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왔습니다. 밤중부터 간간이 낙숫물 소리가 들려 편안한 마음으로 자다 깨다 했는데 날이 밝으면서는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잠깐씩 몰아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빗방울이 마루와 방 창호 문을 두들겨 대서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봄에 비가 사납게 온다 해서 피해를 볼 무슨 작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순하게 내리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 바람이 아니면 어디서 어떻게 비구름을 몰아올 수 있으리요만 지금은 봄이잖습니까? 사방 군데서 꽃들이 마구 피어나고 있으니까요.

매화는 비에 무진 약합니다. 모든 꽃이 다 그렇지만 특히 매화는 비바람이 몰아 때리면 그냥 꽃잎이 힘없이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진하고 높은 향기에 비하면 허망합니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매화가 이제 마악 피기 시작 합니다. 비가 오면서 기온이 높아진 탓인지 불과 하루사이에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여 빗속에서도 벌벌벌 피어납니다. 전등에 켜진 불이 어둠이 짙을수록 밝아지듯 점점 세차게 내리는 비도 아랑곳없이 꽃등이 켜진 듯하네요.

며칠 전부터 미리 몇 가지 잘라다가 물 컵에 꽂아둔 책상위의 매화는 방안가득 향기를 흩뿌리고 있군요. 꽃잎 한 장 꽃술 하나 미동도 없이 향기를 뿜는 이것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해 저의 의식이 확장되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몇 줄 글이라도 쓰려고 연필을 잡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벌써 고요하게 됩니다. 그러나 3~4일을 넘기지 못해서 매화는 책상에 하나 둘 꽃잎들을 떨구며 시들어가지요. 그 모습을 보노라면 미련을 남길 그 무엇도 찾을 수가 없다 여겨집니다. 향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어서 이래야만 하는가, 하는 것인가 하고 또 잠시 생각에 잠기지요. 밖에 다시 끊어다 꽂아 놓을 가지들이 있기에, 미련 없이 뽑아 버리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일일 겁니다.
하룻밤 하루 낮을 오던 비가 그치고 오늘은 날이 참 맑습니다. 가을과는 달리 봄은 비가 한번 올 때마다 날이 조금씩 더 따듯해지는 것이라 위에 걸친 점퍼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누가 뭐라 해도 이제는 이 봄의 장한 기운을 어쩌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날이 좀 가문다 싶었던 탓에 목이 말랐었나 봅니다. 비야 사납게 왔던 곱게 왔던 이들에게는 감로수임에 분명해서 발을 디디는 천지 사방이 모두 살아 올라오지 않는 게 없습니다. 땅이 질어서 어차피 밭일은 할 수 없으므로 그냥 아무 곳이나 걸어 다니고만 싶어지는군요. 풀을 매고 웃거름을 하고 이제 비를 맞고 봄의 기운을 타는가 싶더니 마늘과 양파는 다시 고자리에게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이렇게 갑자기 따뜻하게 되면 하루가 다르게 숫자가 늘고 커져서 작물의 피해는 늘어만 가지만, 그런지 뻔히 알아도 오늘은 잡아내지도 어쩌지도 못합니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사과 속에는 벌레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과는 그 벌레의 밥이요 집이요 옷이요 나라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벌레의 집과 밥과 옷을 빼앗고 나라에서 ㅤㅉㅗㅈ아내고 죽였습니다. 누가 사과가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정했습니까. 사과는 서러웠습니다. 서러운 사과는 사람들만 좋아라 먹습니다.” 라고요. 사과를 마늘과 양파로 바꾸어 봅니다. 탐스럽고 이뿐 사과의 느낌이야 조금 달라지지만 뜻은 전혀 달라지지 않지요?

그러나 사과나무를 기르고 마늘 양파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사는 농민이라면 비록 그가 시인이라 할지라도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저도 시를 쓰는 입장이지만 이걸 생각하면 입가에 그저 배시시 웃음이 나옵니다. 비 덕분에, 한 사흘 맘 놓고 실컷 뜯어먹으려무나. 속으로 그럴 뿐입니다. 이 기간에 어떤 놈은 몸집이 더 커져서 애벌레가 되기도 할 것이고 그래서 어떤 놈은 땅속에 숨어 들어가 어른벌레가 될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비를 내려 결국 이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준 것은 하나님의, 자연의 섭리겠지요.

거의 날마다 밭 주변을 한 바퀴씩 돌아보는 게 요즈음의 취미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말이 밭 주변이지 대개는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맙니다. 밭 주변 빈터에 심어 놓은 나무들의 새싹이 오늘은 얼마나 크고 벙글었나 그게 궁금해서 그들에게 향하다가도 어느덧 발밑의 새로 돋는 풀들을 따라서 이리저리 걷다가 문득 할일이 생각나서 그만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나무에게는 정작 사나흘에 한 번 가서 들여다 볼똥 말똥하지요. 그 사나흘 사이가 봄철에는 천지가 개벽하는 시간이어서 금세 꽃이 피고 잎이 핀답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어도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고 설레지요.

그러다가 비 오기 전전날에는 그만 산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편편한 바위의 어느 흙 한줌을 의지해 자라는 산부추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산으로 들어갔어요. 그것은 아직 이르더군요. 이제야 야생 달래처럼 흙 위로 뾰족뾰족 반의반 뼘 정도씩 올라오고 있는데 잎 하나 뜯어서 비벼 냄새를 밭아보니 달래와 부추와 마늘을 섞어 놓은 듯한 향이 납니다. 이리저리 산을 헤매다 높은 바위에 오르고 싶어 한 20여분 낙엽을 밟고 올랐습니다. 거기 어리디 어린 회양목 한그루가 꼭 종지 같은 바위 움에서 자라 길래 어린 아기 안아들 듯이 가지고 와 화단에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밤새 마음속에 밝은 등 하나를 켠 듯 기꺼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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