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밥상 풍성해지는 계절이 돌아옵니다. 냉이는 겨울에 먹는 것이어서, 그러니까 대보름 전에 냉이 세 번만 해다 먹으면 황소 한 마리 먹는 폭이었다는 옛 어른들 말씀처럼 이제 보름이 지나서 꽃이 피고 쇠었지만 뒤를 이어 쑥이 시방은 먹을 만큼은 자랐습니다. 양지바른 논둑이나 밭둑, 어느 길가에 뾰족뾰족하던 것이 손에 잡힐 만큼은 돼서 그 햇살 속에 앉아 한동안 고개를 수그리고 열중하다보면 바구니에 한 끼 국거리는 담기는군요.

두어 시간, 안식구와 마늘 양파 밭의 검정 고자리를 잡다가 구물구물한 그것들을 손으로 눌러 죽이기 몸서리가 나 차라리 마늘 양파 안 먹고 말지 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아무리 일등급 유기농 퇴비라도 가축 분으로 만든 퇴비를 쓰면 어쩔 수 없다는데 깻묵 따위로 만든 유박퇴비는 비싸기만 하니 좋은 줄은 알지만 어찌한답니까? 고자리고 나발이고 안식구에게 맡겨버리고 저는 바구니 하나들고, 냇가건너 형님네 머위 밭으로 와 버렸습니다. 머위는 이제 어른 손바닥 반만큼씩 잎이 자랐고 꽃대도 올라옵니다. 머위는 이때가 좋은 때입니다. 잎이 연해서 알맞게 쌉쌀하므로 대치지 않아도 먹기에 알맞고요, 봄철 자칫 묵은 음식에 잃은 입맛을 되찾게 해 주기도 합니다.

이파리 하나씩을 세면서 뜯었습니다. 하나 두울… 그렇게 한주먹이 차면 바구니에 담고요. 백장을 뜯었어요. 무치면 한입 가심밖에 더 될까요? 그래 삼백 장을 뜯었답니다. 그동안이 아마 한 20분가량? 저는 이런 일에 시간 보내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다음에 또 뜯어서 먹을 셈치고 일어섰습니다. 머위만 먹기는 좀 그러므로 이것 먹고 조금 있다가 또 생각나 뜯을 때는 이파리가 커서 이제 우려내야 하겠지요. 그때는 쌈을 싸도 좋아요.

집에 가져다 놓고 이번에는 산 부추를 뜯으러 조금 깊이 들어갔습니다. 제가 가꾸는(?) 산부추가 있는데 저번에 보니까 아직 덜 자랐더라고요. 그동안이 좀 지났으니 이제 제법 뜯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부추는 움푹한 바위에 쌓인 부엽토에서 잘 자라요. 그 바위를 찾아가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만 아는 그곳에 사람 다닌 길이 너무도 확실하게 나 있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순간 수없이 파헤쳐진 난 뿌리들을 보았습니다. 저번에 춘란 사진 찍는다고 몇 팀이 와서 두세 차례씩 짓빠대고 갔는데 그들 소행이라 짐작이 가더군요. 말로는 점잖게 자기들은 그런 짓 않는다지만 여러 흔적들을 보니 그들이 분명합니다. 남이 보면 찍느라 짓빠대고 보지 않으면 캐서 배낭에 넣고….

뒤란 밤나무 밑과 수돗가의 매화나무 밑에는 초롱꽃 나물이 아주 연합니다. 많은 나물이 연할 때 먹는 게 많고, 쇠면 쓴맛이나 독성이 생겨 먹지 못하기 쉬운데 이것도 그러합니다. 이게 또 좋은 게 다른 봄나물보다도 일찍 나온다는 점입니다. 물론 냉이니 보리 싹이니 광대나물 별꽃나물 점나도나물 같은 것이야 겨울부터 먹을 수 있으니 비교할 수 없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자라는 모양이 우썩우썩해서 금방 몇 번 뜯어 먹고 나면 어연간 커 버립니다. 이건 살짝 대쳐서 된장에 무쳐도 좋고 곰삭은 액젓을 치고 고춧가루 파 마늘에 참기름 쳐서 조물거리면 입에서 그냥 살살 녹는답니다. 봄이 되면 제 안식구는 밭에 앉아 있고 밭보다는 화단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저는 이렇게 나물 담당입니다. 이런 것들은 제가 훨씬 더 좋아해서요.

이것은 어제 일이고요. 오늘은 쪽파를 뽑아 다듬고 있습니다. 저번에 한번 나물을 해 먹었는데 이제는 나물하기는 조금 컸어요. 이럴 때는 김치가 제격이지요. 지금이 너무 쇠지도 연하지도 안아서 김치 담가 익혀 먹기 딱 입니다. 이걸 말이지요. 작년 시월에 뿌려서 겨울을 나고 이제 고동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저 봄 갓들과 함께 섞어 담으면 더 좋습니다. 갓은 아리면서 톡 쏘는 맛이 있고 파는 세곰세곰하며 다니까 따로 따로 한 통씩 담아도 좋고 섞어 담으면 한 번에 두 가지 어우러진 맛을 볼 수 있어 좋답니다.

안식구는 어제 오후에 친구들 계가 있어 출타했습니다. 멀리서 들 모이고 일 년에 기껏 한번이라서 보통 중간지점을 잡아서 하룻밤 자며 수다를 떠는 모양인데 저는 주말이라고 집에 와 있는 아들 녀석 대리고 파를 다듬습니다.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이는데 제 솜씨는 여기까지고 어디까지나 진정한 솜씨는 아내 몫이어서 그가 와서 양념도 섞고 파도 버무려야 합니다. 엊그제 서울에 있는 딸애와 전화를 하는 눈치더니 저번에 보내준 김장김치가 거의 바닥났다는 가 봅니다. 그래서 김장김치 조금하고 봄이니까 새 맛으로 갓파 김치 담아 보내자고 했거든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몸을 꼬며 하기 싫어하는 녀석을 겨우겨우 어르고 달래서 한바구니 다듬어 놓고 보니 그 하얗고 파랗고 가지런히 담긴 모습이 참 소복하고 옹골집니다. 아들놈 놓아 보내고 저는 갓을 한바구니 꺾어 왔습니다.

이제부터 조금만 더 있으면 산에는 취며 고사리 더덕 다래 순이며 원추리 여러 가지 먹을 수 있는 나무순들이 나오고 두릅이며 엄나무 순이 나올 것입니다. 하루에 한가지씩만 해 먹어도 조금씩 여투어두면 한 달 동안은 성찬일 겝니다. 역시 봄이 좋군요.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