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과 분산기능 분업으로 효율성 높여야”

‘공영도매시장 건설’과 ‘상장경매 정착’은 대표적인 농업정책의 성공사례. 국민의 세금으로 공영성이 강조된 거래공간을 조성하고, 과거 위탁상의 폐해를 근절시키는 투명한 가격발견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공적인 공간에서의 투명한 거래. 이것이 발현되고 구체화된 대표적인 사례가 가락시장이다. 가락시장으로 대표되는 공영도매시장은 특화된 수집과 분산기능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예약출하시스템과 정가·수의매매, ICT를 활용한 샘플경매 등 한 층 성숙된 상장경매를 통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프·일, 수집과 분산주체 분리로 공정성 확보”

발제자로 나선 동국대학교 권승구 교수는 미국과 유럽(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농산물유통시스템이 가진 공통점으로 △공익적 목적을 통한 도매시장의 설립과 관련 법 및 제도 제정 △엄격한 규정과 공정한 중심가격 형성을 위한 가격 공표 △정산시스템을 통한 산지생산자 보호 △수집주체와 분산주체의 전문화를 통한 효율성 및 거래비용 감소 등을 꼽았다.

특히 거래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주요 선진국 모두에서 가장 우선시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 바탕이며, 공적자금 투입이 허용될 수 있는 명분이다. 권 교수는 “투명성과 공정성은 공영도매시장의 기본”이라며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공적투자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서구 도매시장을 우리나라의 도매시장과 비교할 때 가장 특징적인 차이는 산지의 발전 정도에 있다”면서 “서구의 경우에는 생산자의 규모화·조직화·전문화 등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반면, 우리나라는 산지 발전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지보다 소비지 유통환경 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도매시장의 역사가 짧고, 도매시장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기 전에 유통시장이 개방됐다. 수동적이고 영세한 유통주체들의 갈등과 정부 정책의 혼선은 도매시장의 위상 추락과 영업위축을 가져왔다.

시장도매인에 대해서도 일침했다. 권 교수는 “상장경매와 시장도매인제는 거래제도에 대한 논란이 아니다. 누가 거래를 대행하느냐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거래제도는 유통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지자체 주도로 제각각 추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중앙정부가 중심을 잡고, 지자체는 시장관리에만 전념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강조했다. “일본 중앙도매시장을 대표하는 오다시장이 35명의 인력으로 관리될 수 있는 이유”라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도매시장의 갈등구조가 비화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산지와 소비지의 입장과 발전정도를 감안한 객관적인 판단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있는 시장 내부의 시각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도매시장의 설립 목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집과 분산기능의 분업으로 효율화 추구”

“일본은 수집과 분산기능의 인위적인 통합으로 유통비용을 절감하려는 정책은 채택하지 않고 있다. 이미 1960년대에 유통단계 축소로 비용절감을 꾀한다는 정책은 실패로 인정되며 종결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수집과 분산기능의 분업화를 통해 각각의 유통기능을 효율화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다.”

시장도매인은 도매시장에서 수집과 분산기능을 통합한 유통단계 축소를 주장한다. 이를 통해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실증은 없었다. 매 정권마다 되풀이되어왔던 공허한 관념적 구호를 재탕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위태석 박사는 일본의 사례연구를 통해 도매시장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유통단계 축소를 통해 유통비용을 절감한다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종결시켰다. 이후 각 유통단계별 기능을 재편하고 효율화를 통해 유통비용을 절감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지금까지 ‘효율화’는 중요한 정책목표가 되고 있다.

위 박사는 “도매시장에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의 기능을 구분하는 이유는 수집과 분산기능의 효과적인 수행을 위한 전문성 추구, 즉 분업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며 “일본정부는 수집과 분산기능을 통합하여 단일 유통주체가 수행할 경우, 유통기능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서는 사업자가 다시 수집부문과 분산부문을 분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보고 있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도매시장 경쟁력강화 종합검토위원회’는 수집·분산주체의 대치관계 유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또한 제9차 도매시장정비 기본방침을 수립하기 위해 운영된 ‘도매시장 미래방향 연구회’도 같은 의견으로 “도매시장 활성화 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매매참가자를 대치시키는 도매시장의 기본구조 및 규제를 기본원칙으로 유지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위 박사는 “(시장도매인)논의의 핵심은 통합된 주체가 수집기능과 분산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아니면 수집기능과 분산기능으로 특화된 주체가 분업화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판단하는 것”이라며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분업론’을 제창한 바 있으며, 일본 중앙도매시장의 중도매인 평균 취급규모가 100억 원을 웃도는 상황에서도 수집과 분산기능의 분리를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영도매시장 거래제도 판단기준은 ‘출하농민’”

“가락시장의 시설현대화가 왜 거래제도와 연계되는지 의문이다. 시설현대화와 거래제도는 별개이며, 가락시장의 시설현대화는 조속히 추진되어야 한다. 가락시장의 위축은 결국 출하농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밖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병률 박사는 도매시장 유통주체의 성격을 수수료상인과 차액상인으로 구분했다. 도매시장법인은 출하자가 위탁한 농산물을 상장경매라는 공개경쟁 또는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중도매인에게 판매한 후 판매금액의 4~7%를 법정수수료로 받는다. 따라서 출하자 수취가격이 높아지면 도매시장법인의 수수료 수입도 높아지는 구조이다.

반면 중도매인은 차액상인이다. 도매시장법인을 통해 구입한 금액에 마진을 붙여 판매한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만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구조다. 시장도매인 역시 구조적으로 차액상인에 가깝다.
김 박사는 시장도매인의 가격안정 기능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장도매인의 상대거래(매취, 위탁)는 사전적인 거래예약도 있겠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상대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격변동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출하자 입장에서 시장도매인과 상대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점포를 찾아다녀야 한다. 더욱이 시간이 지체될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는 농산물 거래에서 출하자의 거래교섭력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김 박사는 “대부분 개별적인 상대거래이기 때문에 거래교섭에서 시장도매인이 중심에 설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의 경험은 중요한 시범사례이기 때문에 광범위하고 면밀한 조사연구를 선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표시장인 가락시장에서 시장도매인제 실험이 이루어진다면 그나마 정착된 경매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시행착오와 혼란 등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도매시장 거래제도의 기준과 발전방향도 제시됐다. 김 박사는 “도매시장 거래방식의 선택 기준은 ‘출하농가’가 되어야 하며, 탄력적인 거래방식이 도입되더라도 출하주체가 거래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전예약출하방식이 필요하다”면서 “정책적으로 가격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는 거래방식을 유도하고, 현재의 초보적인 경매방식에서 발전된 경매방식으로 제도를 고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된 경매는 예약출하시스템을 접목한 출하조절. 경매가격의 안정대 설정으로 가격 등락폭 축소. 경매가 불가능한 품목의 정가·수의매매 전환. 샘플경매, 이미지 경매 등 ICT를 활용한 경매 고도화를 말한다.

 “30년전 위탁상이 지금의 시장도매인”

농민단체를 대표한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강정현 정책연구실장은 “가락시장의 논란은 경매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며, 시장도매인 도입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출하농가의 기억속에는 위탁상의 폐해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강 실장은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의 목적이 출하자를 위한 유통기능 강화에 있음에도 조율자 역할조차 못하고 있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관리사무소 건설에만 3,300억 원을 사용한 뒤 멈춰있다”면서 “농식품부의 도매시장 정책기능 강화와 이를 위한 인력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을 연구했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창곤 박사는 “어떤 제도나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 상반된 제도로 대체시키는 것이 안전한 방법은 아니다”면서 “국가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이유는 수집과 분산기능 일체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와 농민의 손실을 막기위해 공영·공공 도매시장을 세운 것”이라고 밝혔다. 전 박사는 “한 시장에서 두 제도를 통해 출하선택권을 확대한다고 하는데, 아니다. 대한민국. 강서시장. 한 곳밖에 없다”면서 “과연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나?”를 되물었다. 전 박사는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의 몇 년간 거래가격을 일일단위로 비교해 봤지만, 제도 도입의 목적이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지금의 경매제 문제는 거래방식의 다양화를 통해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를 대표해서 참석한 농림축산식품부 이재욱 유통소비정책관은 “거래제도보다는 도매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본질적인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면서 “가락시장의 경우 현대화사업과 맞물려 거래제도에 모든 이슈가 함몰됐다”고 지적했다. 이 정책관은 “(공영도매시장) 거래제도 선택의 열쇠는 출하자에게 있다”면서 “출하자가 도매시장을 선택하고, 대형유통업체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도매시장 내부의 노력이 해결방안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상태에서 정가·수의매매가 도매시장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된다”면서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한국식품유통연구원 이동혁 원장은 “용산시장에서 가락시장으로 바뀐 3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위탁상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상장경매 정착으로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됐다”면서 “논쟁이 되고 있는 시장도매인이 과거 위탁상과 비교할 때 다른점이 있는가?”물었다. 또한 “일부 문제점이 보완됐다고는 하지만, 과연 산지와 중도매인의 규모화가 어느 수준인지 의문”이라며 “도매시장 발전을 위한 틀 속에서 결론이 나와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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