집에서나 냇가에서 씻으니까 일 년을 두고 기껏 두세 번 가면 많이 가는데 먼지 구덩이 속에서 일을 하고나니 저보다도 아들 녀석의 꼴이 말이 아니어서 탕에 간 것입니다. 차타고 나가 10여분. 대강 겉몸을 한번 씻고 탕에 몸을 잠그니 따뜻하고 저릿한 느낌이 온몸에 퍼지며 기분이 좋습니다. 한결 꼴이 잡힌 벗은 아들 녀석을 스스럼없이 옆에 두고 보는 것도 든든하고 뿌듯합니다. 가지고 갔던 면도기를 같이 쓰고 서로 등을 밀고, 이만한 나이의 부자가 탕 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껏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아빠나 한둘. 엄마와 딸이 같이 탕에 가도 이런 기분일라 나요? 저로썬 알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처음과는 달리 목욕탕 안이 별로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탕 안의 물 온도야 늘 그 정도이겠는데 겨울이어선지 탕 밖에만 나오면 찬 기운이 몸에 감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뜨겁다는 탕 안에 들어가도 그리 뜨거운 줄을 모르겠더군요. 예전 같으면 뜨거운 탕에서는 반신욕만 하고 있어도 윗몸은 이내 땀이 줄줄이 흘러 몸이 가뿐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굳어있던 몸의 뼈마디가 조금 풀어진 듯 한 느낌 그 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탕의 온도가 낮아서기보다는 제 몸 탓인 듯 합니다.

나이 먹을수록 뼈마디가 점점 굳어지고 추위에 약해지는 것 말이지요. 특히 요즈음 며칠 안식구가 서울 딸네를 가있는 동안에 끼니며 집안일을 제가하게 됐는데 아침 일찍 추운 부엌에 나와서 무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있을 때도 물론 제가 조금씩 거들기는 했지만 그걸 혼자 하려니 밖에 있는 시간과 찬물에 손 담그는 시간이 곱절로 늘어나서 거의 종일 몸이 시렸습니다. 그게 밤이 되어서 뜨거운 아랫목에 몇 바탕 지지고 나서야 풀어지는, 그러니까 젊었을 때의 몸, 스스로 풀어지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회복력이 이제는 없어진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갈수록 외부의 어떤 물리적인 것에 의존해야 그나마 몸이 움직여지는 것,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옛날 어른들이 조금 더 이해가 됩니다. 살림하느라 늘 시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 저의 모습이 그와 같다고 할 수 없지만 크게 다를 것도 없는 듯 합니다.
자동차·TV·전화기. 이 세 가지 것만으로도 제가 누리는 것은 옛날 분들과 하늘과 땅차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는, 아마도 제 나이들이 전통의 마지막 세대이지 않을는지요. 물리적인 것으로써 몸은 현대와 현실에 묶여있고 화학적 작용으로써 정신은 과거에 걸쳐있어 참 어중간한 정체성을 가지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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